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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사라는 오랜 시간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녀가 없다는 슬픔과 함께 저주받았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농경 사회 속에서 다산은 풍요의 상징이었고, 신이 주는 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그러한 풍요로움에서 비껴나간 저주받은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특별히 자녀를 갖지 못한 여자의 고통과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사라, 레아, 미갈, 한나 등 자녀를 갖지 못한 여자들의 아픔이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낼 수 밖에 없었고, 아픔과 한을 마음에 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픔을 가진 여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장 귀한 일에 가장 아픔을 가진 여자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랜 세월 자녀를 갖지 못했던 여자 사라. 그녀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생명을 가진 삶을 살지 못해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신과 같이 자녀를 풍요로움으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랬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많은 자녀를 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녀의 참 의미를 알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통해 희망, 사랑, 생명, 기쁨을 배웠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될 때까지 사라를 통해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아픔을 씻어주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이삭을 향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통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생명을 잃었고, 생명을 창출해가는 일에도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악은 쉽게 저지르면서 생명을 나누는 일은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주심으로 자녀를 통해 이어가는 하나님의 생명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기쁨이었습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주신 하나님이 유일한 기쁨이 됨을 이삭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 감격을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