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증언 (2013.5.24. 금요기도회 설교)
로마서 8장 14~17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오늘은 금요기도회입니다. 특별히 전교인 수련회를 위한 금요 기도회입니다. 아마 많은 성도들이 전교인 수련회를 위해서 기도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오신 줄 압니다. 이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 통에 부모를 잃었습니다. 버려진 아이는 누군가에 발견되어 고아원에 보내졌고,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고아원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자라오면서 항상 부모의 자리가 그리웠고, 마음 속 한자리에 항상 뚫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외로움의 자리는 점점 커졌고, 그 마음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방탕함과 반항을 하며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학창시절은 술과 담배를 즐기고,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때우면서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 젊은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고, 젊은이는 자기의 삶의 탈출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아원에 신기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코끼리와 호랑이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신기한 묘기를 보이며, 줄을 타고, 날라다니는 서커스단이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신기함과 재주에 이 젊은이는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화려해 보였고, 위대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서커스단을 향한 사람들의 환호에 그는 더 놀랐습니다. 자신은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없는 존재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 서커스단원들을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서커스단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며, 아 내가 이 서커스단이 된다면 나도 이러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곧장 고아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서커스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서커스단의 가장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열심히 기술을 배웠습니다. 점점 인정을 받게 되었고, 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났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주는 것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하는 일 속에서 자신이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와 실제의 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서커스단원으로서 자신을 좋아하지 사람으로서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 속에서 정작 진짜 자신은 소외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더 쾌락적인 죄악들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이 떨어지고, 실수하는 일이 많아지자 점점 더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점점 아파오고, 마음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 멍한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서커스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려 허세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이 조직 폭력 조직이었습니다. 그는 조직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무시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검은 양복을 사입고, 새카만 문신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자 거들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행상에게 돈을 빼앗기도 하고, 자신에게 굽신대지 않는 사람을 흠씩 두들겨 패기도 해주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날 무시하지 않는다 생각하며 자기 만족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에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보스를 위해 대신 감옥을 가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죄목은 살인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전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자기에게 도움을 준 조직의 논리를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자기가 들어온 조직이 자기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조직에게 저항할 수 없었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습니다. 더 이상 그는 존재 가치를 누구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실 한번도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확정 판결을 받은 후 그는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펑펑 울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서러워 울고, 외로워 울고, 자기 잘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에 울고,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분하여 울었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새 봄이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같은 방에 있던 비쩍 마른 동료 수감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좀도둑질을 일삼다가 가중처벌이 되어 오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네였습니다. 그 노인네는 젊은이가 울다 지쳐 잘 때마다 자기 이불을 나눠 함께 덮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을 자기에게 집중하여 지내는 동안 주변 사람이 누가 있는지도 모르다가, 봄이 되어서야 이 노인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노인은 손버릇이 나쁘긴 했지만 심성은 순박했습니다. 감자, 옥수수 같은 음식이 들어오면 항상 자기 것을 나누어주었고, 자기가 잘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며 삶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건넌 마을 아가씨 이야기도 해주었고, 전쟁 통에 죽어버린 아들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널 보니 그 아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둘은 틈 날 때마다 서로서로 대화를 하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정을 나누게 되었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젊은이는 이 노인에게 이참에 이러지 말고 내 아버지가 되어주십쇼 말을 얼떨결에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한참을 조용히 아무 말 안하다가 눈이 붉어진채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기 직전 작은 목소리로 이미 마음 속에 너를 아들처럼 생각했다라고 조그맣게 고백했습니다. 그때부터 젊은이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아버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생긴 젊은이는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지만 더 이상 그는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있다하여 절망하지 않았고, 매 순간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이 노인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은이는 모범수로 가석방 되어 작은 가게를 열어 성실하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남은 평생을 이제 고아가 아닌 ‘아들’로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눈 이 예화는 고아로 태어나 돌고 돌아 자신을 찾아가는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젊은이는 자신의 삶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의미를 모르는 삶은 고통과 아픔, 죄와 분노가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이 젊은이와 같이 여러 가지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 혹은 죄악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삼각 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치열하여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 속에서 버텨내시고 살아내시느라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한주를 보내셨는지요? 