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1~8절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오늘 설교 제목은 열매입니다. 아직 온전한 여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제목은 가을에나 어울릴 듯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목이 열매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가 바로 삶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1,2남선교회를 위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열매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우선 아름다움이 떠오릅니다. 풍성한 열매가 논과 밭에, 그리고 나무에 알알이 맺혀 있는 것들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또 맛이 떠오릅니다. 과일이든 채소이든, 쌀과 벼와 같은 곡식이든 열매는 참으로 맛있습니다. 배부르게 합니다. 또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네 풍성함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최대의 명절이 언제 입니까? 네,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왜 이렇게 이야기합니까? 바로 풍성한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열매는 한편으로는 긴 시간과 인내의 결과입니다. 어떤 열매도 심자마자 뚝딱 나는 것은 없습니다. 긴 시간을 통해 정성껏 가꾸고 노력한 결과입니다. 긴 시간 모든 바람과 햇살, 비와 기온 변화를 거쳐서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열매는 모두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열매는 그 자체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 작은 속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열매는 많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한 평생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열매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열매를 비유로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그중 오늘 말씀 또한 열매를 통해 그 뜻을 드러내신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열매를 통해서 우리 1,2 남선교회 회원님들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네, 포도입니다. 요즘 칠레산 포도가 그렇게 많이 나오던데 참 맛있습니다. 이 포도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포도는 한 열매에 많은 알이 담겨져 있어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가는 덩굴에 맺히는 열매로서 낮아보이는 곳에서 맺혀진 열매입니다. 그리고 잘 익은 포도는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포도는 오랜 동안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참’포도라고 선포하셨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냥 포도나무가 아닌 ‘참’포도나무라고 하셨다는 점입니다. 왜 ‘참’이라는 단어를 붙이셨을까요? 지금까지 너희가 생각해온 포도나무는 가짜 포도나무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해 왔던 그런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참 포도나무가 자신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런 선포가 많이 나타납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을 비판하시고 참성전으로서 예수님을 선포하십니다. 위에 속하는 삶과 아래로 속하는 삶을 비교하셨습니다. 야곱의 우물의 물과 참 생수이신 예수님을 비교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떡과 이스라엘의 떡이 다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을 짚어주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오해하고 있었을 까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이스라엘에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들을 문자적으로 지키는데 급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을 자신을 돋보이는 데 사용하였고, 성공하고 부강해지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서스럼 없이 타인을 정죄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말씀은 오히려 하나님을 가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방해하고 오해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율법은 철저히 악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방식을 거부하셨습니다. 부강한 나라 이스라엘, 눈에 보이는 성취로서의 이스라엘,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참 포도나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참 포도나무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심으로 포도나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곧 아버지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이어져야 만 참 포도나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생명도 얻지 못하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말라버린 가지가 될 것입니다.
다함께 5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다는 것입니다. 이 열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방금 전 우리는 가시적인 성취나 성과, 그럴싸해보이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이 참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풍성히 맺을 수 있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이 의미하는 그 뜻은 바로 9~13절까지에 나와 있습니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무엇입니까? 친구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포도나무가 곧 예수님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맺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포도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라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성품 그 자체인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맺어야 할 열매는 바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내려져온 구원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 희생적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시는 사랑이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주심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사랑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시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사랑으로 내주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그 사랑을 이 아픈 역사속에서 끝까지 함께하시며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곧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또한 열매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같이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갑자기 원하는 데로 구하라, 다 이루어주겠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연결되었을 때 어찌 되는 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연결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무엇이라 고백하나요? 아버지 이 잔을 옮길 수 있거든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의 결과 끝까지 희생하는 사랑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바로 이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기도가 일치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순종하고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맺게 될 열매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오늘 주목해야 할 단어는 영광과 제자입니다. 다같이 8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참 포도나무가 되셨고,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그 연결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곧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연합 안에서 비로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안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군대에서 행사를 할 때 군악대가 있습니다. 그 군악대의 음악을 들어보면 영관급과 장성들, 그리고 대통령의 팡파레가 다 다릅니다. 이 장군이나 대통령이 탄 차량이 들어오면 각각 맞춰서 맞는 팡파레가 울립니다. 그때 기준은 당연히 그 차가 어떤차인가가 아니라 그 차에 탄사람이 누구인가입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영광을 위한 팡파레이기 때문에 차량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마티즈를 탔다고 해서 빵파레를 대충하거나 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꿰뚤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소박한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그 검소함을 우리는 칭찬할 것이고 오히려 소박함이 대통령의 영광을 빛내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차라도 그 속에 깡패 두목이나 사기꾼이 있다면 우리는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욕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 뿐입니다. 돌려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 뿐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온전한 열매를 맺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것이 제자의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고 부활의 길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서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연결되어 있어야 할 이 자리입니다.
오늘은 우리 1,2 남선교회 회원들을 위한 기도회입니다. 우리 아버지들, 그 삶의 자리가 곧 격동의 역사였습니다. 일본의 압제, 아픔의 6.25, 지긋지긋한 가난, 그리고 빠른 산업화 과정, 그리고 민주화가 있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온갖 어려움과 난관을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오셨습니다. 이 속에서 교회를 지켜내고, 가정을 일구었으며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습니다. 삶의 어떠한 성취를 떠나서 그 시간들을 버텨온 것만으로 존경받기에 충분하고 훌륭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시대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모든 미디어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젊고 건강한 것이 제일이다.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 논리적인 옳고 그름이 지혜보다 더 중요하다. 부유하지 않으면 쓸모없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내용보다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반대로 죽음과 아픔, 상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합니다. 여전히 아픈사람, 떠나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이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리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하고 당장 먹고 자고 싸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또한 우리 1,2남선교회 회원들은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에 그 해답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참 포도나무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속의 성취, 육신의 안목과 정욕이 헛된 거짓 포도나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것들로 우리를 판단하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려서는 안됩니다. 저 화려한 성전, 저 명예로운 율법, 저 강한 국가를 포도나무라고 생각하지 말야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시작하십시오.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나를 지켜주는 돈, 명예, 권력, 직장, 인맥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이제 예수님을 본받아서 희생적으로 사랑합시다. 긴 세월 살아오며 누구보다 아픔을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상실을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의 깊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을 깊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에게 이 사랑을 전해주셔야 합니다. 많은 어른들이 여전히 성공의 방법, 성취의 방법, 비전들을 전하려 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깊이 있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픔과 상실, 연약함, 인내 등에서 배운 깊은 인생의 통찰입니다. 그것을 전하고 사랑하시는 1,2 남선교회 회원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영광의 생명을 기억하십시오. 에릭슨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노년기의 지혜는 ‘황혼 앞에서 갖는 삶 자체에 대한 초연한 관심’이다. 이제 비로소 인생을 깊이 있게, 초연하며 보실 수 있는 나이가 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생을 가장 또렷이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그 영광의 영생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두시는 1,2남선교회 회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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