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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를 위한 기도 (2019.11.03. 주일예배설교)

데살로니가후서 1장 1~4절, 11~12절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두 번째 편지입니다. (교회력, 성경정과) 이번 주부터 3주간 데살로니가후서를 한 장씩 읽고자 합니다. 특별히 말씀을 통해 저와 우리 새벽교회 성도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함께 마음을 열고 주님께 귀 기울이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편지는 바울의 따뜻한 인사를 통해 시작합니다. (1,2절)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를 시작할 때 거의 대부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인사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참 좋아합니다. 사실 인사에는 참 중요한 것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인사할 때 이렇게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삶이 편안하십니까? 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인사 말고도 이렇게 인사하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식사하셨습니까?’ 이 인사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계시지요? 염려나 걱정은 없으시지요? 따뜻한 밥 한끼는 늘 드시고 다니십시오. 내가 당신의 삶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런 뜻들이 있습니다. 따뜻한 인사에는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관심이 담겨져 있고, 상대방의 가장 귀한 것들을 챙겨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의 첫 인사. 당신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라는 인사는 교회와 성도를 세운 목회자로서, 누구보다 이들을 사랑하는 동역자로서,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매여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다시금 챙기고자 한 그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가장 먼저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빕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주는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길 빕니다. 저도 바울 사도의 말씀을 빌어 여러분께 고백하고 싶습니다. 우리 귀한 새벽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속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빕니다. 앞에도 은혜, 옆에도 은혜, 위에도 은혜, 아래에도 은혜, 여러분의 마음 속에도 은혜가 가득하길 빕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주는 평안함이 가득하길 빕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다보면, 은혜라는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은혜를 받았다, 은혜를 구하자, 은혜를 나눈다. 은혜라는 말이 참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인지 은혜라는 말이 무뎌지게 느껴질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은혜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든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라는 고백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쌀국수집에 가서 쌀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아니 이 쌀국수집은 왜 이렇게 쌀국수라는 말을 많이해, 쌀국수란 말 지겨우니 이제 쌀국수라는 단어는 자제하자 그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새벽교회 안에서는 늘 은혜가 왕노릇 하고,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성도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죄 용서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으십시오 할 때 그 은혜는 무엇일까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쌀국수집에 가서는 쌀국수를 먹어야 하듯이, 교회에 와서는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기 원합니다. 주님 제가 은혜를 얻기 원합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아무런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고 백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이미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초등학교 시절 엄청 좋아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노래) 여기까지입니다.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의 설렘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아직 그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기도 전인에, 이미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늘로 뛰어오르려고 합니다. 만나기 전, 만남 그 자체, 만나고 난 뒤의 그리움 모두가 다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 누군가, 아 나는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 나에겐 은혜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들어선 만으로 이미 은혜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내 마음에 느껴지고, 내 생각이 분명해지고, 내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 과정, 의심하고, 잘 모르겠고, 교회에 한번 나와 보는 것이고 이런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시는 은혜의 과정입니다. 은혜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은혜의 모든 과정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가장 먼저 ‘평안’을 얻게 됩니다. 평안이라 번역된 에이레네는 평화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 나와 내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평화, 나와 내 내면과의 평화, 이 모든 평화를 우리는 은혜 가운데 누리게 됩니다. 첫 동영상의 찬양에서 나온 가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4:27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근심과 두려움, 불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진 불치병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이렇게 살아가면 내가 잘 살 수 있을지 우리는 끊임없이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미래를 본 사람은 없으며, 우리 손에 잡히는 것은 한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 확실한 것을 잡으려고 발버둥치고, 그 발버둥이 너무 심해질 때 면 곁에 있는 가족도 잊고, 내 자신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은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넉넉히 이기실 뿐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게 되는 것, 그것이 은혜를 붙잡는 삶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을 진실로 믿는 사람은 진실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폭풍 속에서 등대 불빛을 본 사람처럼, 두렵고 불안하지만 용기있게 삶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을 붙잡는 것, 그것이 주님이 주신 평화입니다. 

바울은 1절과 2절을 통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인사한 뒤에 곧 이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대해 깊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3~4절) 목회자들에게 있어 성도가 신앙을 잘 지키고 믿음을 붙잡는 것만큼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큰 자랑이 없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에서 신앙을 버리지 않고 잘 지켜주는 것을 진실로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올려드렸고, 여러 교회들에 자랑하였습니다. 

실제로 신앙을 붙드는 데 있어서 고난과 어려움은 큰 장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씨뿌리는 비유 사진) 신앙생활 가운데 고난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을 이끌기도 하지만, 원망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잠시 교회는 쉬겠습니다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꾸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내가 이렇게 어려워질 수 있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단지 몸이 힘들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는 것이 고난의 무서움입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은 이러한 우리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고난과 어려움에 집중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은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들은 이를 인내와 믿음으로 견뎌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어려워질수록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붙잡았고,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비추는 귀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오해해선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되면 무조건 고난이 생긴다. 어려움이 생긴다 오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잘 못 오해하면 나도 저렇게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도의 고난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무조건 고난이 사라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바른 생각은 아닙니다. 왜 예수님 믿고 있는데 계속 힘들어, 하나님 안계신 것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라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랐던 많은 이들도 그들의 삶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고난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질병으로 계속 고생했는데,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 병을 치료해주지 않으시고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하시기 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 고난은 늘 우리의 삶에 늘 함께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이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은 고난 가운데 집어 삼킴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 가운데에서 믿음이 더욱 깊어지며,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신비로움인 것입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고, 작은 양으로도 세상이 썩지 않게 합니다. 고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드러내는 이들입니다.

저는 우리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제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같은 이들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든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의 사랑이 풍성해지길 소망합니다. 힘들면 흩어지는 공동체가 있는 반면 힘들수록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어렵고 지칠 때 자기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공동체가 있는 가 반면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가 서로를 더욱 생각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 당장 이익이 되는 것 앞에서는 구름떼처럼 모여들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오면 흩어지는 공동체가 있는 가 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지고 손에 잡이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 진짜 믿음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 새벽교회 모든 성도들이, 그리고 제가 이러한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가깝게는 창원에 계시는 장목사님이 자랑스러워하고 감사하는 공동체가 되고, 근본적으로는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보석과 같은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바울을 11절 12절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문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조금 더 이해가 쉬운 새번역으로 준비했습니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며 또 그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주시기를 비는 것입니다.
12    이렇게 해서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게 해주소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은혜를 설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 그것부터 은혜의 시작이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 이 자리에 온 사람은 없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주셨습니다. 내가 교회에 가봐야겠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내가 하나님을 더욱 잘알고 싶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행위나 자격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은혜로 불러 주셨습니다. 

딤후 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영원전부터 우리를 예비하시고 오늘 이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개의치 않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깊은 감격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의 모습에 합당한 선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착한행실을 보여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라 명령하셨습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 할 지라도 그 안에 왕이 있으면 그 집은 궁전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집이라 할 지라도 그 안에 죄수들이 가득하면 그 집은 교도소가 됩니다. 그 집의 크기가 그 집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있느냐로 이름을 정하게 됩니다. 우리들 마음 가운데 죄가 가득하다면 우리는 죄인으로 불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전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그것이 곧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삶에 성도들을 초대하셨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오늘 저와 새벽 교회 성도들도 동일하게 기도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

우리는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우리의 신앙을 온전히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