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한 가족 (2020.11.08.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2장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직 연소하지만, 그래도 살면 살수록 가족이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보면 그래도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을 사귀면 사귈수록,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은 남이다.’ 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선 결국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고, 이 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 관계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서로 돕고 살고, 함께 한다고 노력해도,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안에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베풀고 해줄 수 있는 한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간의 관계에서는 그 선이 있기는 있어도 훨씬 관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이 품어주고, 용납해주고, 용서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족관계의 힘입니다.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에 온 마음을 쓰며 발벗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족 중에서도 무엇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훨씬 더 깊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대개의 경우 부모만큼 우리를 잘 품어주고,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용납해주는 분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삶을 가족 중심으로 맞추고, 가족 안에서 위로하고 사랑하고 힘을 얻어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말씀은 이러한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곳곳에서 이러한 부모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의 중요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십계명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규정하는 첫 번째 규정이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 그것은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뿌리라는 것을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5장 8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자기 가족을 돌보는 것, 특별히 가족을 돌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은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그 무엇보다 가족간의 사랑과 돌봄을 중요한 것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말씀의 뉘앙스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 말씀의 상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말씀을 무리들에게 하고 계실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때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그 상황을 전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놀라운 대답을 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제자들에게 손을 내밀며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이전의 가족들을 버리고, 새로운 가족들을 맞이한 듯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가족들을 버리고 교회 공동체 사람들을 새로운 가족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격한 종파나 이단들은 가족들을 버리고 신앙생활에만 매진하라고 강요하며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자신의 가족인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한 사랑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가 그 곁에 서서 끝까지 그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던 예수님은 제자 요한에게 십자가에 매달린채로 부탁하였습니다. 어머니, 이제부터 이 제자가 어머니의 아들이라 생각하세요. 그리고 요한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아. 이제부터 내 어머니를 너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모셔다오. 실제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돌아가실 때까지 요한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어머니를 사랑했고, 걱정했고, 챙겼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중 야고보는 훗날 예루살렘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야고보서는 이 동생 야고보가 쓴 책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과 동생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생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참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선포하시던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바탕이 되는 구약 성경의 말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되는 배경은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특별히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율법의 형식을 지키는 것보다 율법의 정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그 의미를 알고, 그 의미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 겉 껍데기만 따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본질이었습니다.

안식일의 핵심 정신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시면서 그 이유를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몇주 전에도 보았지만, 다시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입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며 안식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의 본질 속에 ‘쉽’은 필수적인 것이다. 휴식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그런데 그 쉼은 단순히 몸만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 이 모든 생명이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라. 네 생명도 네 생활도 내 인생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 두려워 하지말고 불안해 하지말고 하나님께 인생을 맡겨라. 일주일에 한번은 꼭 쉬면서 이것을 기억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5장의 말씀입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기억하며 안식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삶은 지독한 노예 생활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자기를 신이라 여겼습니다. 나일강의 풍요를 자기를 높이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와 부를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이용하였습니다. 심지어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집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제국의 야만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사람과 생명을 도구화 하였습니다. 우상숭배 체제가 보여준 참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를 그저 두고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파라오로부터 건져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의 우상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라오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존귀한 삶과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통해 이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이 이집트와 같이 변질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되돌아 보길 원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시간, 그리고 그 구원의 삶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로서의 안식은 먼저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웃을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이웃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존귀한 그분의 형상을 닮은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앞에 있는 사람과 한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욕심과 나의 권세를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렸던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은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셨던 것처럼 가장 연약한 자, 작은 자를 존귀히 여기며 살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장 21~22절 말씀은 이와같이 선포합니다.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계속 떠올리게 하시면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살피라 말씀하십니다.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는 가족이 없는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는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핵심 정신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저의 형제, 자매,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억하고,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 특별히 소외되고 외롭고 무너진 사람들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고, 나의 권세, 나의 재산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곁에 있는 이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내 곁에 있는 이웃에게 자기의 선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 예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놀라운 말씀의 핵심을 우리에게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가지를 꼭 기억합시다. 

첫째,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사람을 모욕하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존귀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특별히 이 땅에서 기댈 이 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시다. 말씀처럼, 이땅에 고아와 같은 이 누구인가, 과부와 같은 이 누구인가, 나그네와 같은 이 누구인가 살펴봅시다. 서러움과 외로움으로 사는 사람을 돌보고, 기댈 곳 없어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씁시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들의 가족이 되어주고, 기댈 언덕이 되어주고, 삶의 디딤돌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우리 성도님 한분한분이 그러한 일들을 감당하길 축복합니다.

셋째,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 안에서 가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가족을 새롭게 만들어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라입니다. 내 부모를 공경하듯, 곁에 있는 어른들을 공경하라. 네 자녀를 사랑하듯 네 곁에 있는 아이들을 사랑하라. 네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 네 곁에있는 성도를 섬기고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이와같이 말씀합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랑을 하십시오. 서로 다정하게 대하고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십시오. 서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먼저 나누어주고,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힘쓰십시오. 혹시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기뻐하는 이가 있다면 함께 기뻐하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우십시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십시오.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비천한 사람들과 기꺼이 함께 사귀십시오. 스스로 지혜 있는 척 하지 마십시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고 인정할 만한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 여기는 삶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나눔 속에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이러한 나눔을 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