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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일곱째 계명 (2022.06.12. 주일예배 설교. 신명기 5장 18절)

 

신명기 5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1. 오늘 말씀은 벌써 일곱번째 계명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십계명 말씀을 함께 외우면서 왔는데요, 다시한번 일곱째 계명까지 외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번 읽고, 한번 암송)

 

첫째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둘째 ‘우상과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넷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다섯째 부모를 공경하라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2. 오늘 말씀은 일곱 번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3. 간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좁은 의미에서의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의미를 확장해 보면, 모든 종류의 성적인 죄악들이 간음에 포함된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을 설명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 27 ~ 28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

27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4. 우리 예수님은 간음을 설명하시면서, 어떤 존재를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을 간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존재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그의 인격과 존엄성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욕망을 풀어줄 수단으로 생각하는 , 그것이 바로 간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5. 이처럼 간음은 배우자 어떻게 대하느냐, 나아가 사람 어떻게 대하느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어떻게 대하느냐에 관한 말씀입니다.  

 

6.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처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때에 말씀, 창세기 1  20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1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몸을 이룰지로다

 

7.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창조히시고, 아담을 보니 돕는 베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빼셨습니다. 고대근동사회에서 갈비뼈를 뺀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다는 뜻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둘로 나누어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명을 나눈 존재인 것입니다.

 

8. 아담은 여자를 보자마자 고백하였습니다.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 자기와 생명을 나눈 존재, 자기보다 더욱 귀한 존재로 상대를 바라본 것입니다. 말씀은 선포하였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몸을 이룰지니라. 둘이 생명에서 갈라져 나왔으니 생명처럼 서로를 귀히 여기고 살아라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원형이었습니다.

 

9.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뒤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311~ 12 말씀입니다.

 

창세기 3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0. 선악과를 따먹고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 이처럼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었냐고 물었는데, 아담은 엉뚱하게도 여자를 비난하는 답을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나에게 열매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열매를 먹었습니다.  한때는 자기의 뼈중의 뼈요, 살줄의 살이라 고백했던 귀한 여인, 자기와 생명을 나누었던 여인이 자기를 망친 여인이라 비난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결국 여인을 하나님께 있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11. 선악과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 중심적 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다. 이제는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겠다. 좋고 싫은 대로 살겠다는 태도가 바로 선악과를 먹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인 삶에 빠져들면, 결국 곁에 있는 배우자 마저도 나에게 도움이 되냐 도움이 되지 않냐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배우자를 주신 하나님 마저도 나에게 도움이 되냐 도움이 되지 않냐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버릴 있고, 언제든 떠나갈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12. 간음은 이러한 마음이 확장된 마음입니다. 자기 중심성에 빠져든 사람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내가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새로운 이성이 나타났을 , 이성을 나의 욕망의 대상으로 활용합니다. 앞에 필요한 사람이 나타났을 , 철저히 사람을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나의 가족과 나의 자녀들까지도 나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마저도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에만 자기를 찾고, 풍요와 번영을 얻기 위해 이방신들도 함께 찾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음행하는 백성이라 선포하셨습니다.

 

13. 시대는 참으로 자기 중심성에 함몰된 시대입니다.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것은 거꾸로 우리 또한 누군가에 의해 수단으로만 인정받고, 도구로만 인정받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배우자도, 우리의 부모도, 우리의 자녀도 우리를 능력으로만 바라보고,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간음과 음행이 넘쳐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소비하는 것에만 익숙해진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간음의 일상화가 이루어진 시대입니다. 눈에 즐겁고, 입에 즐겁고, 몸에 즐겁고, 우리의 말초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고, 가운데에서 사람을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14. 이러한 시대에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그것은 존재의 귀함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수단으로, 도구로 전락해선 안되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둘째는 앞에 있는 사람, 특별히 나의 배우자, 나의 형제, 나의 부모, 나의 자녀, 나아가 나의 친구, 나의 동역자가 나와 생명을 나눈 , 나와 생명을 나눈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그가 살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그의 울음이 나의 울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를 무엇과도 바꿀 없는 존귀한 존재,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바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15. 이를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한 이스라엘 백성, 간음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직접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간음한 그들을 품어 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간음한 존재들을 위해 자신의 몸과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상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사람, 사람을 결코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실뿐더러, 오히려 우리를 존귀히 여겨 자신을 내어주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간음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로 새로운 언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6.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는 것이 우리가 간음하지 않을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에베소서 6 22절과 25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에베소서 6장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17. 에베소서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주님처럼 하라. 둘이 말하는 것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대를 위해 자기의 존재를 내어주어라는 뜻입니다. 상대를 유일한 존재로,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그를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모든 성도들이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18.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을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갑니다. 내가 수단이 된다고 느껴질 , 내가 도구가 된다고 느껴질 우리는 깊은 소외와 절망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그러한 것을 느낄 가장 슬픔과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받는 법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법도 잃어버린 , 그저 몸의 쾌락과 안목의 즐거움, 헛된 칭찬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간음하는 삶입니다. 말씀은 이러한 세대를 음란한 세대라 말씀하십니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서로 사랑하라. 우리 주님은 우리를 존재로 사랑하십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 사랑안에 거하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품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간음을 넘어설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길 소망합니다. (은혜) 그리하여 놀라운 사랑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통로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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