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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랑 (2021.04.11.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19:1~15)

 

마태복음 19

1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도 있도다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3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가장 먼저 곁에 있는 사람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대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은혜와 사랑이 곁에 있는 이들에게 흘러 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부터 20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전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일주일도 못되어 고난을 받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말씀들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예고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억해야 하는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 지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잠시 18장에서 나누었던 말씀을 기억해봅시다.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라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한사람 한사람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앞에 있는 사람을 귀히 여겨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람,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를 섬겨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특별히 누군가가 죄악을 저질렀을 때엔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그가 주님께로 돌아올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람, 사람을 향한 주님의 뜻을 아는 이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18 마지막 비유를 통해서 이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는 일은 우리가 사랑받는 사람, 은혜 받은 사람,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백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줄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요,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원칙으로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특별히 나의 배우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선포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앞선 비유를 마치시고 갈릴리 지역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무리가 따르게 되었고, 주님께서는 다시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때에 다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질문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3 말씀입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들의 질문은 교활한 질문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버리면 안된다 말씀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모독했다 비방할 계획이었고, 만약 예수님께서 버려도 된다 말씀하시면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비방할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질문 자체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으셨습니다. 4절부터 6절까지 말씀입니다. 다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2 24 말씀을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반박하지 못하도록 말씀을 통해 반박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관하여 예수님께 물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결혼의 근본적인 의미에 관하여 응답하신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요,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는 것이요, 놀라운 사랑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율법의 규칙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7 말씀입니다.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그들은 곧바로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여 예수님께 반박하였습니다. 그들은 신명기 24 1절과 2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반박하였습니다.

 

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2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인용해 그렇다면 모세는 이혼 증서를 허락하여 주었고, 버릴 있도록 말씀하였는지, 예수님의 말과 모세의 말이 다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8, 9 말씀입니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시대에서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과 같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공평한 관계로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소유물에서 남편의 소유물로 바뀌는 것이 바로 결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마치 맘에 드는 물건을 버리듯 아내를 버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자가 버림 당하면, 여자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여자 홀로 생존하는 자체가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러한 버림받는 여성을 배려하는 말씀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여자에게 이혼 증서를 줘서, 그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있도록 허락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악한 남편들이 이러한 모세의 율법을 악용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혼 증서만 써주면 이혼해도 된다고 말씀하였다고 말하면서, 자기 아내를 버리는 데에 모세의 율법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내를 존귀히 대하지도 않았고, 말씀의 뜻을 헤아리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상황 전체를 뒤집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내를 소유물로 보지 않고,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여기는 , 결혼을 어떤 물건 계약서처럼 다루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의 서약으로 여기는 ,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유리한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의 뜻대로 해석하는 것을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18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사람, 사람은 무엇보다 존귀히 여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마치 몸에서 손과 발이 소중하듯, 눈이 소중하듯, 앞의 사람을 몸의 일부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연약함을 감싸주고, 그를 기다려주고, 그를 품어주고, 용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자리가 바로 곁에 있는 배우자임을 선포하십니다. 사랑을 위해 하나님께서 아내를 만나게 하시고, 남편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타락하기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아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바라보며 이는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 고백하였습니다. 둘이 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은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고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놀라운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다시 엉뚱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10 말씀입니다.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을 조금 풀어서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의 권리를 빼앗긴다면 차라리 저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아내를 소유물로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파격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바에야 차라리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소유물로 대하지 않고, 뼈로 대하고 살로 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소유물은 언제든지 맘대로 있지만, 뼈와 살은 언제든지 함부로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살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잘라낼 없고, 뼈가 맘에 든다고 잘라낼 없습니다. 손이 아프면 전체가 아프고, 발이 다치면 전체가 힘들어집니다. 품어야 되고, 용서해야 하며,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이러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사랑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든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1, 12 말씀입니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도 있도다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의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보내주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겐 아내와 남편을 보내 주셔서 사랑을 하게 하시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보내셔서 사랑을 하게 하시기도 하시며, 어떤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사랑을 하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누구도 사랑을 하지 않아야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것을 피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3절부터 15 말씀입니다.

 

13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주님께서 사랑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어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애들은 비천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내 사랑을 말하시는 제자들은 전혀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아이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가장 작은 자를 가장 귀한 이로 여기는 , 이웃을 몸과 같이 여기는 , 그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혼이 죄다, 아니다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사람들을 구분 짓고 아래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소유물로 삼고, 사람을 도구처럼 대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아내도 소유물로 생각하였고, 자녀들도 소유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아내를 버릴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도 꾸짖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 안에도 여러모양으로 여전히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앞에 있는 사람은 가장 귀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뼈로, 살로 여기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품어주고 환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마음으로 곁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라 말씀하십니다. 아내를 그렇게 바라보고, 형제를 그렇게 바라보고, 동료를 그렇게 바라보고, 교회의 성도를 그렇게 바라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있을 가능하다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진실로 깨닫게 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을 결단하고 따라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삶이 천국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