<말씀>

마가복음 16장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나눔>

1.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자신을 보이신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2. 예수님께서 많은 제자들 중에 왜 마리아에게 자신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보이셨는지 그 이유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미루어 묵상할 수 밖에 없는데, 아마도 부활의 소식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는지를 알리려는 주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3. 당대의 여인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낮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일곱 귀신에 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 여인이 주님을 만나 해방된 삶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참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4. 이러한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매우 깊은 슬픔과 절망의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겨우 회복되었는데 다시금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그리고 죽으신 뒤에도 예수님의 곁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진실로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5.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부활의 소식이 가장 큰 희망과 기쁨의 소식으로 다가올 사람은 다름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기에 가장 슬퍼했고, 예수님을 온전한 소망으로 두었기에 가장 절망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6. 부활은 십자가를 뚫고 드러난 사건입니다. 절망을 이겨낸 소망이요, 증오를 이겨낸 사랑이요, 비참을 이겨낸 영광이요, 죽음을 이겨낸 생명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절망과 희생과 낮아짐과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소망과 영광과 영생과 사랑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7. 그렇기에 자신의 비참함을 깊이 인식한 사람, 이 세상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는 사람에게 부활의 의미는 더욱 깊이 다가오게 됩니다. 오늘이 첫 만남은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8.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마리아는 이제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마리아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활은 그들에게 생각의 범주 밖의 일이었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이기지 못한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부활 사건은 세상에 속한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믿음의 범주 밖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당연함을 부수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마리아의 증언을 믿지 못하였으나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10. 세상은 여전히 깊은 어둠에 있고, 우리의 삶의 고통과 아픔들은 너무도 큽니다. 그리하여 소망과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은 순진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절망은 너무 뚜렷이 보이고 희망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의 이 땅을 뚫고 들어오신 놀랍고도 신비한 사건입니다. 부활 신앙은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주일까지,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QQlOdBW7EVA (예수 하나님의 공의)

<말씀>

마가복음 16장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나눔>

1. 예수님이 죽은 뒤 사흘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으며, 예수님은 일요일, 곧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2. 오늘 말씀은 그 부활의 첫 상황을 보여줍니다. 주일 매우 일찍 동틀 무렵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그 무덤은 돌로 막은 동굴의 모습이었습니다.


3. 그런데 마땅히 닫혀 있어야 할 돌 문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그 돌은 매우 큰돌이라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4. 세 여인이 무덤 동굴 안에 들어가자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덤 안에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천사였습니다. 천사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아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찾는구나, 그러나 그는 살아나셨고, 이미 여기 계시지 않다.” 예수님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습니다. 


5. 천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전에 살아계셨을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먼저 가셨으니, 너희가 갈릴리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서 베드로와 모든 제자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6. 천사들을 만난 여자들은 매우 크게 놀랐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여자들은 무덤에서 도망쳤고, 너무 무서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7.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 범주 밖의 일입니다. 합리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여자들도 그랬습니다. 당시까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부활을 목격한 사람 역시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성경 인물들이 다시 살아난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같은 육체로 회복된 그들은 다시 죽었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적인 사건,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온전히 임한 사건이었습니다.


8. 이 사건을 처음 경험한 여인들의 반응은 하나님을 마주한 이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모세와 이사야와 같이) 이들의 반응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앞에서 놀라운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이들의 반응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 여자들이 이 부활의 충격을 이겨내고, 그 깊은 의미를 깨닫기 위해선 성령님의 임재와 깊은 신앙적 깨달음이 필요했습니다. 이후 제자들, 바울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9. 그리스도교에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화적 이야기나 종교적 설화가 아닙니다. 부활은 초대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사도들이 온 존재를 부딪치며 경험한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 앞에서 온 존재가 흔들리는 경이로움과 경외로움을 경험했고, 그 부활을 깊게 이해한 후에는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온 생명을 걸었습니다.


1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활의 증언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사도들과 첫 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증언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그 놀라운 사건을 지금 이곳에서 동일하게 우리 가운데 드러내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를 갈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온전히 믿음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고난 주간과 부활 사건을 통해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6Dl5lXZfSUY (주님의 임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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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사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혹은 공동체가 즐거워서, 혹은 수련회 때 받은 감동으로, 혹은 내 삶에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교회를 다녔든 오늘 우리가 다같이 새문안 교회 대학부 공동체에 함께 하게 된 것,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저의 꿈을 넘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꿈,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꿈, 오늘도 여러분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꿈이라 생각합니다. 그 꿈은 여러분이 진실로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삶의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사랑 안에서 사랑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겨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내 삶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저 고통스러운 사건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또 하나님 짐을 얹어주는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끼 금식한다고, 우리가 미디어를 참는다고, 우리가 고난주간 예배를 드린다고 우리의 삶이 무엇이 달라질까, 우리의 생각이 무엇이 달라질까 느껴지기도 합니다.


4.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그저 고통과 고난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 고통과 고난에 담겨있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합니다. 그 사랑을 곱씹고 곱씹는 시간이 바로 고난주간입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를 진실로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고난주간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아침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그것을 위해 금요일 저녁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그것을 위해 금식과 절제를 합니다.


5.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갑니다. 도저히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중심이 되는 것, 가장 바탕이 되는 자리는 바로 이 성찰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여러분 이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저 ‘교회생활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보내기엔 여러분의 젊음과 우리의 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 귀한 시간, 진실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말씀>

마가복음 15장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나눔>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있었을 때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던 이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뿔뿔히 흩어졌을 때, 많은 대중들이 실망하여 사라졌을 때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2. 성경은 이들이 막달라 마리아,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었다고 증언합니다.


