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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양날의 칼 (2018.02.09. 대학부 동계수련회 첫날 설교)


창세기 37장


요셉과 형제들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다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주제 : 우리의 현실은 왜곡된 사랑으로 빚어진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우리의 상처와 연약함, 우리의 죄와 악이 있다.

      이제, 모든 것들을 주께로 가져오자.

      주의 사랑 안에서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자 -> 하나님께 집중하자.


서론 1: 수련회의 의미

여러분은 이번 수련회에 무엇을 기대하고 오셨습니까?


수련회라 한다면 응당 경험되어지는 것들이 있지요.

1. 뜨거운 기도회의 시간

2. 함께 하는 즐거운 공동체 시간

3. 맛있는 식사와 자연에서의 회복

4. 좋아했던 그녀, 그와의 우연한 만남


목사님은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에게 간절히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의 주파수를 주님께 맞추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내가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계속 신경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산책을 할 때에도, 조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함께 공동체 프로그램을 할 때에도, 좋아하는 친구와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물론 말씀 들을 때에도, 찬양을 할 때에도, 기도를 할 때에도 계속 하나님을 기억하고, 신경 쓰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련회의 핵심 의미는 내 삶의 일부를 시간을 내어 주님과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투와 표정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수련회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시길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만날수록 새로운 분이십니다. 지난 수련회에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번 수련회는 그 하나님 만났던 경험을 되풀이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모습들을 놀랍게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혹시 하나님을 한 번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깊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론 2: 이번 수련회의 주제


여러분 올해 대학부 주제가 무엇인가요?

‘올리브’입니다.

올리브에는 어떤 뜻이 있나요? All live, All leave, All love


맞습니다. 올리브에는 생명과 떠남과 사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 단어는 우리의 신앙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들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 안에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이 올리브에 대해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저와 김영광 전도사님이 함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올리브라는 주제를 잘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함께 준비하던 중, 요셉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 요셉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올리브의 주제들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원래 우리 대학부의 주제는 생명, 떠남, 사랑 순서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는 그 순서를 조금 바꾸어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사랑, 떠남, 생명입니다. 제가 첫날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 둘째날에는 김영광 전도사님께서 떠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셋째날은 다시 제가 생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각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론 1 : 요셉의 생애와 왜곡된 사랑


여러분 편애를 경험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편애를 받았다면 사랑을 받는 쪽이었나요? 아니면 사랑을 못받는 쪽이었나요? 


저는 편애를 받아보기도 했고, 편애를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늘 선생님의 편애가 있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좋아했고, 돈 많은 집 아이들을 좋아했습니다. 촌지도 많이 받았고, 선생님의 편견도 심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여자 친구가 도둑으로 오해를 받았는데, 정말 계속 맞으면서 아니라고 부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 생각으로는 저 정도 부인하면 믿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그 친구가 진짜 아니었다면 그 친구 마음에 평생 상처가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애는 어린 친구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줍니다. 사랑을 못 받는 친구 뿐 아니라 사랑받는 친구들 역시 상처를 받습니다. 그 사랑이 왜곡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편애가 가득한 공간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분열과 다툼, 질투와 폭력이 싹트게 됩니다.


오늘 요셉의 이야기는 이렇게 편애와 함께 시작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야곱에서 시작됩니다. 야곱의 이야기 역시 편애로부터 시작됩니다. 야곱에겐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이 둘은 쌍둥이었습니다. 이 둘은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좀 더 여성적이었고, 에서는 남성적인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어머니었던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고,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습니다. 욕심이 많았던 야곱은 이 편애를 이용했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데 성공했고,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형 에서를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 먼 지역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타향에서 고생을 하며 지냈습니다. 이러한 고생 속에서 야곱은 더욱 자신을 챙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함께 지냈던 사람이 삼촌 라반이었습니다. 삼촌은 야곱을 철저히 이용하였습니다. 야곱은 삼촌의 딸이었던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삼촌은 7년 노동을 댓가로 라헬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삼촌은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아내로 주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다시 라헬을 아내로 받아들이기 위해 7년 노동을 더 하기로 약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이후 6년을 더 일하여 총 20여년을 삼촌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배경 속에서 야곱은 자신의 아내들을 철저히 구분해서 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레아와 라헬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특별히 레아는 야곱의 자식들을 많이 낳는 반면, 라헬은 자녀를 낳을 수 없어서 더욱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자신을 자신의 세력으로 여겼던 두 여인은 자신의 시녀들마저 동원해서 자녀 많이 낳기 경쟁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레아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 디나의 어머니가 되었고, 실바는 갓과 아셀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빌하는 단과 납달리의 어머니가 되었고,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구도 안에서 야곱의 총애를 받는 라헬의 자녀는 두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첫째였던 요셉은 야곱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겪었던 삶의 고난, 치열한 경쟁, 두려움과 공포, 배신감과 치욕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편애, 그것이 요셉을 향한 야곱의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이 받았던 것은 그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특별해야한다는 강요가 담긴 사랑이었습니다. 너는 가장 빛나야 한다는 압력이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끊임없이 아버지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에 합당한 성과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애니어그램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3번 유형입니다. 전도사님은 지난 주일에 2번 유형이라고 했습니다. 2번 유형을 말씀하시면서 칭찬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3번 유형은 칭찬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성취를 해야하는 아이였습니다. 많은 칭찬들이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칭찬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셉의 삶의 자리는 어떠했을까요? 어머니가 무려 세 명이나 됩니다. 그중에 자기 어머니는 없습니다. 동생인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나머지 어머니들이 눈치를 주었을까요? 요셉에겐 형들이 10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형들 굉장히 무서운 형들이었습니다. 세겜이 동생을 욕보이자 그 마을 전체를 몰살시킨 형들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루하루 가시방석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에겐 아버지의 인정만이 유일한 생존의 근거요, 자신감의 바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가장 사랑하신다는 그 우월감으로 어머니들과 형제들의 눈치를 견뎌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형들을 무시하고 형들을 고자질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발버둥쳤던 사람에 가깝습니다. 요셉은 꿈을 꿉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인사하는 꿈이었습니다. 보통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꿈을 꿨다하더라도 그 꿈을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정욕구가 배려보다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께, 형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떠벌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존재를 확신했던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더욱 더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요셉이란 존재가 형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건너편에 있는 동네 이름이 무엇인가요? 정동입니다. 이 정동 이름이 왜 정동인지 아시나요? 정릉이 있었던 동네라 정동입니다. 이 정릉은 신덕왕후라는 왕비의 무덤인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입니다. 이성계가 이 둘째 부인만을 총애하고, 둘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이성계의 첫째 부인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던 이방원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둘째 부인의 아들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둘째 부인이자 자신의 계모의 무덤을 파서 지금의 정동으로 옮겨 버리고, 그 무덤을 장식했던 돌은 청계천에 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요셉의 사건과 매우 비슷합니다. 형들은 항상 편애를 일삼던 아버지 야곱에 대한 분노,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동생 요셉에게 투사했습니다. 이들은 그 깊은 분노를 참지 못해 요셉을 죽이고자 하였고, 몇몇 온건한 형들이 아니었다면, 요셉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여다보면, 야곱, 레아, 빌하, 실바, 라헬, 요셉, 베냐민, 요셉의 형들 모두 비극의 주인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살기위해 애썼고, 사랑받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그 끝은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야곱 가족의 비극은 사실 우리들 모두의 비극,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이 가진 필연적인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비극적 파국 속에서 애절하게 울고 말았습니다. 그는 무지했고, 편애했으며, 절망했습니다.