삶을 살다보면 우리의 삶이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얽혀있는지 알지 못하는 실타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억울하게 내가 고통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분명히 죄인 것을 아는 데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짓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이 우리를 얽어매어 답답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이 젊은이처럼 어디까지가 내가 행한 잘못이고, 내가 당한 피해인지를 알지 못한 채 얽히고 설켜 고통스럽기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런 인생 속에서 이번 한주도 버티느라 우리는 모두 진땀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한 실타래와 같은 우리 인생을 보면서 이 실타래를 단칸에 잘라버리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보자 결심하기도 하고, 권력이나 명예를 얻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리라 하는 생각도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과 한판 붙어서 문제를 해결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자식이나 손주를 바라보면서 얘들이 내 희망이지 하면서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도 합니다. 술이나 마시자 하면서 술로 문제를 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것도 저것도 힘들어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졌던 것처럼, 발버둥치고 고민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치 진드기에 붙은 쥐가 발버둥 칠수록 더욱 얽매여지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이러한 고민 앞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시며 한주를 보내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늘 말씀은 이러한 우리에게 새로운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바로 우리의 증인 되시는 ‘성령님’의 증언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가시길 원하십니다. 그 시작이 바로 성령님의 증언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증언은 무엇일까요? 다같이 오늘 말씀 14~16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바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을 듣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곧 예수그리스를 주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증언은 명확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해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증언, 이 고백, 이 선포가 우리의 영혼에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를 뒤집게 됩니다. 오늘 청년은 부모를 잃고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찾을 길 없어 헤매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아무런 힘이 없는 노인을 아버지로 모시자 그는 그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곧 그 삶을 괴롭히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는 감옥에 있고, 여전히 그는 힘든 삶을 살지만 그의 삶은 희망과 기쁨이 가득 찬 삶이 되었습니다. 육신의 양아버지도 이러할 진 대 하늘의 아버지,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일은 어떠할 까요? 성경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복음을 믿는 것이고, 그 복음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딸이 되었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이 주시는 증언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내가 달라집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시다. 하는 고백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마음이 드십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믿게 되어도, 우리의 환경은 그대로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증언을 바라보는 순간 내가 달라지게 됩니다. 행복한 눈으로 보면 모든 세상이 아름답고, 슬픈 눈으로 보면 모든 세상이 슬프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눈으로 보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 놀라운 변화가 내 삶 전체를 바꾸게 합니다. 또한 그 성령님의 증언은 나를 넘어서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교회를 변화시킵니다. 나아가 나라와 세계를 모두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 모든 일들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은 비록 문제가 많고, 아픔이 많으며 죄가 많으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임하였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들을 매순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성령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에 초대하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철저히 예수님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우리가 비로소 참 영광을 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걸어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고난의 이미지는 고통과 아픔이요,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하는 고난은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 살면서 겪는 고난을 끊어내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 세상의 방식을 거절하는 고난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우리를 핍박합니다. 세상은 약한자를 업수히 여기고, 철저히 강한 사람만을 존중합니다. 우리에게 편법을 요구하고, 우리에게 거짓과 불의에 참여할 것을 강요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이러한 세상의 방식을 견뎌내고, 희생하며, 나아가 바꾸어가는 고난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연적인 고통, 생로병사의 고통, 누구나 살아가며 아플 수 밖에 없는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모두 슬픔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위로로써 사랑으로써 이 고난을 견뎌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을 가지고 고난을 견뎌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내려놓는 고난을 견뎌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요, 뿌리깊은 죄인의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고난입니다. 우리는 회개함으로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다시는 죄가 없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우리의 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고난은 부활의 영광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은 곧 부활이 우리에게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부활을 영광을 미리 보는 자들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다같이 17절을 읽겠습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부활의 영광 곧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영광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고난과 부활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함께 경험하고, 그 속에서 회복하고, 나아가 기쁨의 잔치를 나누며, 하나님의 꿈을 꾸는 곳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기도를 하며, 찬송을 하며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할 것입니다. 특별히 다가오는 신앙 수련회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자녀됨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 수련회는 우리가 함께 성령님의 증언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인하는 축제의 자리가 될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회복하는 회복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을 기대하는 희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의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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