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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근원, 하나님 (2018.02.10. 대학부 동계수련회 셋째날 설교)

     

창세기 50장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수련회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거의 완전체가 된 것 같아요. 가득가득 차있는 여러분을 보니 기대가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저는 사실 마음속 한켠에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함께 와서 기도하는데,

 여러분들이 꼭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내가 경험하고 느낀 그 하나님, 나를 사로잡은 그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왜 제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왔냐면, 


정직하게 고백할때 그 일이 저에게 달려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건 제 능력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게되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냐면, 모든 의심과 근심,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어제 꼭 대답해주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 대답을 해주지 못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챙겨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의심들이 우리 안에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인 것 입니다.


보통은 두가지의 방식을 취합니다.

첫째는 질문을 멈추는 것입니다. 의심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저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순수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맹목적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자기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신앙은 매순간 살아서 꿈틀거리는 데, 딱딱하게 굳어버린 신앙을 믿게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됩니다.


둘째는 질문만 하는 경우입니다.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정직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물음과 질문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은 결국엔 지쳐버리고 많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 질문을 하고 물음을 해도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것은 복음이 전파되는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말씀은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을 결단하는 행위에서 시작됩니다.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솔직히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인생을 복음에 걸었습니다. 공부도 잘했습니다. 나름 재능도 있었습니다. 시험공부를 조금해도 시험을 잘 보는 재능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많이 놀았습니다. 노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지도 잘 압니다. 돈이 좋은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해, 여러 고민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뜨거운 체험이나 신앙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목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주는 것입니다. 저를 신뢰해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소리를 할까 이야기를 귀울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자신을 걸어보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질문과 의심을 멈출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그 질문들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요청합니다. 들어라. 들어라. 들어라. 그 들음을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의심이 많고, 여전히 질문이 많고, 여전히 내 안에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지만, 전 존재를 통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그 만남을 누리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전 삶을 통해 응답할 것입니다. (항공권 + 여행지)


수련회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할 때.

여전히 의심이 있고 두려움 있겠지만,

그 길을 찾아 나서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요셉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제 어제,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셉의 삶은 어떠했나요?


요셉의 삶은 기구합니다.


간단히 재 브리핑 해드리겠습니다.


1. 야곱 가족의 상황과 요셉이 받았던 편애

2. 요셉의 노예생활과 보디발의 아내

3. 요셉의 감옥생활과 떡 맡은 관원장, 술맡은 관원장

4. 파라오의 꿈과 총리

5. 형들과의 재회


요셉의 삶을 지탱했던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아버지의 사랑

2. 성실함

3. 지혜


그 모든 것들에게 배신당한 요셉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사실 요셉의 이야기에는 놀라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야기하시는 장면이 안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겐 직접 나타나주셨습니다. 야곱은 함께 씨름을 했습니다.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가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엇이 있나요? 꿈 밖에 없습니다. 

되려 삶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창세기 말씀을 통해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제 전도사님이 참 좋은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가 일하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일들이 일어나 형통하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상황이 의아했습니다. 

아니 형통하려면 노예가 되지 말아야지, 감옥에 가지 말아야지, 얼른 꺼내줘야지 하나님은 곳곳에서 요셉에게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있음을 신뢰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저는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청년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보여야 하나님을 믿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야 하나님을 따르지요,

하나님이 느껴지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는 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솔직히 내가 보는 눈이 많아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아직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 사역을 했는데

나에게 해준 게 무엇인가요?

취업이 딱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대학을 보내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멋진 애인을 주시는 것도 아니고


더 솔직히 말하면

내 가정의 문제, 상황의 문제, 여건의 문제 하나도 해결되는 게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전도사님 목사님 앞에서 목소리 크게 지르면서 음악 크게 틀고 기도하는데

그거 솔직히 우리 감정 동요시키려고 그런거 아닙니까?

우리 과거 솔직히 고백하라고 하는데, 

그거 옛날 캠프에서 엄마아빠 생각하게 해서 울리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 어디있습니까? 


저는 이러한 고백이 정말 솔직하게 우리가 하고 있는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이 제 안에서 공명될때

저는 진정으로 무기력함을 느꼈고, 

하나님을 설명할 방법을 못 찾았으며,


그래서 그저, 요셉처럼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절망의 계단으로 한칸씩 내려갈 때

어둠으로 들어갈때, 

가장 불신으로 던져질때,

그 어둠과 불신의 자리에서 동시에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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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 사는 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어떻게 하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됩니까?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삶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갑자기 인생이 흑백에서 칼라로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늘 의미, 가치, 사랑 이런것들로 부터 소외당했습니다.


1. 해야하는 것이 늘 우리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들을 어떻게든 느끼고자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나름대로 추구해왔습니다. 


그 한계들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짜 삶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위대한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요셉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을 그 하나님의 신뢰 위에서 해석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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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생명의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