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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1:1-7 (2016.12.01. 아침묵상)

category 묵상/요나 2016. 12. 1. 17:22

<말씀>

요나서 1장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나눔>

1. 요나서 말씀은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 사랑 전하기를 거부하는 ‘선택받은 제사장 민족’ 이스라엘 예언자 요나, 그러나 이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복음을 받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지를 깨닫게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도록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요나를 통해 앗수르를 회복시키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셨습니다.


3. 그러나 요나는 몇가지 점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민족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이 싫었고, 둘째는 잔인함과 폭력의 대명사였던 앗수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싫었습입니다. 


4.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마자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니느웨는 오늘날 이라크의 북부 지역(얼마전까지 IS가 지배했었다 탈환된 도시)으로 이스라엘의 북동부에 있었고, 다시스는 오늘날의 스페인으로 지중해 서쪽 끝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는 요나가 얼마나 니느웨에 가기 싫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로 따지면, 일본에 가기 싫어서 동남아시아까지 도망한 것입니다. 


5. 그런데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가 지중해에서 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얼마나 큰 풍랑인지 배가 깨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뱃사공들이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신을 부르고, 배에서 물건을 던지는 등 최선을 다해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풍랑의 원인이 되었던 요나는 배 밑에 내려가서 잠만 잘 뿐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6. 이러한 모습은 당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세상은 혼란과 고통이 넘쳤고, 곳곳에 죄악과 폭압이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폭풍을 만난 배와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위기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신을 찾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과 애씀으로도 이 고난과 고통, 위기와 절망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 나라가 이땅이 임하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이스라엘을 불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해서, 그들의 혈통이 좋아서 그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을 전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배 밑에서 잠만자던 요나처럼, 그 부르심이 싫어서 다시스로 떠난 요나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8. 계속해서 풍랑이 멈추지 않자 사람들은 이 위기가 누구로부터 왔는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았고, 그 결과 요나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땅의 고난과 아픔의 책임을 놀랍게도 먼저 하나님을 깨달은 자에게 찾으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온전한 특권이자, 동시에 온전한 의무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9. (내일 말씀이지만) 요나는 결국 바다에 던져집니다. 세상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조직을 위해, 국가를 위해, 체제를 위해, 번영을 위해 기꺼이 약자를 소외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외되는 약자의 길에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헌신과 섬김, 사랑과 희생의 길을 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기에 그 소외된 자의 길,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은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되었습니다.


10. 오늘 요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립니다. 혼잡했던 뱃속에서 잠만자던 요나의 모습, 어쩔 수 없이 지목되어서 강제적으로 희생당하는 모습,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불평이 가득했던 요나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예수님과 대비됩니다. 풍랑에서 두려워하던 제자들을 위해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어린양처럼 기꺼이 희생당하신 예수님, 사랑과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냈던 예수님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11. 우리가 가야할 길은 바로 예수님의 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큰 혼란과 죄악이 가득합니다. 폭압과 갈등이 넘쳐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이 세상을 변혁시켜나갈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길은 힘과 권세와 지혜로 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희생과 사랑과 섬김, 낮아짐으로 가는 길입니다. 


12. 이 길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근심 걱정을 줍니다. 내가 과연 희생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십자가의 길을 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 마저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자학, 또는 고행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 안에는 놀라운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세상을 바꾸어가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13. https://www.youtube.com/watch?v=CoSHpEbiK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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