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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그 안식의 길 (2020.10.11.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0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무리와 제자에 관한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저 자기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무리라 하였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를 뜻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을 제자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무리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제자로 부르신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거듭남에 관하여 말씀을 나눈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이전에 주님을 알지 못했던 나, 내 뜻과 내 욕심과 내 자랑으로 살았던 나를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거듭난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무리가 아니라 제자가 되는 것은 이처럼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리에서 제자가 되기 위하여, 또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하라라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니셨던 분들은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던 것들, 친구를 미워하고, 거짓말하고, 부모님께 불순종하고, 교회에 빠지고, 설교시간에 졸고, 이런것들 회개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면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잘못한 것들을 고백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회개를 이해하는 것은 맞는 뜻이기는 하지만, 그 뜻을 온전히 깊게 이해한 뜻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회개는 좀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와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4절 말씀입니다.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선포 앞에 우리가 해야 할 반응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살펴보면, 회개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이 의미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당신과 더불어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와 더불어 살게 하심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불편하고, 죄와 욕망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교만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었습니다. 더욱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욕망과 죄악이 내 삶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주인이 되자 우리의 삶도 엉망이 되어버렸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이웃을 미워하며, 세상을 미워하고, 삶 전체를 미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처럼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찾아오시고, 말씀을 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지극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는 인생,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인생,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이러한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다시 알게 된 삶,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회복된 삶, 하나님의 사랑에 매인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 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을 다시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다라고 표현합니다.

 

바로 이때,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하게 됩니다. 내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삶의 엔진이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었는데, 어떤 사람은 질투와 시기심이 자기 삶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남보다 더 좋은 것 얻고자 하는 것이 자기 인생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움과 분노가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과 자기애가 자기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절망과 좌절이 자기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과 우울이 자기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을 살펴보면 누구나 온통 우리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주인노릇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결정들을 잘 헤아려 보면, 우리에게는 각자 이러한 주인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이제 내 삶의 주인노릇을 하는 그것을 치우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당장 치워지지는 않더라도, 당장 그 힘을 완전히 빼앗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방향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왕의 자리에 놓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내 삶의 분명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내게 진정한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내 삶의 참된 의미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 삶이 풍요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삶의 근본을 뒤집기로 결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회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권, 내 삶의 중심, 내 삶의 엔진을 주님께 드린 사람,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회개는 사실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는 근본적인 차원의 회개가 있습니다. 이제 내 삶의 주인을 주님으로 모시겠다는 회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겠다는 회개입니다. 둘째는 내 결단을 계속 확인하고 점검하고 그 방향으로 삶을 이끄는 회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더욱 나아가는 여정으로서의 회개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를 통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향하고, 그 길로 한평생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처럼 이 땅에 오셔서 지극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회개를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20절에서 24절 말씀을 교독하며 읽겠습니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며 탄식하셨습니다. 가버나음, 고라신, 벳세다 이런 지역들은 예수님께서 가장 열심히 사역한 지역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이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23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 곧 지옥에 이르기까지 낮아지리라!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물은 교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의 방식에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는 것들을 여전히 가장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예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완악함을 비판하시며 이방 땅들보다 오히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강하게 이들을 비판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회개 없는 삶이 얼마나 큰 비극으로 나아가는 길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가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할 때, 더욱 엄하게 자녀를 꾸짖습니다. 그렇게 꾸짖어서 아이가 안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심판을 강하게 말씀하신 것은 회개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파국에 이르게 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만큼 위험한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삶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정말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 하나님을 모르면 모를수록 내 삶에서 하나님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만할수록, 자기 사랑이 클수록, 우상을 더욱 사랑할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을 잠에서 깨우고자 이처럼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마음을 돌릴 것을 선포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를 말씀하십니다. 25~27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슬기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것이 자기를 구원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죄에 무감각하고, 자기 교만을 당연하게 여기며, 하나님 없는 삶에도 평안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결국 허망한 길이 될 것입니다. 심판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속에서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 취급 못받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삶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진실로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삶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셨고,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역설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가장 나중에 있는 사람이 가장 첫째가 되고, 가장 첫째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가장 나중이 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예수님을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고난당하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시고, 이들을 위로하시고, 이들에게 생명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순종함으로 끝까지 낮은 자리에 있었던 예수님을 온세상의 왕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끝까지 자신을 낮추는 자리, 죽기까지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 온전히 순종하는 자리가 곧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선포를 통해 우리에게 그 길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걸어갈 길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교만, 나의 자랑, 나의 가치관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간구하는 삶입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삶을 내려놓고, 내가 주인되려는 삶을 내려놓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참된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이러한 사람이 누리는 복을 선포하면서 마무리 합니다. 28~30절 말씀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회개는 열매는 안식입니다. 우리 주님은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워, 주님께로 돌이키는 삶을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주시는 주님의 선물은 쉼, 곧 안식입니다.

 

주님 없는 삶의 현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침반도 없이, 돛대도 없이, 자기가 만든 노 하나로 거친 바다를 건너려는 삶입니다. 매일 거친 삶을 살아가느라 내 삶의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욕망이 우리를 사로잡고, 때로는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를 사로잡고, 때로는 분노와 미움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매일 내 방법, 내 뜻대로 삶을 살아보려고 하지만, 매일 다가오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살다가는 것이 인생인가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우울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이제 배를 주님께 맡기어라. 이제 돌이켜 회개하고, 나와 함께 가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만이, 주님과 함께하는 것만이 진정한 쉼을 얻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으로 인생을 살아가십니까? 이제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이전에 주님께로 돌아가기로 결단하셨다면, 지금 나의 삶을 다시금 점검하시고, 한번도 주님께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적이 없다면, 이제는 주님께로 돌아가기를 결단하십시오. 주님께로 돌아가면, 그곳에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참된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놀라운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미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주님께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