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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부탁, 빌레몬의 관용 (2021.05.21. 금요기도회 설교. 빌레몬서 1: 8~25)

 

빌레몬서 1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1)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이상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앞으로 계산하라

19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외에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형제여 나로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행할 줄을 아노라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있기를 바라노라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하루 하루가 이렇게 빨리 지나는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주일예배 설교를 같은데, 다시 금요일 저녁이 돌아왔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다보면 그렇게 살아왔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바쁜 속에서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순종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아침마다 묵상할 시간을 주시고, 이렇게 금요일 저녁 주를 돌아볼 있는 시간을 주시고, 주일 아침 주님께 예배드릴 있는 시간을 주시는 같습니다. 그러한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이렇게 함께해 주시는 우리 성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그러한 성도 여러분들께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에 이어 빌레몬서 두번째 말씀입니다. 빌레몬서는 1장으로 되어있는 짧은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지난주, 이번주 이렇게 두주에 걸쳐서 말씀을 나누면 끝이 납니다. 다음주부터는 빌레몬서에 이어 골로새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두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나누었다시피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다른 바울 서신들은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이었기 때문에, 서신서 이름이 교회가 있었던 지역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 그리고 빌레몬서는 서신서의 이름이 수신자의 이름으로 붙여졌습니다.

 

빌레몬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자 골로새 교회의 유력자였습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가정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연스럽게 부유하고 유력한 성도 독실한 사람의 집을 개방하여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지역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에게 직접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사람으로, 바울의 섬김과 돌봄 안에서 믿음이 자랐기에 신앙이 든든히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말씀에서 있듯이 이러한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을 칭찬하였습니다. 빌레몬의 사랑과 섬김은 골로새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레몬에게 바울은 특별한 부탁이 있어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해방시켜 주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로마시대에 유력자였던 빌레몬에게는 당연히 노예가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는데, 그가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도망친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네시모는 바울을 충실하게 돕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주인 빌레몬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요청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편지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귀한 말씀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이 어떻게 빌레몬에게 요청하는지 오늘 말씀을 함께 보며 나누어보겠습니다. 8절부터 9 전반부까지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요청을 하면서, 놀랍게도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탁을 거리낌 없이 명령할 있는 권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권위를 통해 일을 해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자신과 빌레몬 사이의 사랑 안에서 일을 해결하고자 부탁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방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말씀에서 함께 나누었듯 그리스도인은 그저 의무에 의해서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먼저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자유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선을 행합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희생을 수도 있고, 헌신을 수도 있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도 있지만, 안에 자발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의 기쁨,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람만이 얻을 있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부탁을 때에도 이러한 원칙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원칙을 고백한 뒤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이 편지를 보낸 목적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9 후반절 말씀부터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9   나이가 많은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지금 전도와 선교에 매진하다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성경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도 로마나 에베소의 감옥에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미 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고백할만큼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오십대 초중반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네시모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전할 있었고, 그를 온전한 성도로 세울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정에서 오네시모가 바로 빌레몬의 도망친 노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이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편지를 통해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고 풀어줄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얻은 아들이라 고백하며 자신의 뜻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전에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쓸모없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자신과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되었음도 전하였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유익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오나이멘 비슷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제는 그가 진실로 필요한 사람이 되었음을 전한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그리스도를 위해, 교회와 바울을 위해 헌신된 사람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이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일꾼이 있도록 과거의 일을 정리할 있도록 빌레몬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설득하기 위해 이제 오네시모는 나의 심복, 원어로 보면 심장과 같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요, 그만큼 자신에게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한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곁에 두고, 자신을 돕는 일을 시키고 싶다는 뜻도 함께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며, 오네시모가 일을 감당할 있도록 준비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아무리 자신이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고 싶어도, 일은 원래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 승낙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일을 허락해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바울은 승락을 받기 위해 오네시모를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계속해서 16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이상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앞으로 계산하라

19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외에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형제여 나로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행할 줄을 아노라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어떻게 대해주었으면 좋을지,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있어서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인간적인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자고 권유하였습니다. 15 말씀은 이러한 뜻입니다. 오네시모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도망쳤던 것은 오히려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문제를 은혜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문제를 바라보자고 권유한 것입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도망친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통해 오히려 그를 자유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함께할 동역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함께 동역하자고 빌레몬을 설득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제 오네시모를 종처럼 대하지 말고, 종을 넘어서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나에게 있어서 복음으로 연결된 오네시모는 참으로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오네시모는 복음으로 연결되었을 아니라, 인간적으로 오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니 얼마나 특별한 사람입니까라며 더욱 친밀하게 그를 대해줄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파격적인 뜻을 전하였습니다. 만일 빌레몬이 자신을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오네시모를 자신과 같이 대접하여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빌레몬에게 있어 바울을 목회자요 영적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자신의 도망친 노예를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대해달라 부탁한 것입니다. 바울은 나아가 혹시 오네시모를 통해 손해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자신 앞으로 계산하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농담처럼 19절에서 내가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해준 것은 받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내가 지금껏 너에게 복음을 전하고, 헌신과 사랑으로 섬긴 것처럼 오네시모를 그렇게 대해달라 부탁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말을 마치고 빌레몬에게 인사를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당부를 하였습니다. 지난주 말씀에서 나누었듯 빌레몬은 하나님을 굳게 믿고, 성도들을 깊이 사랑하는 신실하고 귀한 성도였습니다. 그의 섬김으로 많은 성도들이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바울도 소식을 듣고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제껏 빌레몬이 그랬던것처럼, 오네시모에게도 그렇게 대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식을 듣고 다시 기쁨과 평안을 얻기를 구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부탁을 들어줄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부탁한 것보다 대해줄 것을 알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22절부터 25절의 말씀은 바울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있기를 바라노라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이제 찾아갈 것을 전하였습니다. 아직은 감옥에 있기 때문에 어서 찾아갈 있도록 기도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바울은 끝으로 자신과 함께 감옥에 있던 에바브라와 계속해서 함께 동역하는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의 문안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끝으로 다시 은혜를 구하는 축복을 하며 말씀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오늘 바울이 부탁한 부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빌레몬은 이러한 바울의 부탁을 충실히 들어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직분을 감당하였을 아니라, 훗날 에베소 교회를 책임지고 담당하는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충성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역하다 로마의 박해때에 순교하였습니다. 말그대로 다음세대를 넉넉히 감당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일을 감당할 있었던 것은 바울의 지극한 사랑과 빌레몬의 관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랑과 관용안에서 우리 주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한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볼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인해 가치관이 뒤바뀐 사람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빌레몬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용서할 없을 아니라 용서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간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노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를 자신처럼 대해주며 용서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은 자체로 무례한 일이요, 모욕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빌레몬에게도 세상이 이해할 없는 새로운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기에 기꺼이 이러한 일을 부탁할 수도 있고, 감당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베푸는 일은 오히려 기쁨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인간적인 감정도, 물질적인 불이익도, 나아가 세상의 질서도 넘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은혜의 힘을 통해 우리를 바꾸시고, 세상 가운데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오네시모를 세운 바울과 빌레몬처럼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귀한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바울이 빌레몬에게 부탁하며 계속해서 강조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발성, 자유입니다. 기꺼이 하는 , 기쁜 마음으로 하는 , 부탁한 것보다 더하는 , 그것은 오직 은혜 받은 사람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다시금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자.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자. 성령 충만을 간구하자. 그렇게 우리의 마음에 우리 하나님이 가득할 , 우리는 바울처럼, 빌레몬처럼, 나아가 오네시모처럼 주님의 귀한 도구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