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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1~11 (2018.02.21.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마가복음 2018. 8. 9. 17:11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고민을 던져주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늘 질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그 질문을 함께 풀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

마가복음 11장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나눔>

1.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곳은 주로 이스라엘 북부지방의 갈릴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셨으며,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시다 그 사역이 무르익었다 싶으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하셨습니다. 마치 부산이나 광주에서 사역하시다가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과 같습니다.


3. 예루살렘 사람들은 흥분하며 예수님을 환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일들을 예루살렘에서 하시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로마의 지배로부터 성전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해줄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4. 이러한 이들의 간절한 마음은 그들이 외쳤던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신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외쳤습니다.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찬송합니다. 당신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찬송합니다. 이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옵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5. 이들은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이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통치를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들은 승전장군이 개선할 때 외치는 것처럼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6.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어린 나귀입니다. 전통적으로 승전한 장군은 ‘에쿠스’라 불리는 하얀 백마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마땅히 예수님 또한 하얀 백마를 타고 입성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셨습니다.


7. 사람들은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그것을 힘들어하다 못해 경멸하고, 조소하고, 파괴하기까지 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외국인과 소수자들에게 대한 차별, 가깝게는 공동체 안에서 부족해 보이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왕따 같은 것들은 이러한 인간의 죄성을 잘 보여줍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인간 역사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집단주의가 강력할 때 그 집단의 흐름에 거추장스러운 이들은 언제나 희생을 당했습니다.


8. 예수님을 열광하는 자리, 예수님을 환영하는 자리의 열광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나귀를 타고 오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열광은 ‘이스라엘을 회복할 왕’에 대한 자리였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9.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신 뒤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반역자, 신성 모독자로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두가 새로운 권력을 원했던 자리에서, 겸손과 섬김과 사랑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비참하게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운명을 알았음에도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10.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우리와 우리 사회가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를 깊이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적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시대정신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이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자 예수님을 죽여 버리는 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시대정신으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러한 시대정신에 어떻게 저항했습니까? 오늘날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우리는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까요? 오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질문이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rJi0wNooA2Q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