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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정수 (2021.06.25. 금요기도회. 골로새서 2:20~3:4)

 

골로새서 2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3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마치 나뭇가지를 나무에 접붙이듯이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 그것이 바로 예수님 믿는 것이라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되었기에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거룩하여졌고, 주님의 모습으로 자라게 되었으며, 주님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주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날마다 자라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었으며, 영원하신 주님과 더불어 부활생명으로 영생을 누리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의 현실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삶으로 우리의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놀라운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뜻하고,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뒤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포는 너무나 일이기에 우리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실감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의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매일매일 믿음을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끌어주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만남을 조율하여 주시고, 우리의 모든 공동체를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을 바꾸어주시고, 우리가 속한 일터를 바꾸어주시며, 우리가 속한 교회공동체를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예수님 닮아가는 존재로, 영생에 합당한 존재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저는 팽이와 나사의 비유를 좋아합니다. 팽이와 나사 모두 뱅글뱅글 돌아갑니다. 그러나 팽이는 계속 자리에서 돌지만, 나사는 돌아가면서 점점 깊숙히 들어갑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의 인생은 나사와 같습니다. 때로는 올라갈때도 있고 때로는 내려갈때도 있습니다. 다시 그자리로 돌아온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사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사이 느끼지도 못한 사이 어느새 깊숙히 주님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게으르게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성실함과 애씀이 없는 것은 주님을 온전히 믿는 삶이 아닙니다. 나태함은 주님을 바라시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최선을 다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때로는 낙심하게 될때도 있고, 주님 보시기에 온전하지 못할 때도 있고, 죄악에 빠져 실패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붙든다면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주님은 다시 우리를 세우시고, 반드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안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바라보아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게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믿음, 우리의 모든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우리가 진실로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모든 삶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삶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헛된 것들을 내려놓는 , 죄악과 우상을 떠나는 , 무엇보다 이웃을 깊이 사랑하는 삶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신뢰에서 나오는 감사와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안에서 삶을 살게 되면 우리에게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가 구분되게 됩니다. 헛된 종교적 허례허식과 과장된 예절, 사람을 높이는 권위주의나 율법주의적 태도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집중에 방해되는 , 그리고 예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일들은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깊이 바라보는 , 사랑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 섬김과 희생의 가치를 나누는 일과 같은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찬양, 예수님 지팡이)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놀라운 믿음의 삶을 살것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골로새서 2 20~23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앞서 말씀드린대로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거짓된 가르침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르침들은 많은 규례와 금기들을 골로새 교회에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만져서는 안된다. 어떤 것들을 맛보아서도 안된다, 어떠한 것은 가지고 다녀서는 안된다. 이러한 여러 규칙들을 골로새 교회에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규칙들은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길에 있어서 그저 번잡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차칫 교만함이나 열등감에 빠드릴 있는 위험이 있었고, 헛된 신앙이 함정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제멋대로 하는 예배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과장된 겸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부질없는 금욕에 불과합니다. 이것들은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는 데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초점을 분명히 해야합니다. 중심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분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안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변화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지극한 용서를 깨달을 변화합니다.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할 성장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만이 신앙의 핵심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절기도, 교회의 형식도, 교회의 모든 것들도 오직 우리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례, 성례, 주일예배, 기도와 찬양) 예수님과 상관없는 형식, 율법, 절기는 결국 헛된 것들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어 선포합니다. 골로새서 3 1~4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진정한 율법이 무엇인지를 선포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선포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전의 헛된 우상을 숭배하던 여러분의 모습은 우리 주님과 함께 이미 죽었고, 이제 여러분은 주님의 것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다시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마땅히 예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세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 오직 예수님만을 생각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헛된 욕망, 교만한 마음, 나아가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높이고,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거룩해 보이는 신앙생활 마저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높이는 데에 활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넘어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은혜를 바라보고, 사랑을 구하며, 용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선포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땅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했을 우리의 예전 모습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생명은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땅에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세상의 생명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삶을 살아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경영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는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강조하여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그리하여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 경영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는 신앙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주님의 부활을 날마다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 닮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의 뜻을 곱씹고, 소망을 진실로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것이요, 섬김과 사랑의 삶을 살게 것이요, 헛된 욕망과 자랑을 내려놓게 것입니다. 우리 모둔 성도님들이 놀라운 신앙의 정수를 누리며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