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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21-35 (2017.03.02.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마태복음 2017. 3. 4. 17:48

벌써 3월입니다. 봄의 계절이 왔습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이들, 새 학교를 들어간 이들,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 일터에서 애쓰는 이들, 직업을 구하는 이들,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기타 여러 삶의 자리에서 애쓰는 이들 모두들 새봄, 새기쁨으로 시작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이나 나눔, 심방 모두 환영입니다. ^^


<말씀>

마태복음 18장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의 죄를 얼마나 용서해야  할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7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7번 용서하라 하여도 완전하게 용서하라는 뜻인데, 7번을 70번씩 용서하라는 것은 완전함을 완전함으로 곱하여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2. 사실 이러한 용서는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고 마음이 무너지고 인격이 훼손될 때, 우리는 우리가 한 사람을 용납하는 것, 한 사건 용서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무한히 그리고 온전하게 용서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외면하시는 걸까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정죄감을 주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4. 우리는 예수님께서 용서를 강조하시는 이유를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는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용서받은 자’, ‘용납받은 자’, ‘사랑받은 자’, ‘이해받은 자’, ‘초대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5. 비유에는 세 명의 주인이 나옵니다. 주인과 종, 그리고 종의 동료입니다. 주인은 하나님, 종은 우리, 동료는 우리의 이웃을 상징합니다. 주인은 종에게 만 달란트를 탕감해주었습니다. 이 돈은 종이 감당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일당을 5만 원으로 환산하면, 3조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 종이 그 탕감을 받고 나가는 길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일당을 5만 원으로 환산하면, 오백만 원에 해당합니다.) 빚진 동료를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주인은 자기는 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서 다른 동료의 백 데나리온도 탕감해주지 않은 종을 보며 격노했고, 종을 다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6. 종의 입장에서는 백 데나리온도 큰 돈이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그 돈도 급했기에 동료를 감옥에 가두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실수는 자신이 무엇을 받았는지는 잊고, 자기가 받아야 할 것만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의 존재를 잊어버린 자기중심적 태도가 그의  큰 잘못이었습니다. 


7. 우리 역시 때때로 우리 안에 있는 분노, 상처, 질투, 욕심, 고통에만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겐 너무 큰 문제이기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기 집중적 태도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용납해주신 하나님을 잊게 만듭니다. 오늘 말씀은 이 지점을 짚어줍니다. 예수님은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 7번씩 70번을 용서하라는 것은, 다시 바꾸어 말하면 7번씩 70번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납 안에서만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놀라운 사랑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을 더욱 바라보고, 더욱 간구하며, 더욱 사모하기를 원하십니다.


9.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우리를 먼저 품어주시고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우리는 그 사랑에 늘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용서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될 것이요, 분열과 갈등 가운데 평화를 드러내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10. 오늘 영상은 미국에서 얼마전 있었던 사건을 다룬 YTN뉴스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영상입니다. 함께 보며 우리가 우리 삶에서 어떤 용서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4Rp1KYL-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