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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진 마음, 나중된 마음 (2021.05.09.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0:29~34)

 

마태복음 20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때에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사람이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 직전에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포함하여 앞선 말씀 덩어리에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분명히 전하고자 하신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이유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위함이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말씀을 가장 중요한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은 앞서 선포되었던 말씀과 더불어 함께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19 30절을 먼저 봉독하겠습니다.

 

30   그러나 먼저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자로서 먼저 자가 많으니라

 

우리 주님께서 19 가장 마지막 , 20 직전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자로서 먼저될 자가 많으니라. 20 16절을 함께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16   이와 같이 나중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 되리라

 

주님은 다시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서 나중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된다고 다시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26, 27 말씀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은 다투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넘어서 뒤집는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먼저가 되는 길이 하나님 앞에서는 나중이 되는 길이 되고, 세상에서 높아지는 길이 하나님 앞에서는 낮아지는 길이 된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거꾸로 세상에서 나중이 되는 길이 하나님 앞에서 먼저가 되는 길이 되고, 세상에서 낮아지는 길이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는 길이 된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다양한 예를 들어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기준과 판단, 나아가 자기의 우상과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3년을 같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십자가의 겸손한 길을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이름으로 높아지는 길을 계속 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로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크게 안타까워하시며, 책망하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때,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리석은 제자들과 분명히 비교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29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때에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위해 여리고를 떠나셨습니다. 여리고와 예루살렘의 거리차이는 25km이기 때문에 하루면 걸어서 있는 거리였기에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때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리들은 지난주 제자들이 가졌던 마음처럼,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혁명가로 생각하고, 병을 고쳐줄 능력자로 생각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메시아로 생각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에 작은 사건 하나가 생겼습니다. 30, 31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0   맹인 사람이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맹인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맹인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들의 외침은 단순했지만, 매우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특별한 비밀이 하나 감추어져 있는데, 주님이라는 표현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고백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분명히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메시아, 그리스도라 고백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주실 있는 ,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분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간절했고, 가난했습니다. 마치 지지난주에 나누었던 포도원 비유에서 저녁 5시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무리들은 이들을 냉담하게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꿈을 이루실 예수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맹인은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리는 맹인들을 보고 잠잠하라 꾸짖었습니다. 무리들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금이 처음된 사람이 나중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구원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더욱 소리를 질러 주님을 찾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이들이 믿을 것은 소리를 질러 주님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은혜를 얻는데에 부끄러움이 없었고, 자신들이 낮아지는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간절한 마음만이 이들의 마음에 가득하였습니다. 마치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듯, 수로보니게 여인이 모욕을 감내하며 주님께 간청했듯,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지붕을 뜯어 예수님께 데려갔듯, 이들은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주님께서 이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32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우리의 뜨기를 원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직접 그들의 눈을 만져 주셨습니다. 이들은 있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가장 마지막 기적으로 맹인을 고치시는 것에는 나름의 뜻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가 몸의 눈을 뜨는 치유인 동시에 마음의 눈을 열게 하는 치유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은 거듭난 사람이 된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 이전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살아왔던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중심이 완전히 뒤바뀔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높아지고 싶어했고, 먼저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가치관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으며, 여전히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얻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였습니다. 여전히 영적으로 눈먼 사람이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도 주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신념, 가치관, 욕망들을 하나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맹인들을 가로막고 꾸짖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들 또한 주님과 같이 있었지만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고,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맹인들은 달랐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자기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알고 있었고, 오직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간절함과 겸손함, 진실됨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만나주셨고, 그들은 마침내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것입니다. 나중된 자가 주님을 만나게 먼저가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먼저된 자라고 생각하여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나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먼저되게 했던 그것만을 우선순위에 두고 주님에 무관심할 나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과 더불어 낮은 곳에 임할 그곳에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높아지려 했으나 그곳에 주님이 없이 나홀로 있다면, 높음은 결국 헛된 높음이 되고 것입니다. 주님은 맹인들을 고쳐주심으로 놀라운 비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높아지고 싶고, 먼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스스로 먼저가 되고자 한다면 결국 너는 낮아지고 말것이고, 너는 나중이 되고 말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일 나를 만나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면, 나를 따르기 위해 나중이 되려고 한다면, 너는 나와 함께 높은 곳에 임하게 것이며, 나와 함께 진정한 먼저가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길은 오직 은혜 안에서만 걸어갈 있다.

 

우리는 오늘 맹인을 본받아야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간구하며 우리 주님을 찾아야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기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용기를 주시고, 나중이 되고자 하는 믿음을 주실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하며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진정한 영광을 경험하게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