본론 2: 비극


우리는 모두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때때로 왜곡된 사랑을 주기도 하고, 때때로 문제가 많은 사랑을 주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비극이 발생합니다. 


저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먼 이야기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들에 한번 귀를 기울어 봅시다. 여러분, 여러분은 가정에서 행복하신가요? 몇몇 가족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가족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정말 많은 가족들, 솔직히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가족이 참 많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힘들게 사는 것일까요? 한사람, 한사람 살펴보면 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좋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모여서 어울리다보면 그 안에서 우리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사랑을 주려고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전혀 교감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안정되지 못한 삶이 참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인생에서 안정을 얻지 못하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되려 우리 안에 불안함이 더 커지고 맙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이 더 앞선 삶을 추구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 경쟁심과 열등감을 증폭시킵니다.


혹은 선생님이나 제가 누군가를 더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 요셉처럼 다른이의 미움을 동시에 얻게하고, 마음을 비틀어 왜곡 시킵니다.


더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 사랑을 주는 법, 공감하는 법, 감사하는 법을 잃게 만들어줍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우리를 되려 무너뜨립니다. 

이솝우화 – 개구리와 생쥐

개구리와 생쥐는 친한 친구입니다.

둘은 날마다 만나서 재미있게 놀지요.

둘은 어느 곳에 가든지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발목을 서로 묶었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놀러 갈까?" 생쥐가 물었습니다.

"연못이 좋아. 난 지금 너무 더워서 한바탕 헤엄을 치고 싶어."

"하지만 나는 헤엄을 못 치잖아."

"괜찮아 나 하는 거 보고 배우면 되."

생쥐가 무서워 하는데도 장난 심한 개구리는 연못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개구리는 생쥐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물 속에서 풍덩 풍덩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는 사이 생쥐는 물을 잔뜩 먹고 그만 죽고 말았어요.

죽은 생쥐가 연못 위를 떠다니는 것을 솔개가 보았습니다.

솔개는 휙 생쥐를 채어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 끝에 대롱 대롱 개구리가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도 함께 솔개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기에 함께하고자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려했던 개구리는 결국 생쥐와 함께 슬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와 같은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저는 대학부를 보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면 다 좋은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모여서 일을하고, 함께 공동체를 꾸려가기 시작하면 어려움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사랑을 원하는데,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늘 한계가 있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서로에게 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씨앗을 뿌리려고 애쓰지만 어느새 뒤돌아보면 가라지가 잔뜩자라서 망쳐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얼마나 상처를 받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결핍 속에서 왜곡되게 재생산됩니다. 우리의 상처가 우리의 사랑에 반영됩니다. 결국 우리의 사랑은 깊은 상처만을 남기는 것입니다.


본론 3 : 희망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비극은 사랑을 갈구하나 진정한 사랑이 없기에 비롯됩니다. 우리의 많은 비극들이 결국은 자기 사랑을 추구하다 발생한 비극입니다. 우리는 짝사랑이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오는 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복음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대학부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


이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 차원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어떤 교리적 차원도 아닙니다. 이 사랑은 우리 삶의 모든 문제와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삶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상처들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나 자신을 볼 때


우리 안에는 왜곡된 사랑의 상처로 가득합니다. 

불안감, 열등감, 두려움, 분노, 미움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죄악들을 회개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상처와 아픔들은 우리 내면의 죄성들과 결합해 수많은 죄악을 

질투했기에 미워했고, 두려웠기에 공격했으며, 불안했기에 무시했던 경험들

내가 더 갖고자 빼앗고, 내 욕망을 위해 상대를 이용했으며, 하나님을 거절했던 순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장 35~37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앞에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그분의 사랑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위한 죽음이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고백이요, 진실로 나를 가장 존귀한 존재로 여긴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느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통해 모든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깊은 세계에서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 일을 위해 성령님이 오늘 여러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나 내게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