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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에 들어가신 예수님 (2021.01.31.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15:29~39)

 

마태복음 15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벌써, 2021년이 시작한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를 시작하며 여러 가지로 계획하고 결단하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한 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잘 진행된 것은 계속해서 실천하고, 부족했던 것은 보완하여, 남은 열한 달을 더욱 잘 보내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화려한 궁궐에 사는 왕이나 귀족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종교 지도자들, 곧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핍박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이방에 살던 여인,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여인,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존엄성을 내려놓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던 여인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애통하는 사람이 바로 이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께 구원을 받았고, 그 자녀를 지배하던 귀신은 쫓겨나갔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여인을 고치시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과 같은 장면을 묘사하는 마가복음 말씀에는 예수님의 행선지가 분명히 나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731절 말씀입니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데가볼리 지역은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으로 오시긴 하였지만,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방지역이요, 오늘 예수님의 사역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30, 31절 말씀입니다.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에서 했던 사역은 유대지역에서의 사역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다리저는 사람, 보지 못하는 사람, 말을 못하는 사람, 기타 여러 가지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주님의 기적을 놀랍게 생각하였고, 이전에는 그들이 믿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 땅에도 분명한 구원을 선포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난주 가나안 여인에게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셨지만, 사실 그 말씀의 속내에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시고자 하는 주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가나안 여인을 고치주시고, 곧 이어서 이방 지역에서 사역하심으로 주님의 사역은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이방인들에게까지 이어지게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교독문으로 봉독했던 말씀, 이사야 42장 말씀은 우리 예수님을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426절 말씀입니다.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시오, 동시에 이방인들에게는 빛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 치유에는 한계가 없고, 주님의 나라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되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선포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선포는 주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민족을 넘어, 또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세상적인 기준을 넘어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공평하신 우리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일을 똑같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 걷지 못했던 사람이 걷게 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게 되며, 말 못했던 사람이 말하게 되고, 움직이지 못했던 사람이 움직이게 되는 기적은 그저 2천년 전 어느 날에 있었던 신비로운 기적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주님은 움직이지 못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보지 못했던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며, 말하지 못했던 우리로 하여금 다시 말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고, 주님을 믿으며, 주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 가운데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모든 것을 통해, 때로는 의술을 통해, 때로는 돕는 손길을 통해, 때로는 말씀과 예배의 은혜를 통해,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들을 통해, 때로는 지혜와 능력을 통해 우리의 삶을 기적으로 채우신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고치신 뒤에, 이전에 베풀어주셨던 무리를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다시 베풀어 주셨습니다. 32~38절 말씀입니다.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매진하다보니 벌써 사흘이 지났고, 광야에서 함께하였기에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고, 이들이 먹지 못하여 지칠까 염려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전에 했던 기적 그대로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이번에는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전과 똑같이 사람들을 무리지어 땅에 앉게 하시고, 그 떡과 생선을 축사하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똑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라 명령하였고, 모든 이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모아보니 일곱 광주리였습니다. 이때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를 빼고 성인 남자만 세어도 사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출애굽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셔서 해방시키시고, 하나님 나라의 자유로운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만나를 먹이심으로 앞으로의 삶과 생명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을 보증해주셨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되심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모든 백성에게 하늘의 만나를 먹이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회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이 구원과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당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던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둘을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완전한 숫자로 여겼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의 완전한 구원과 풍성한 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의미가 있던 기적을 오늘 이방 지역에서 그대로 베푸신 것입니다. 주님의 먹이심과 구원하심이 그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었다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기적을 베푸시면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셨습니다. 사천명을 먹이고 난 뒤에, 거둬들인 광주리를 세어보니 일곱 광주리(코피노스(12), 스퓌리스(7))가 남았습니다. 7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충만을 의미하는 완전한 숫자였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한 주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온전하게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을 성서학자들은 급식 이적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급식이적을 두 번이나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주님께서는 굶주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무리들의 육체적 필요를 소홀히 여기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구원과 생명이 주님께 달려있음을 가르쳐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생활과 같은 삶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며,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고 영생을 주시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열두 바구니처럼, 일곱 광주리처럼 주님의 은혜는 풍성하고, 주님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자신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우리 주님은 이 급식이적을 통해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이 놀라운 이적을 바라보며, 이 기적이 그저 성경 안에만 있는 놀라운 사건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이적은 우리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가르쳐주는 이적이요, 이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 풍성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또 작은 떡과 물고기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베푸실 것입니다. 주님의 역사는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역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해 우리 자신을, 또한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공동체를, 또 우리의 사업체와 우리의 직장과 우리의 학교를, 나아가 우리의 사회를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구원으로 채워나가실 것입니다. 그 일이 그저 2천년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오늘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급식 이적의 뜻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최고와 최선의 것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구분하여 등급에 따라 사람을 대접합니다. 비행기를 탈 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 각각 대접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분지어서 대접 받을 때 우리는 또 좋아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최고와 최선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선을 넘고,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각자 각자에게 오셔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은혜와 사랑과 구원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그러한 놀라운 은혜를 말씀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나의 자격과 나의 모습을 먼저 바라보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보다 앞서서 내가 내 자신을 먼저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격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이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져주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구원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충만한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에 응답하는 길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로 주님을 찾으며, 마음으로 주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2천년전 데가볼리의 이방인들이 만났던 그 예수님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시고 동행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