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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의 함정 (2021.01.17.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5:1~20)

 

마태복음 15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고, 예수님을 적대하던 이들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13장 마지막 말씀은 고향에서 쫒겨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의해 예수님은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들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거절 당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진 14장 말씀은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선포하고, 예수님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은 당대 왕이었던 헤롯의 회개를 주장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세상의 악한 권세에 의해 하나님의 사람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것을 전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외면당하고 핍박당하고 무시당하는 지를 보여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않고, 그분의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가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물위를 걷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 의미를 선포하셨습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에 먹었던 만나와 메루라기를 기억하게 하시고, 갈라진 홍해를 떠올리게 하신 것입니다. 비록 고난과 박해가 있고, 거절과 무시가 있어도 주님의 사역은 계속될 것이요,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심으로 이 놀라운 선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음을 입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예수님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적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율법이란 구약성경 말씀, 특별히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씀입니다. 이들은 이 말씀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과 물위를 걸었던 사건의 의미를 어쩌면 누구보다 먼저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선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예수님을 가장 미워하고 적대하였습니다. 말씀을 가장 잘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과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문제였는지,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베푸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실 때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언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결례였습니다. 오늘 말씀 1,2절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쳤을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대어도 나음을 얻고 있을 그 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갈릴리 사이의 거리는 150KM나 되었습니다. 하루에 30KM씩 걸어도 오일이나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 멀리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먼 거리에서 찾아온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것은 예수님의 이적이나 치유,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 나라의 징표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이 때에, 이들은 그들이 지켜온 전통에 관하여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이 장로들의 전통이란 모세의 율법을 더욱 세분화하여 지키던 일종의 전통적인 신앙 규칙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꼬투리 삼아 공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이나 말씀보다는 오직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신앙 전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3~6절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하던 행동 하나를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전통 중에 고르반이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자녀는 마땅이 부모를 봉양해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부모님께 봉양할 재물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그 봉양을 면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여 자기의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잘못된 전통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셨습니다. 말씀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세운 전통이 오히려, 말씀의 근본 정신을 왜곡하는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꾸로 질문하심으로 전통의 정당성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이러한 전통들을 만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오히려 자기 욕심을 채우고, 사람들을 통제해서 자기 권세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이어지는 7~9절 말씀입니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죄악을 저지르는 이들을 이사야 말씀을 통해 비판하셨습니다. 위선자들이 너희에 관하여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바 있다. 들어보아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한다 말하지만, 실상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은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양 가르치고,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지키는 장로들의 전통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오히려 자신들의 욕심과 아집만이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것은 부드럽습니다. 유연하고 따뜻하고 잘 변화합니다. 그러나 죽은 것은 움직임을 멈추고, 딱딱해지고, 차가워집니다. 종교가 타락할 때 보이는 현상이 이와 같습니다. 무수히 많은 규칙이 있되, 그 정신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중세 말 타락했던 카톨릭 교회가 이와 같았습니다. 수많은 종교 규칙이 있고, 수많은 통제가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조선 말 무너졌던 성리학도 이와 같았습니다. 수많은 예법과 규칙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예법과 규칙들은 백성들을 질식시키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근본정신이 사라지고, 정신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었던 가능성들이 사라지고, 그저 규칙이 남고, 규칙에 대한 처벌이 남고, 규칙을 지탱하는 권력이 남을 때, 그 종교, 그 사회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란 무엇인가, 말씀이란 무엇인가를 핵심적인 비유로 선포하셨습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제자들은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 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5~20절 말씀을 통해 이 비유의 뜻을 설명해주셨습니다.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장로들의 전통에서 정결을 강조하는 전통은 거룩함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거룩함이란 구분됨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장소, 하나님께 속한 시간, 하나님께 속한 민족, 하나님께 속한 삶을 계속해서 추구하고자 한 그들의 마음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세분화하여 구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손을 씻는 것도 거룩한 태도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가다 보니 이러한 마음은 사라지고 그 행동만이 규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에 따라 그 행동이 언제든 유연하게 바뀔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규칙이 그 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규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규칙이 이 모든 일을 거스르는 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해를 하고 그 일을 해야 하는데, 그저 일을 습관적으로 하다가 오히려 그 일의 목적을 망칠 때가 있습니다. 이와같은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관성에 일침을 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고 먹는데, 도대체 왜 손을 씻는 지는 알고 있는 것이냐? 너희가 아무 생각없이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종교 규칙은 쓸데없는 일에 불과하다. 너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오히려 너희 마음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악된 생각들이다.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 이러한 것들이 너희를 무너지게 하고, 이러한 것들이 너희를 악하게 한다. 만일 너희가 이러한 너희의 악한 생각을 물리치지 않는다면, 너희는 종교적 행동이나 심지어 말씀까지도 너희의 이러한 악한 생각에 이용할 것이다. 주님은 무엇이 근본이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붙들지 않고, 그저 형식적인 말씀과 규칙을 전하는 바리새인들을 이와 같이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12~14절 말씀입니다.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분노하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와같이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지 않는 것들은 뽑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지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 그것들을 그냥 두라 말씀하시며, 이들이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종교적 열심에만 빠져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폴 부르제라는 사람이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데로 생각하게 된다.’ 이 격언 속에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선 우리의 신앙의 핵심에는 마음이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규칙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생각을 가지고 그 마음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지를 매순간 고민하고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매 순간 맞이하는 도전과 같습니다. 저에게 두 자녀가 있고, 이 두 자녀를 모두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방법은 각 자녀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각 자녀를 헤아리고, 각 자녀에 맞는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매일 새로운 적용인 것입니다. 이것은 매 순간 새로운 창조적인 일이기에 사실 매우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만일 우리가 그러한 노력을 포기하고, 그저 규칙을 지키는 것에 안주한다면 그것은 부지런한 일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나태의 길로 빠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진실로 사랑하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입니다. 사랑이 멈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죄악된 마음입니다. 그렇게 될 때 역설적으로 우리 안에 있던 모든 죄악들 곧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또아리를 틀것이요, 그 죄악들이 우리의 규칙과 전통, 심지어 말씀을 이용하여 우리의 삶과 관계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새로운 사랑의 마음을 주시는 우리 주님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죄악된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충만한 사랑을 누릴 때, 우리는 생명력있는 삶, 하나님 나라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지혜 안에서 우리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복음의 능력 안에서 진실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