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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1~8 (2018.03.29.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마가복음 2018. 8. 9. 17:48

<말씀>

마가복음 16장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나눔>

1. 예수님이 죽은 뒤 사흘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으며, 예수님은 일요일, 곧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2. 오늘 말씀은 그 부활의 첫 상황을 보여줍니다. 주일 매우 일찍 동틀 무렵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그 무덤은 돌로 막은 동굴의 모습이었습니다.


3. 그런데 마땅히 닫혀 있어야 할 돌 문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말씀에 따르면 그 돌은 매우 큰돌이라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4. 세 여인이 무덤 동굴 안에 들어가자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덤 안에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천사였습니다. 천사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아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찾는구나, 그러나 그는 살아나셨고, 이미 여기 계시지 않다.” 예수님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습니다. 


5. 천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전에 살아계셨을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먼저 가셨으니, 너희가 갈릴리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서 베드로와 모든 제자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6. 천사들을 만난 여자들은 매우 크게 놀랐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여자들은 무덤에서 도망쳤고, 너무 무서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7.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 범주 밖의 일입니다. 합리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여자들도 그랬습니다. 당시까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부활을 목격한 사람 역시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성경 인물들이 다시 살아난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같은 육체로 회복된 그들은 다시 죽었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적인 사건,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온전히 임한 사건이었습니다.


8. 이 사건을 처음 경험한 여인들의 반응은 하나님을 마주한 이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모세와 이사야와 같이) 이들의 반응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앞에서 놀라운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이들의 반응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 여자들이 이 부활의 충격을 이겨내고, 그 깊은 의미를 깨닫기 위해선 성령님의 임재와 깊은 신앙적 깨달음이 필요했습니다. 이후 제자들, 바울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9. 그리스도교에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화적 이야기나 종교적 설화가 아닙니다. 부활은 초대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사도들이 온 존재를 부딪치며 경험한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 앞에서 온 존재가 흔들리는 경이로움과 경외로움을 경험했고, 그 부활을 깊게 이해한 후에는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온 생명을 걸었습니다.


1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활의 증언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사도들과 첫 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증언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그 놀라운 사건을 지금 이곳에서 동일하게 우리 가운데 드러내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를 갈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온전히 믿음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고난 주간과 부활 사건을 통해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6Dl5lXZfSUY (주님의 임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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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사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혹은 공동체가 즐거워서, 혹은 수련회 때 받은 감동으로, 혹은 내 삶에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교회를 다녔든 오늘 우리가 다같이 새문안 교회 대학부 공동체에 함께 하게 된 것,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저의 꿈을 넘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꿈,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꿈, 오늘도 여러분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꿈이라 생각합니다. 그 꿈은 여러분이 진실로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삶의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사랑 안에서 사랑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겨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내 삶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저 고통스러운 사건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또 하나님 짐을 얹어주는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끼 금식한다고, 우리가 미디어를 참는다고, 우리가 고난주간 예배를 드린다고 우리의 삶이 무엇이 달라질까, 우리의 생각이 무엇이 달라질까 느껴지기도 합니다.


4.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그저 고통과 고난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 고통과 고난에 담겨있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합니다. 그 사랑을 곱씹고 곱씹는 시간이 바로 고난주간입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를 진실로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고난주간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아침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그것을 위해 금요일 저녁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그것을 위해 금식과 절제를 합니다.


5.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갑니다. 도저히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중심이 되는 것, 가장 바탕이 되는 자리는 바로 이 성찰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여러분 이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저 ‘교회생활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보내기엔 여러분의 젊음과 우리의 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 귀한 시간, 진실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