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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 (2020.10.25.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2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는 지난 주일 말씀을 통해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정면으로 충돌한 장면들을 함께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형식에 집중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 정신에 주목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고, 특별히 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시면서 말씀하신 그 핵심 정신을 알고 지키는 것이 진짜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 말씀하시면서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창조 후 일곱째 날 쉬었기 때문에 너희도 쉬라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왔는가,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누가 주신 것인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와 욕망을 버리고, 다시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둘째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원하였음을 기억하며 일곱째날 쉬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신 것은 이집트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의 삶의 방식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더 높아지기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내 삶을 노예처럼 부리는 삶,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고 학대하는 삶을 멈추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이루는 삶을 살라 말씀하셨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아라, 그래서 주님 신뢰하고 평안함과 여유를 가지고 이웃 돌보는 삶을 살라는 것이 주님의 뜻 입니다. 안식일의 참 뜻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던 사람들, 더 나아가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과 종교체제를 자신의 권세와 자랑으로 삼던 사람들, 율법을 통해 자기를 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근본적인 정신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대로의 방식이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이러한 안식일 규정을 흔드는 예수님을 불안해하였고, 나중엔 미워하게 되었으며, 결국 죽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고, 메시아가 되어서도 안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또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이 사람은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이유가 귀신에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은 때때로 있지만, 그 이유가 귀신 들렸기 때문인 사람은 사실 매우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사람을 고쳐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육체의 눈이 보이지 않았고, 입과 혀가 굳어 말을 못했던 사람이지만 주님의 치유를 받고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몸의 눈은 볼 수 있고, 몸의 입술은 말할 수 있어도, 그 마음 속에 악한 영이 들어앉아있어서 영적인 눈이 멀어있고, 영적인 입술이 굳어진 이들은 치유를 거부하고 있음을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편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편향이란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지지하는 말은 유심히 듣지만, 나와 반대되는 생각은 애써 무시합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만, 나와 다른 사람은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도 합니다. 자기 판단에는 가산점을 주고 다른 사람의 판단은 잘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생각을 넓혀주고, 교만과 우월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주기 때문입니다. 편향에 심하게 빠지게 되면,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격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상대를 악마화하기도 합니다. 편향은 우상숭배의 다른 이름이요, 선악과의 다른 이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편향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규례를 반드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 생각이 확고한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근본적인 정신을 이야기 했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생각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일단 그들이 생각하는 율법을 어긴 이상 예수님은 적대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편향은 오히려 내면이 연약한 사람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자기 생각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오히려 다른 이야기를 강하게 배척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다는 것은 그들이 이제껏 삶의 근본적인 의미라고 여겨왔던 생각을 뒤집는 일이었기에 죽을 만큼 두려운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불편한 존재였고,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쉽게 예수님은 그저 하나님을 모욕하는자, 말씀과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불한당이라 취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셔서 눈을 뜨게하고, 말을 할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라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은 악령의 괴롭힘을 받던 사울을 치유하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새 이스라엘을 회복할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증거가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눈 앞에 있는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율법을 어긴 예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사람일 수 없고, 메시아일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바꿀 수 없는 확실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내 놓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얻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다는 전제로 이러한 해석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완고하게 예수님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해석에 차근차근 반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로 이게 일단 말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의 왕의 힘을 얻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귀신 왕국이 내분이 난 것인데 귀신의 왕이 그 일을 허락하겠느냐?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둘째로 그렇다면 지금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는 다른 하나님의 사역자들도 귀신의 왕의 힘을 얻어서 쫓아내는 것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당시에 바리새인 중 일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27절의 너희의 아들들은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귀신의 왕의 힘으로 쫓아내는 거라면, 그 바리새인들도 귀신의 왕의 힘으로 쫓아내는 것이냐 물으신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바리새인들은 강하게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귀신을 쫓아낸 이 사건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분명히 선포해주셨습니다. 28절 말씀입니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내가 성령님에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의 참 의미는, 너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정의가 너희 삶 가운데 임하였다는 것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편향을 보면서, 우리는 속으로 아이고 저 어리석은 사람들 이러면서 비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예전 말씀에도 나누었던 적이 있는데,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하기를 죄란 우리 안으로 굽은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중심적 편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사람이기에, 각자 자기 마음을 지탱하고, 자기 삶을 붙들어줄 무언가를 하나씩 붙잡고 살아갑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삶의 중심으로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절대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버는 일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의 경력을 붙잡고 살아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삶의 상처를 붙잡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각자 마음속에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각자만의 가장 고유한 영역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것을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냐? 네가 지키고자 하는 그것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더 귀하냐? 정말, 네 자존심보다 내가 더 귀하냐, 네 사랑보다 내가 더 귀하냐? 네 돈과 성공보다 내가 더 귀하냐? 그렇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네가 사실은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열심히 지키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산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묻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열심히 율법은 지키지만, 정작 그 중심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없고 자기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냐? 묻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우리를 높이고, 우리를 자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는 매우 민첩하게 반응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두고, 성령 충만하여 살아가는 일에는 매우 둔하게 반응합니다. 영적으로 눈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러한 우리를 위해,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셨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어리석음과 연약함, 죄악됨과 완악함을 쫓아내 주시고, 고쳐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눈을 뜨게 하시고, 말을 하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주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는 입술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우리를 용서해주셨고 고쳐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음을 우리 주님께서 선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자꾸만 안으로 굽으려 하는 우리의 마음을 고쳐주시는 분, 그리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 안에 살게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시며, 우리에게 결단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29~32절 말씀입니다.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주님은 강하게 선포하십니다. 마치 성을 점령할 때에, 그 성을 지키는 장수를 결박한 뒤에 그 성을 점령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너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탄을 사로잡고 너희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너희는 나를 맞이하고, 나와 함께 해야 한다. 너희가 연약하여 나를 거역하고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를 끝까지 믿지 않는다면 너희는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입니다. 성령을 모욕하고 거역한다는 것은 끝까지 예수님의 구원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때 주님을 거절하고 모욕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꼭 주님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33~37절 말씀에서 바리새인들에게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편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권력과 지식이 하나님보다 더욱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속마음은 감추고 겉으로만 위선을 부리는 것, 정작 하나님에는 관심이 없고, 종교 생활에만 관심이 있는 것, 겉은 선한것처럼 보이나 속은 악에 물들어 있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 하시며 비판하셨습니다. 결국 이러한 삶의 결과가 심판임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마음 속 주인의 자리에 누가 있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종교적 교만과 위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자 이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마음 속 죄를 들키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마귀의 왕이라 비판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길을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심판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엄히 경고하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모든 악한 권세를 쫒아내시고,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게하시고 듣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초대합시다. 우리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입시다. 우리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리고, 우리의 모든 심령을 만져주시고 고쳐달라 기도합시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겨 드립시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