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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7 (2016.12.23.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누가복음 2016. 12. 23. 12:16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여전히 사랑을 필요로 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의미가 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예수님을 묵상하며 이 의미를 다시금 깊이 바라보는 남은 한주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누가복음 2장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나눔>

1. 몇 년전에 ‘세상이 백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책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간단히 나누어보면, 100명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입니다. 6명이 마을의 모든 부중 59%을 가졌고, 74명이 39%을 나누어 가졌고, 나머지 20명이 2%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75명은 비와 이슬을 피할 집이 있지만, 25명은 제대로 된 집에서 살지 못합니다. 17명은 깨끗한 물조차 마실 수 없습니다. 만약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있다면 당신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들어갑니다. 자가용을 소유했다면 가장 부유한 7명 안에 들어갑니다. 100명의 마을 사람중 단 1명만 대학교육을 받았습니다. 반면 14명은 글을 읽지도 못합니다. 마을에서 20명의 사람들은 공습, 폭격, 지뢰, 무장단체의 강간, 납치를 두려워하고 살아갑니다.


2. 이 책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아이들과 여성들이 고통과 아픔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의 삶 역시 녹녹치 않기에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 곳곳에 아픔과 슬픔이 가득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뉴욕타임즈와 같은 뉴스나, 다양한 엔지오들의 활동들, 선교사님들의 기도편지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탄생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가이사 아구스도, 곧 카이사르(황제) 아우구스투스에서 시작합니다. 황제의 칙령으로 모든 사람들은 호적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황제의 대리인 수리야(시리아) 총독 구레뇨(퀴리노)가 이 일을 주관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예수님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등록을 위해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였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숙소를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가장 낮고 천한 곳인 구유에서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4. 말씀은 의도적으로 황제의 이름, 총독의 이름,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이를 순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늘 높은 곳, 강한 곳, 화려하고 부유한 곳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이러한 낮고 연약한 곳, 어려운 곳, 가난한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오늘 말씀은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5. 이를 통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고난받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시켜주시며, 이제껏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고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임을 보여줍니다. 그 일 위해 기꺼이 황제의 궁궐도 아닌, 총독의 관저도 아닌 가장 작고 초라해보이는 구유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6. 이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가득함을 우리는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도리어 기꺼이 찾아와주셨구나.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가장 낮아진 모습으로 찾아와 주셨구나 깨닫게 되는 것이 성탄의 가장 큰 의미입니다. 


7. 더불어 우리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와 주셨듯, 우리 역시 가장 낮은 곳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찾아보고, 이웃의 어려움에 함께 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돕는 것 그것이 또한 성탄의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을 알고 배우고 닮아가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앞서 100명의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못하는 어려운 이웃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모든 그리스인들의 자연스러운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8. 한가지 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비록 황제의 명령과 총독의 집행으로 이루어진 호적조사를 통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이는 사실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말씀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의 구유에 태어난 것은 황제의 명령때문도 아니요, 총독의 명령 때문도 아닌 그 모든 것 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아이가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난 것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황제나 총독이 아니라 초라한 구유 안에서 태어난 이 아이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놀라운 계획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9. 이를 통해 말씀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바로 역설입니다. 말씀은 황제와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비교합니다. 황제는 위대하고 강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선포하고,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자리에 있지만 가장 위대한 통치자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기로 오신 하나님, 사자와 어린양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가장 비참한 죽음인 십자가와 가장 영광스러운 생명인 부활이 동시에 있음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역설을 통해 드러납니다. 세상은 강력한 힘과 권세와 번영을 사랑합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방법의 위험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완전한 낮아짐, 겸손, 내려놓음, 가난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기꺼이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11.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방식대로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자기를 비우고, 자기의 것을 나누고, 세상을 변혁시키며, 온전히 사랑하고, 용서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그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와 의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성탄은 그 방법을 다시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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