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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23-33 (2017.03.16.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마태복음 2017. 3. 17. 14:24

<말씀>

마태복음 22장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의 논쟁입니다. 이 논쟁은 부활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2. 사두개은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이라는 인물을 승계한 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제사장, 대제사장 그룹이었고,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회의였던 산헤드린 공의회의 다수파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권력은 이들과 협조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했고, 이들은 그 대가로 큰 부와 특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큰 부와 특혜를 누렸던 친일 조선인 귀족들과 흡사합니다.)


3.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그룹이었기 때문에 성전을 매우 중요시했고, 율법 그중에서도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강조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부활’ 개념은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4.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오늘 논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에서 가장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5. 당시 유대인의 문화에서는 형의 아내가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를 자기 아내로 받아들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과부가 홀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녀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었고, 더불어 노동력과 자손의 번식이 중요한 시기였기에 가족의 부를 유출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6. 이 관습을 이용해 예수께 부활의 난제를 물어본 것입니다. 첫째 형이 죽어 그 아내를 둘째가 받고, 둘째가 죽어 셋째가 받고, 셋째가 죽어 넷째가 받고, 이런 식으로 일곱째까지 받아서 한 아내에게 실제적으로 일곱 명의 남편이 생겨버린다면, 부활 이후에 이 아내의 남편이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얼마나 상식적이지 않은지를 물어본 것입니다.


7. 그때에 예수님은 그 문제에 대답하시지 않고, 그 문제의 전제인 ‘부활’의 개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은 단지 지금 살고 있는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또 이후에 보여주신 부활은 그러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사두개인은 그저 합리적 이성 안에서 생각할 뿐, 그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8. 성경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나, 야이로의 딸이나, 나사로, 다비다, 유두고 등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으나 이 사건들을 ‘부활’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잠시 육체가 다시 회복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보여주신 ‘부활’은 ‘새롭게 창조된 몸’, ‘하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의 형식’, ‘더 이상 죽지 않은 새로운 몸’, ‘죽은 생명에서 죽지 않는 생명으로 옮겨진 몸’,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부활은 우리가 이해하고 경험할 수 없기에, 아직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요, 신비적인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생각한 부활은 이전으로 돌아간 몸이라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부활은 완전히 새로운 몸입니다.


9.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부활이요, 살아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난 부활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우리의 생각의 방식 밖에 있는 초월적 선포이기에 우리는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안에 있는 아이가 바깥세상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여 최후에 임할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뿐입니다. 이 놀라운 부활 생명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10. https://www.youtube.com/watch?v=TH4xfC3Ft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