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에 핀 가지 (2021.12.05. 주일예배 설교)
이사야 11장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지난주까지의 말씀을 통해 마태복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심부터 그분의 사역과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 까지 주님의 모든 삶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부터 19일까지 3주간은 우리 주님의 오심을 예언하는 구약의 말씀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구약에서 우리 주님의 오심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예언을 통해 우리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지난부터 19일까지는 대림절 기간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또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는 절기들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 예수님을 기다렸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의 고백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예수님을 다시 묵상하고 기다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말씀이 쓰여졌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탈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말씀과 언약을 주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절을 지나 사울왕을 중심으로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 왕국은 다윗으로, 솔로몬으로 계승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예루살렘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고, 솔로몬은 그 수도에 성전을 지어서 신앙과 정치가 모두 융성한 강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솔로몬이 죽고 난 뒤에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두지파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다윗왕이 속했던 유다지파와 나머지 지파들이 분열하고 만 것입니다.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남쪽에 남아 남유다 왕국이 되었고, 나머지 10개 지파는 북쪽에 남아 북 이스라엘이 지났습니다. 아침마다 묵상으로 나누고 있는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이러한 왕국의 역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라밖 상황과 형편들도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말그대로 ‘내우외환’의 시대가 찾아온 것입니다.
먼저 나라 안의 상황을 살펴보면 우상숭배와 불의가 가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함께 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그저 전쟁의 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비의 신, 다산의 신, 풍요의 신들과 같은 신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는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믿음은 이들의 삶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만 열심히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이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너무도 쉽게 가난한 사람들의 것들을 빼앗고, 연약한 이들을 죽이고,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와 권력을 숭배하고, 교만함과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고 타락할 때 이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돈과 권력을 함께 섬기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일상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중적인 삶을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1장 11~17절 말씀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심히 제물을 바치고,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손에 이웃의 피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악한 행실을 그치고, 선행을 하고, 정의를 구하고, 학대 당하는 자를 돕고, 고아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과부를 위해 변호해 주어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안을 곪아가고 있었는데, 동시에 이스라엘 밖에서도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앗수르의 팽창이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잔인하기로 유명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팽창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그리고 아람과 이집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국에 비해 북이스라엘, 남유다는 너무나 작은 나라였기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먼저 남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남유다를 굴복시켜 동맹을 맺게 하고, 그 힘으로 앗수르와 대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에 공격에 맞서 앗수르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앗수르는 파죽지세로 내려와 북이스라엘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앗수르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남유다와 이집트쪽으로 계속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남유다는 이러한 상황속에서 다시 이집트, 블레셋과 동맹을 맺으려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동맹을 통해, 외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문제를 동맹으로 해결하려는 남유다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서 30장 1~3절, 7절 말씀입니다. 이해를 조금 쉽게 하기 위해 새번역으로 봉독합니다.
이사야 30장 (새번역)
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거역하는 자식들아, 너희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 너희가 계획을 추진하지만, 그것들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동맹을 맺지만, 나의 뜻을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죄에 죄를 더할 뿐이다.
2 너희가 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바로의 보호를 받아 피신하려 하고, 이집트의 그늘에 숨으려 하는구나."
3 바로의 보호가 오히려 너희에게 수치가 되고, 이집트의 그늘이 오히려 너희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
7 "이집트가 너희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된 망상일 뿐이다. 이집트는 '맥 못쓰는 라합'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을 의지하고, 그저 사람의 지혜와 계략에만 의지하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과 지혜로 모든 것을 생각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그 길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분명히 선포하신 것입니다. 결국 앗수르는 결국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지만, 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여 오히려 그 전쟁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앗시리아를 직접 쳐서 십팔만 오천명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죽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 선포된 곧 다가올 메시아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외우내환의 상황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메시아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포는 우리 주님 예수님을 예언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봉독하겠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우상숭배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 불의와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상, 전쟁과 환란으로 혼란스러운 세상 가운데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새로운 소망을 선포한 것입니다. 1절 말씀은 선포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입니다. 커다란 나무가 잘라져 그루터기만 남았는데, 그래서 이 나무를 다시 살릴 수 없기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그루터에서 다시 싹이 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싹이 자라서 가지가 되고, 그 가지가 결실하여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훗날 남유다는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불의와 불신앙으로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조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무너진 폐허 위해서 새로운 싹을 내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셨고, 그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 곧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구약의 이야기가 끝나가며 하나님의 백성이 이야기가 멸망을 끝난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이야기를 세우신 것입니다.
말씀은 이어서 새로운 왕, 예수님을 통해 이루실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예수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이 임할 것입니다. 그 영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입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세상은 새로운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지혜요, 지식이요, 능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였을 때에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 힘의 논리와 승리의 논리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우상을 동시에 숭배하였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보험처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풍요로움과 번영을 위해서 보험처럼 다른 신들을 함께 섬긴 것입니다. 이들은 늘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기에, 밖에서의 삶도 늘 자기를 위해 살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고, 속이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지 않고, 힘과 권력과 부를 신뢰하였기에, 외세의 침략이라는 큰 위기가 닥치자 동맹을 통해, 정략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의 지혜와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능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길입니다. 주님은 세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섬기시고, 끝까지 용서하시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예수님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였습니다. 세상이 보여주는 데로, 세상이 말하는 대로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공의에 따라 삶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를 인증하시고, 예수님을 모든 이의 주님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되셨고, 우리 예수님의 공의의 기준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세상의 가르침, 세상의 질서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참된 진리의 길, 의로운 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권세와 힘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기고 풍요로움과 승리를 하나님처럼 여기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모든 삶의 기준을 예수님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그분의 공의와 정의로 우리들의 삶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모든 불의와 악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온전하고 완전한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더불어 말씀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나라에 관하여 선포합니다. 6~9절 말씀입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을 이루는 세상, 우리 서로가 화평을 이루는 세상, 그리고 나와 내 자신이 화평을 이루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질서가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생명과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돈과 권력과 세상의 지혜가 우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 보여주신 현실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질서를 믿을 것인지 결단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때, 우리는 기꺼이 나누어 주고 베푸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생명, 내 소유를 움켜쥐고자 하면 그것은 그대로 우리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움켜쥠 속에서 많은 다툼과 갈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꺼이 나의 것을 내놓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놀라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평화의 나라로 인도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나 자신에 대해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질서는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판단합니다. 상황과 형편이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 그리고 내 안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모두 세상의 기준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는 나의 과정을 부정하고, 나의 현실을 모욕하며, 나의 소망을 꺾어 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진리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목소리, 나에게 참된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에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화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한 세상 참으로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오늘 이사야가 살았던 현실, 내우외환의 현실이라 할 지라도, 오늘 말씀 속에서 선포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 안에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게 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 설교 > 대림절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2021.12.19. 주일예배 설교. 대림절. 이사야 42장 1~9절) (0) | 2024.07.05 |
---|---|
메시아 (2021.12.12. 주일예배 설교. 대림절. 이사야 53장 1~12절) (0) | 202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