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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2017.08.04. 금요기도회 설교)


베드로전서 3장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오늘은 한기림 찬양대 주관 기도회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사실 요즘 시대는 신앙 있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신앙생활하는 우리 청년들을 ‘종자’라 생각합니다. 곡식을 재배하고 나면 농부는 추수한 곡식을 둘로 나눕니다. 한 부분은 먹기 위한 곡식과 다음 곡식을 재배하기 위한 종자로 나눕니다. 그런데 곡식의 재배량이 적으면 먹기 위한 곡식을 줄일까요, 종자를 줄일까요? 맞습니다. 먹기 위한 곡식을 줄입니다. 겨울을 넘기면서 다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어도 절대 종자를 먹지 않았습니다. 종자는 다음해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급감하는 시대입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풍성했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종자씨를 잘 보호해야 합니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서 한국교회가 크게 흔들릴 때 우리는 이 귀한 종자씨들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야 합니다. 


새문안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 청년들이 현존하는 미래입니다. 새문안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다름이 아니라 이들의 신앙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종자씨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더불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누어 봅시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의 청년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다같이 9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네가 가는 곳마다 복을 빌어주어라. 이렇게 복을 빌어주기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너는 복의 통로이다.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 12장 1~3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네가 복이 되리라 선포합니다.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인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복이 되는 것,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 너희가 부름을 받았다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 역시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받은 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중국집에 가면 복이라고 써놓았습니다. 그것도 쏟아지라고 뒤집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하기도 하고, 베개나 밥그릇, 이불에 복자를 써붙여 놓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도 복자를 많이 쓰기도 하였습니다. 복덕방, 복지, 복부인 등도 복자를 사용했습니다. 울산대 철학 교수 최정호라는 분은 그의 책 ‘복에 관한 담론’에서 우리 사회에서 복이란 오래 사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아들을 많이 낳는 것,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영달을 누리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며 오래 살며 명문가를 이루는 것을 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좋아하는 말씀이 믿음의 명문가문, 우리식대로 해석한 복과 기독교 신앙이 합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조금 다른 뉘앙스임을 우리는 마태복음 5장의 8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여기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네가 복이다. 선포하는 것은 네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너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 네가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일생에 하나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 만납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 긍휼이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의 죄 용서를 받은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을 이루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가 하나님의 의를 위해 박해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복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상황과 상관없이 내가 복 받은 사람이라 고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됩니다.


그러한 복이 된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8-9절 말씀은 선포합니다. 


복이 된 사람,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사람은 같은 마음으로 동정할 줄 압니다. 아파하는 형제 자매를 보고, 아파할 줄 알고, 불쌍히 여길 줄 압니다.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복, 곧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자아가 죽지 않고 팔팔하게 살아있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만 자기가 손해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 다른 이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모든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곧 복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내 곁에 있는 이를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죽으셨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또한 내세울 것 없는 용서받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겸손해집니다. 공손해집니다. 온유해집니다. 무엇보다 다른이들의 아픔에 공감합니다. 그것을 보며 감정적으로 공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함께 아파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아파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성령님께서는 내 곁에 있는 이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탄식에 참여하는 것, 그 사람이 복의 통로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기꺼이 다른 이의 고통과 죄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악을 품고 선을 내는 것, 그러한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의 복의 통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우리 모두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는 삶, 예수님 닮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을 오늘 말씀 10~11절에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악을 복으로 바꾸는 삶은 크게 네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변의 고난 받는 이들을 돌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첫째 생명을 사랑합니다.

둘째 정직합니다.

셋째 선을 행합니다.

넷째 평화를 구하는 삶을 삽니다.


/ 예수님처럼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를 통해 복의 통로가 될 것을 가르칩니다.


오늘 말씀이 가르치는 두 번째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복의 통로가 되어라. 그리고 두 번째는 네가 복의 통로로 살아갈 때 겪게 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입니다.


선을 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대체로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도 13절에서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해치겠습니까? 보통은 격려와 사랑을 돌려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의로운 길을 가려고 할 때 우리는 고난을 받기도 하고, 때때로 극심한 핍박을 받게 됩니다.


왜 이러한 고난과 핍박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이 우상을 숭배하는 부조리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네 가지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10~11절 말씀에 있습니다.


첫째 생명을 사랑합니다.

둘째 정직합니다.

셋째 선을 행합니다.

넷째 평화를 구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복의 통로가 되는 것, 고난받는 이들을 보살피는 방법이 세상의 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할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 권력/ 학벌/ 인기 그중에 제일은 돈이라.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복도 돈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돈만을 추구하는 삶,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삶은 우리가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생명을 사랑하기 보다는 이익을 사랑합니다. 2015년 칵테일 새우의 비밀을 아십니까? 어린이 1만명 이주민들의 노예노동 (16시간, 15분 휴식), 3조 4천억, 수많은 환경파괴와 재앙


세상은 정직하게 하는 것보다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정직하지 못한 기업들 때문에 참 많은 이들이 죽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옥시, 221명(사망 92명)


세상은 선을 행하는 것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바보, 옳은일을 택하는 것보다 이익이 되는 일을 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


세상은 평화보다는 이익을 추구합니다. (전쟁, 시리아 전쟁, 북한의 도발)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길을 간다는 것은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넉넉한 위로를 드립니다.


1) 14절 -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복있는자 - 팔복 

2) 14절 -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아라 – 우리는 무엇위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3) 15절 – 소망에 관한 이유를 준비하자.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를 선포하는 것이 곧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4) 16절 - 선한 양심으로 우리를 비방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자.

5) 17절 - 선을 통해 고난을 받는 것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낫다. 사람은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 


로빈S 샤르마 – 얘야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사람들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에는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종자씨앗의 운명은 가혹합니다. 특별히 극심한 흉작에서 살아남은 종자씨는 그 생명을 이어갈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싹을 티워서 자라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리가 진정한 복의 통로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난받는 이웃을 돌아보십시오. 한 생명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정직하게 사십시오. 선을 행하십시오.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한 일을 행하는 삶은 어쩌면 고난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 길을 걸어갈 때 여러분은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귀한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걷기에 그 길은 가장 기쁘고 감사한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