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회
에베소서 2장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벌써 오후예배 시간이 되었습니다. 피곤하시죠? 아침부터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일찍 오시는 분들은 아침 일곱 시 반 1부 예배부터 드리신 분들도 계시고, 이 중 많은 분들이 주일예배부터 지금까지 예배를 드리시고 있습니다. 교사로 봉사하시는 분도 계시고, 성가대, 식당봉사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일보다 주일이 더욱 힘드신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예배이니 힘을 내셔서 집중해서 말씀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봉사도 합니다. 힘든 한 주를 보내고, 더 힘든 주말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예배를 드릴까요? 우리가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예배를 드릴까요? 거꾸로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할 의미, 가치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애써 모이기에 힘쓰고 노력하며 교회공동체를 이루어가면서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모든 상황 속에서도 놓지 않아야 할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등불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와 하나님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비유가 무엇일까요? 주인과 노예? 왕과 신하? 아마도 부모님과 자녀일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키우고, 돌보고, 사랑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좋은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울 때 어린아이가 울게 되면 그 부모는 어떻게 하게 될까요? 아이가 혹시 배가 고프진 않나, 변을 싸지 않았나, 아프진 않나 살펴봅니다. 그리고 아이가 필요한 것을 즉시 조치해 줍니다. 나아가서 어린아이가 요구하지 않아도, 그 어린아이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적절히 챙겨주고 아이를 보살펴 줍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 경우 그 어린아이를 찾아 최선을 다해서 찾게 될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시장에서 엄마를 잃고 돌아다니던 아이를 데려다가 엄마를 찾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엄마는 이 아이를 찾고 다니고 있었나 봅니다. 아이랑 엄마를 찾으러 걷다가 길에서 엄마랑 마주쳤는데 정말 표정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마음보다 갈급한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린아이를 찾는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를 찾아 나선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모인 이 교회 공동체는 이 사랑의 마음을 깨닫는 공동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는 지를 깨닫고, 그 상태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풀어나가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11절, 12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우리는 절망적인 존재였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인이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삶이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다. 세상에서 소망도 없다. 하나님도 없는 자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존재였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아프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이 병원에서 이 아픈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해줘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정확한 병명을 진단해주는 것입니다. 훌륭한 의사는 문진과 진단을 잘해주는 의사입니다. 빨리 병의 원인을 찾아야 빨리 치료할 수 도 있고 환자도 불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빨리 죄인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 데,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아파만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은총입니다. 우리가 빨리 죄인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구원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빨리 죄에 대해서 절망할 때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인임을 아는 것은 회개의 길이 됩니다. 좁은 길은 그래서 궁극적으로 넓은 길이 됩니다. 우리는 죄인임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죄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할지 못하던 우리는 어떤 문제들 속에 있을까요? 성경은 다양한 방법, 다양한 이야기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문제 속에 있는 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끊어진 우리는 생명을 얻지 못할뿐더러 생명을 파괴하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은 생명을 키우는 일, 경작하는 일을 고통스럽게 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더 이상 생명을 키우는 아담에게 호의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 땀 흘려 노력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죄를 짓고 생명을 낳는 일에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잃게 됨으로써 생명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생명력을 잃은 아담과 하와는 결국 죽는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 가인은 여기에서 한 술 더 나갑니다. 생명을 만드는 일에 고통을 겪는 것을 넘어서서 생명의 파괴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질투와 분노로 아우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없앤 것입니다. 가인의 살인은 라멕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었고, 구약 내내 죽이는 역사가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이 땅은 죽음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고, 생명을 죽이고 파괴하는 일이 공공연히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미워하고 다투며, 무시하고 경멸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지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되었는 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문화를 이렇게 비판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웃을 비판하는 것이 곧 생명을 죽이는 살인이며, 비판하는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을 떠난 지옥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지옥의 헬라어는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힌놈의 골짜기는 몰렉에게 자식을 불에 공양하던 골짜기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우상에게 자식을 죽여 바치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잃은 우리가 생명을 애먼 데서 찾으려하다 되레 자신에게 물려주신 생명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선 것입니다. 그곳은 자식을 죽이며 이를 갈며 우는 애통함이 있는 곳이 되었고, 시체와 구더기가 넘치는 곳, 자식을 태우기 위한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곳은 생명을 죽이는 곳, 최고의 비참함과 슬픔이 있는 곳 지옥이 되었습니다.
죄는 또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또한 잃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잃은 우리는 사랑을 잃은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우상을 숭배하였고, 돈과 권력 명예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채우려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를 다람쥐 쳇바퀴처럼 지치게 하고, 공허하게 합니다.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잃은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나아가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그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더욱 경쟁적으로 싸우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무서운 것은 사랑을 잃은 우리는 하나님 또한 왜곡하여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율법을 주시고,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주셨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 법과 나라만 사랑할 뿐 하나님은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하지만,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왜곡되었습니다. 죄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교회는 우리 스스로가 죄인임을 자각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비참했었는가를 자각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해주셨는가를 동시에 아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러한 상태를 회복시키고자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임임을 자각하고 죄가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를 자각할 때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됨과 교회가 무엇인지가 분명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모습을 완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가장 분명히 드러난 치유사역은 생명을 회복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것은 생명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치료하심으로 생명 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서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귀신의 통치를 받고 있는 이 땅을 치유하셨습니다. 인간을 죄인으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회복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히 병이 나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음을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궁극적으로 모든 죄, 죽음을 뚫고 부활하심으로서 이 땅에 참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절망적인 죽음을 극복한 것입니다. 생명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생명을 가진 자들의 모임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다시 생명을 받았다. 거듭 났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을 회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사람들을 긍휼이 여기셨습니다.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발을 닦아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의 자리로 초청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사랑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은 그 사랑을 다시 받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오셔서 사랑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었고 감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돌아갈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철저히 사랑을 보여주시는 사역이었고, 이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위대한 사건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이는 단순히 우리가 유대인과 같은 자격을 얻었다는 말을 넘어서,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가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였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이제 세상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네 우리의 교회는 이 생명과 사랑을 드러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이 땅에 생명을 드러내야 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길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던져진 소명,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신 생명을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깊이 깨닫고, 감격하여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이 믿음이 정말 내 삶에 기쁨이 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먼저 그 것이 우리에게 실제적인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이 말씀에 있고, 기도에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온 생명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고, 기도를 통해 구원의 지혜가 있도록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준 생명의 의미를 깊이 받아들이십시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을 깊이 힘써 알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우리를 다시 주목할 것입니다. 세상은 사실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목마른 사슴들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진리가 드러난다면, 참 진리와 생명이 보인다면 세상은 우리를 주목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거기에서 머물지 말고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사랑을 갈구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없습니다. 작은 불꽃같은 사랑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그것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편만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교회는 이 땅에 희망입니다. 모두가 번성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는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라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해 세워진 하나님의 참 생명과 참 사랑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를 오늘도 그렇게 지어가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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