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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2021.04.16. 금요기도회 설교. 갈라디아서 5:1~12)

 

갈라디아서 5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갈라디아서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라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은 바울을 첫번째 전도여행때에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복음을 심은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뒤에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찾아왔고,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왜곡한 잘못된 가르침을 갈라디아 교회에 심었습니다. 마치 풍성한 곡식이 자라고 있는 좋은 밭에 수많은 가라지가 뿌려진 것과 같았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 버렸고, 심지어 그들의 믿음의 아버지와 같았던 바울을 떠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마음을 다해 복음으로 낳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견딜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격정적인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가 우리가 함께 나누는 갈라디아서 말씀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2 말씀을 통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름 받은 사도라는 사실과 자신의 사도됨을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도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복음 또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받은 정통 복음이며, 오히려 자기가 베드로를 다그치기까지 하였다는 에피소드까지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3, 4 말씀을 통해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마치 성인이 되기 전에 초등교사가 필요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임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율법을 보내셨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선포하하였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의 죄를 폭로하고, 믿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케 한다는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더불어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에 어떻게 복음을 전했었는지,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교회가 어떻게 바울을 섬겼었는지를 선포하며 갈라디아 교회를 설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1~4장까지의 설득의 말씀을 마무리하는 말씀입니다. 다음주에 나눌 오늘 말씀 다음 말씀은 이제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전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챕터가 정리되고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부터 4절까지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바울은 종교적인 규례와 절기를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있다고 있다는 주장을 종의 멍에라고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와 정반대에 있는 자유의 선포입니다. 바울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선언합니다. 모든 종교적인 강박과 율법주의에 빠지지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제가 예전에 사실 놀랐던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보다 사주나 성명학, 풍수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러한 것들을 통계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미신을 굳게 믿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러한 것들 믿고, 찾아 나서는 것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마치 하나님의 의지와 인도하심 보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인생을 이끈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보단,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움켜쥐고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이러한 모든 저주와 헛된 운명론을 끊어내는 사람들입니다. 헛된 징크스와 헛된 종교적 불안을 이상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고,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상 이런 헛된 미신을 믿지도 않고,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무덤의 위치가 우리 인생을 바꾸지 않고, 이름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지 않으며, 우리가 태어난 생년월일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오직 세상의 창조주이자 주관자이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의 인생을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은 신앙생활 속에도 이러한 미신적인 모습들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은 바뀌었는데, 믿음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같은 두려움이 있고,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거둬 가실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을 같은 두려움이 있고, 심지어 때문에 혹시 지옥에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길흉화복을 주는 신으로만 생각하고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헌금을 내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자녀가,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선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기가 받을 것을 받지 못할까봐, 또는 우리가 두려워서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선물을 받으면서 기쁘기보단 오히려 근심이 생기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꺼이 드리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진실된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얻고자 하십니다. 그리하여 요한복음 3 16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응답하여 기꺼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길흉화복을 내리시는 , 그저 두렵기 때문에 뜻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가르침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욕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못보도록 눈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종교적인 의무를 지키는 것이 마치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왜곡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사랑의 자리로 불러주셔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려고 하시는 , 거짓 교사들은 그것을 못보게 하고 그저 할례와 규례만을 강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는데, 거짓 교사들은 그것을 막고 헛된 종교 생활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을 막아서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선포하였습니다. 5, 6 말씀입니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울은 선포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사건이요, 그의 부활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갖게 우리는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 구원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롭지 못하나 예수 안에서 의롭고, 우리는 연약하나 예수 안에서 강하며, 우리는 우리의 삶은 없으나 우리의 살은 우리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우리 예수님과 우리가 이미 연합하였는데,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우리가 할례를 받고 안받고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그것은 그저 몸의 표시를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매여있는 , 그리하여 사랑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놀라운 구원의 세계를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제 그들에게 전해진 헛된 가르침을 끊어 내어버리라 명령합니다. 7절부터 12 말씀입니다.

 

7   너희가 달음질을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다시한번, 처음 신앙생활 하던 그때를 언급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달음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이렇게 가로막았고,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 그들의 권면은 여러분을 부르신 ,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생각하는 종교생활을 전하였을 뿐입니다. 여러분 적은 누룩이 빵을 부풀게 하듯, 여러분 안에 들어온 거짓 교훈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리게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누구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을 흔드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제가 그냥 할례를 받으십시오 라고 가르쳤다면 오히려 유대인들과의 충돌없이, 거짓 교사들과의 갈등 없이 훨씬 편하게 복음을 전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쳤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전해야 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기에 저는 입장을 포기할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을 어지럽게 하는 거짓 교사들을 잘라내 버리십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에서 돌아올 것과 거짓 교사들을 잘라내 버릴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있을까요? 바울은 비밀을 담대하게 믿음이라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것을 믿는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음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의 증거라는 것을 믿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인생도, 관계도, 생명도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먼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상 어떤 종교적 규례나 절기나 할례와 같은 것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됩니다.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드러내며 살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속에 아름답게 열매맺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