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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하나님의 은혜 (2016.06.12. 대학부 집회 설교)


시편 8편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오늘 말씀은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읽기에 좋은 말씀 같습니다. 숲에서 파란 하늘을 보고,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듣고, 바스락 거리는 흙을 밟으며, 나무향기를 온몸으로 느낀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걷는 중에 오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봉독>

 

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구나 고백하는 것, 모든 삶이 하나님께 있구나 고백하는 것, 나는 완전히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둘러 쌓여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매 순간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알고 주님과 마음을 나누는 것 이것이 귀한 영성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쁘고 치열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이러한 깊은 영성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 당장 해야 할 일들, 내 생각의 근심걱정들이 나를 꽉 붑잡고 있기에 우리는 그 너머의 것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를 조급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예민하게 하고, 하루하루 어떻게 보냈는지를 성찰하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망각하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쳇바퀴를 도는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기도회에 와서 실컷 울면서 기도했지만 사실은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고, 자기 감정만 풀어내는 적이 있지는 않나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사역이라 일을 열심히 했지만 사실 일에만 몰두해서 자신이 상처를 주었거나 상처를 받고 지쳐 떨어진 적은 없었는지지 생각해보십시오. 또는 일상과 삶의 치열함에 매몰되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들은 뒤로뒤로 미루거나 외면한 적은 없었는 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다는 증상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교묘하게 다가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버려라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배교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사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첫째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으로 꼬득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우상에게 집중하도록 만드시는 것이지요.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레 하나님을 멀어집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함정은 놀랍게 무섭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 하나님과 완전히 배치되는 일이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많은 사역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속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는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당신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 일에 함께하도록 초청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산책과 같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 수 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다면 무조건 양보하십시오. 무조건 품어주십시오. 무조건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것, 느낀다는 것, 따른다는 것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은 전도했느냐, 복음화율 몇퍼센트 달성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결단한 자기 죽음에 있는 것입니다. 많이 죽을수록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죽음을 경험한다면, 여러분이 아 이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구나를 깨닫게 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 내가 동참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비로소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제사를 지낸 음식을 먹든지, 안먹든지 이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교가서 율동을 하든, 노래를 하든 그런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놀라운 기쁨과 의와 평화라 가르쳐줍니다. 멜데니우스의 말처럼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것에서는 자유를,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모든 일들을 참여할 때 비로소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의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에 가면 의견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름을 매번 느낄 것입니다. 이 부딪힘 속에서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해주는 것, 내 뜻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 내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