3. 모든 것이 좋고, 도움이 될 때 곁에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실패한 순간, 아무런 희망이 남지 않은 실망스러운 순간, 심지어 함께 있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위험이 되는 순간까지 곁을 지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4. 그러나 이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곁을 지켰습니다. 이로써 이들은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5.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순간, 절망이 어둠처럼 모든 땅에 내리는 순간, 모든 기쁨과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순간에 이 여자들의 사랑이 빛이 되어 별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6. 이를 통해, 오늘 말씀은 놀라운 역설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닥칠 때, 아무런 도움이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 삶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조건 없는 사랑, 그저 함께 하는 사랑, 진실로 하는 사랑이 영롱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7. 오늘 말씀에는 이처럼 빛나는 사랑이 또 한사람 등장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반역자들이 당한 처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두둔하거나 감싸는 것, 챙기는 것은 모두 반역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의 시체는 십자가 뒤에 버려져서 들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8.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히’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신실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고, 예를 표하여 자기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모두가 예수님을 비방하고 떠나갔을 때 진실한 사랑과 용기있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9. 아리마대 요셉과 여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특별히 자기 유익과 자기 감정에 기반한 사랑, 상황과 여건을 고려한 사랑, 조건을 두고 주는 사랑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에게 이들은 숭고하고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마저 우리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들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끝까지, 신실하게, 진실하게 사랑했습니다. 이들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오늘 이들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10. https://www.youtube.com/watch?v=vHLleZitN5I (주님만 더)

<말씀>

마가복음 15장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순간을 담은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2. 예수님의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과연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참된 왕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죄목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왕이 되고 싶었고, 진정한 왕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사람들은 오만하고 잔인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이적을 베풀고, 권위 있게 말씀을 전하고, 많은 이들이 따르던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보이자 더욱 조소하며 조롱하였습니다. 인간의 비열함, 질투, 열등감과 잔인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4.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며 모욕했습니다. 네 자신을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조롱했습니다. 남은 구원하되 자신은 못 구원하는 실패자라 조롱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여,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그것을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라 조롱했습니다. 표적을 믿었던 그들은 죽음의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보고 더욱 비웃었습니다.


5.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오만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의 예수님이 인내하시되 끝까지 참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조롱하며 내뱉은 숨결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허락과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지했고, 어리석었으며, 교만하고, 악했습니다. 예수님과 사람사이의 무한한 차이, 그것이 십자가에서 일어난 현실이었습니다.


6. 세시(오전 9시)에 예수님은 못박혔습니다. 육시(오후 12시)가 되자 온 땅이 어두어졌습니다. 구시(오후 3시)에 예수님은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7.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말씀을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었습니다. 이 외침 속에 예수님께서 견디셨던 십자가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견디신 고난은 단순히 육체적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외면과 침묵,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의 고난이었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위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난을 받으신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닌 온전히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한 고난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그 길을 대신 걸어가심으로 진정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9. 예수님께서 죽으신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휘장은 성전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두꺼운 커튼이었습니다.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휘장 너머 지성소로 들어가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찢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마침내 하나님과 사람은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0. 백부장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예수님의 진실된 정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롱과 모욕으로 예수님을 비하했지만, 예수님은 죽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악과 살인을 용서와 생명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rJi0wNooA2Q (십자가)

<말씀>

마가복음 14장

66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베드로의 부인입니다.


2. 베드로가 믿고 사랑하고 따르던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재판을 받았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었지만, 이제 상황이 반전되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사형수와 한패거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여차하면 잡혀서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을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3.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큰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간 것입니다. 아랫 뜰에 서서 계속해서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4. 그러나 베드로의 용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실제적인 위협이 그에게 닥치자 그는 매우 당혹해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며, 결국은 자기 자신의 신념과 자기 존재마저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5. 어느 한 여종이 베드로를 유심히 노려보고 물었습니다. “당신도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나요?” 또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와 한패입니다.” 또 곁에 있는 사람들이 추궁했습니다. “당신의 말투를 보니 갈릴리 지역 사람인데, 혹시 예수와 같은 패거리 아니요?” 사람들은 끈질기게 베드로를 의심하였습니다.


6.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네 질문의 뜻조차 모르겠다’, ‘나는 아니다.’ ‘나는 예수를 알지도 못한다’ 베드로는 당혹한 나머지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7. 베드로는 사실 호언장담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 예언했을 때 그는 강하게 반응했습니다. “ "모두가 걸려 넘어질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예수님과 하나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꺾이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8. 그러나 베드로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실제적인 칼과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여종의 툭 내던지는 질문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실제로는 두려움과 불안, 공포심과 절망감이 그 자신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게 절감했을 것입니다.


9.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존재가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비겁했다. 깊은 절망감과 자괴감이 그를 심연으로 떨어뜨렸을 것입니다. 무엇가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근본적인 차원에서 절망을 느낄 때, 그 절망은 자기 존재를 온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됩니다. 베드로는 울었습니다.


10. 신앙은 역설적으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근본적인 절망, 그 절망은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 지점을 두려워합니다. 절망과 적절한 거리를 두며 거짓 희망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으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마저도 은총이기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 절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기대하며, 기다리며,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qCCtLBlcZ5w (쿰바야, come by here 꼭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