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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1-17 (2015.12.17.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디모데후서 2015. 12. 17. 07:00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나눔>

저도 큐티하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았어요. 아마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없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의 형식만 남아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믿음의 모양이 믿음의 실제를 확보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새겨보아야 할 것 같아요. 


더불어 바울은 고난이 우리 믿음의 실제를 드러내줄 것이라 믿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난과 박해는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경건의 모양은 고난앞에서 연기와 같이 그림자와 같이 사라지나, 경건의 힘 곧 하나님과의 굳건한 관계는 고난 가운데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없는 경건의 모양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우상이지만, 경건의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얻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경건의 모양을 생산하는 종교가인지, 하나님 안에서 경건을 누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인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바울은 이러한 이야기 가운데 더욱 힘써서 말씀에 기대고, 그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하고 있네요. 읽기를 위한 읽기, 수행을 위한 읽기가 아니라, 나의 자랑과 나의 모양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읽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읽기를 권면하는 것 같아요. 그 읽기는 오직 말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복음을 깨달으며, 우리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만남을 위한 읽기를 요청하는 것이죠. 그 읽기만이 우리를 하나님 아는 참 지혜, 참 경건으로 인도하는 것 같아요. 저도 말씀을 읽으며 지식을 얻고, 교리를 채우고, 설교를 제작하는 데에만 쓰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더불어 매 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충격이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러한 점에서 다시금 예수님을 요청하고 간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