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두려움, 신뢰, 용기 (2020.09.20.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0장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제자의 길을 세상이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과 박해의 길이 될 수 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고난을 잠시 허용하심으로 오히려 복음의 은혜의 깊이를 더욱 드러내신다는 것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고 끝내 승리케 하신다는 것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봉독하는 과정 속에서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좀 길지만 24~2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예수님께서 무엇일 강조하여 말씀하시고 계실까요?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두려움(불안)은 우리에게 있어서 근원적인 감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 안정적이고 안전한 삶을 누리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을 얻지 못할 것 대한 두려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찾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이렇게 각자 자기 삶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씩 있는 것입니다. 어떤 차원에선 우리가 열심히 돈을 벌고,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나를 계속 잡아 흔들고, 불안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나 두려움이 있지만, 문제는 이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 그 두려움은 우리를 지배하는 실제적인 힘이 되어버립니다. 우리의 우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악한 원수 마귀의 세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원수가 우리의 두려움을 흔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 곧 제자의 삶은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 선포합니다. 24절, 25절 말씀입니다.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여기에서 집주인, 선생, 상전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제자, 종, 집 사람들은 제자들을 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귀신들의 왕을 뜻하는 바알세불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자, 귀신들의 능력으로 이 일들을 한다고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욕했던 이들이 그의 제자들은 더 쉽게 공격하고 모욕하지 않겠느냐 라고 미리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을 막고자 악한 세력들이 이처럼 주님을 적극적으로 공격한 것처럼 그의 제자들을 공격할 것이라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 예수를 전하는 삶이 집요하게 공격 받을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신 것닙니다. 

이러한 악한 권세의 공격에 가장 먼저 흔들리는 가장 취약한 지점이 바로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우리의 이 약한 고리를 흔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제자된 삶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많은 선교단체들이 선교를 떠나기 전에 훈련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약한 고리를 잡아 흔드는 악한 권세들과 담대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훈련입니다. 그중 가장 많이 하는 훈련이 바로 재정 훈련입니다. 모든 재정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갖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통해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을 내어놓고, 가진 것이 없어도 신뢰함으로 결단하고, 재정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지지 않는 훈련을 합니다. 재정이야 말로 우리를 흔들고 무너뜨리는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기에 이 두려움을 다루는 훈련이 선교사가 되는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를 살피고, 이 두려움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고, 이 두려움을 주님 안에서 넘어서는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러한 두려움 앞에서 매번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1차적으로 마주치게 될 두려움은 공동체에서 이단으로 정죄받고 쫓겨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전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라 고백할 때 그 고백은 유대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 친구들로부터도 왕따 신세가 되어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공동체성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던 당시에 이것은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이와같이 선포하셨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소외시킬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이단이라 정죄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결국 너희가 말한 것이 옳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결국 너희가 선포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니, 담대하게 그 길을 걸어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주님의 제자들이 마주치게 될 두려움, 실제적인 고난과 박해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실제로 순교하게 될 상황을 염두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27절, 28절 말씀입니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을 더욱 담대하고 크게 말하라. 온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라. 너희를 적대하는 사람들은 그저 너희의 육체의 생명을 가져갈 수 잇을 뿐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모두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이 모두 주님께 달려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하라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에 겪게될 어려움을 미리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두려워하지말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에 마주하게 될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에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를 두렵게 할 것들이 무엇일까요? 크게 내적 차원, 외적 차원, 영적 차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제자된 모습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크게 이 세가지 차원에서 끊임없이 부딪힘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게 될 때 우리 내적 차원, 생각과 마음의 부딪힘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이 복음이 신뢰한 만한 일인가, 내가 지금껏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내가 예수님을 따름으로서 해서 겪어야 할 내적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내 삶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가? 기꺼이 상처와 거절을 감수하고 사랑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가? 이러한 부딪힘을 끊임없이 겪어가는 것이 바로 제자된 삶의 결단입니다. 사실 자기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신념과 마음을 주님께 내어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게 될 때 우리의 외적 차원의 부딪힘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 삶의 실제적인 헌신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산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기를 요청합니다. 복음을 따르지 않았을 때엔 감수할 필요가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제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나눔과 헌신과 사랑의 실천을 더욱 깊어지기 마련합니다. 주님께서 이를 요청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넘어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게 될 때 우리는 영적 차원의 부딪힘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자 애쓸 때, 우리의 삶이 주님의 원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게 될 때에, 이에 대한 영적인 방해도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사람들의 박해를 받게 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것이 영적 전투일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서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기도로서 그 길을 넘어서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0~12절 말씀은 이처럼 선포합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은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과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속이고, 우리의 상황을 흔들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향한 집중력과 방향성을 흔들려고 하는 악한 권세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가장 값진 삶을 살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천로역정)

이 모든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29절~31절 말씀입니다.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때로 이처럼 두려움과 불안과 맞서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굳게 서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우리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주님을 굳게 신뢰할 때 우리는 기꺼이 이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요, 하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앞선 두려움은 우리의 인생의 근원적인 감정이라 고백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알 수 없음에서 비롯된 감정이요, 우리는 누구나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돈을, 지식을, 명예와 인정과 권력을, 관계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과 생명과 미래를 책임져 주리라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말씀은 선포합니다. 그것은 너희를 근본적으로 두려움과 불안에서 건져내주지 못한다. 그것들을 우상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너희의 내면을 파괴하고 관계를 무너뜨릴 뿐이다. 두려움을 피하려고 찾아간 길이 잠시잠깐은 안전한 길처럼 보이지만 점점 좁아지고 험난한 길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터진 웅덩이)

예수님 믿고 예수님 따르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제자가 된다는 것은 먼저 우리 자신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우리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동시에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살리는 일입니다. 주님은 제자에게 다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전하는 값진 삶을 살게 하십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오게 되는 것은 깨닫지 못했던 두려움을 깨닫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길이며, 나아가 모든 이들이 두려움을 이기도록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를 위해 용기를 낼 것을 요청합니다. 32절, 33절 말씀입니다.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제자들은 이제 유대인들 앞에서, 로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맞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때때로 그 일은 사회에서 버림받고, 심지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시인하는 이를 구원하시겠다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 진실로 사는 길, 가치있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꺾여 용기를 포기하는 일은 결국 그 두려움에 굴복되는 일이요, 구원없는 우상숭배의 삶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에겐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 많은 것들 쌓아갑니다. 그리고 겉으로 평안하다 평안하다 살아갑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모든 우상을 포기하고,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악한 권세는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더욱 큰 두려움으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책임져주시고 구원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뿐 아니라, 이제껏 두려움으로 움켜쥐었던 우리의 손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주시는 평안함과 자유와 기쁨과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을 기꺼이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제자 됨의 신비를 누리는 모든 성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