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마가복음 9:30~37 (2018.02.13.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마가복음 2018. 2. 18. 14:01

<말씀>

마가복음 9장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나눔>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8장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자신이 걸어갈 길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 예언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무기력하게 돌아가실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능력을 예수님께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었고, 이방 제국, 우상들과 겨루어 승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또한 이러한 일을 보여주시리라 확신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수도)으로 올라가시기로 하시자 제자들은 모두 기대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수차례 이미 가까워졌다고 선포한 하나님 나라, 곧 주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우상숭배자들(이방제국)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더럽혀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참한 억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정리하시고 새로운 유대 왕국을 세우시리라 기대했습니다.


4.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듣고 있는 것을 듣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목하는 것을 볼 뿐, 우리의 관심과 집중이 닿지 않는 것은 잘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세계관과 패러다임은 단순히 우리의 생각일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통로가 됩니다. 


5. 제자들의 세계관과 관심은 오로지 예수님의 승리에만 집중되어 있었을 뿐 예수님의 죽음은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고백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고, 다시 묻는 것도 두려웠으며, 아예 못들은 척하며 자신의 시선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6.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 눈에 중요한 것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과 성공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축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권세와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힘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안락과 평안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위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오직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진 근원적인 한계입니다. 


7. 나아가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이 따르고 섬긴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우상이었고, 이 우상을 가지기 위해 다투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집요하게 자신이 바라보는 것만을 추구했습니다.


8. 우리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예수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그 우상을 얻기 위해 이웃의 것을 빼앗고,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다투는 일을 기꺼이 추구합니다. 


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어린아이는 당대에 가장 천한 사람의 표본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다. 


10. 예수님께서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시는 사랑을 깊이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아이를 품는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 사랑으로 가는 길이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도 우리 자신의 우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기꺼이 우리 곁의 가장 낮은 이웃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요? 이 물음에 진실하게 반응하는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iA54bv_cnbc (예수 따라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