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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길 (2016.02.28. 대학부 집회 설교)


요한복음 12장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우리는 삶에서 수 많은 선택을 합니다. 작게는 오늘 점심 뭐 먹지? 오늘 집은 뭐타고 가지? 오늘 집회는 갈까 말까? 하는 선택들도 있고, 크게는 나 문과할까 이과할까? 나 대학 어디가지? 나 얘랑 사귈까 말까 하는 큰 선택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의 길들이 만들어 집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소한 선택의 차이로 우리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교회를 선택하는 일이 그랬습니다. 대학에 와서 처음 서울 살게 된 저는 주일 예배를 근처교회에서 빨리 어른 예배만 드리고 오후는 신나게 놀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 전공을 신학을 하였습니다. 학기가 끝날 즈음 학교에서 교회 활동 보고서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하며 물었더니 교회를 한학기간 잘 다녔다는 증명서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데 교회는 다녔지만 교회 등록을 하지 않아서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과동기 친구가 우리 교회 다닐래? 우리 목사님께 부탁드려볼게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부탁하게 되었고, 저는 그 소개를 통해 ‘소망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꾼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그 선택을 통해 우리의 길을 찾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선택이야 말로 우리 인생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 사람이 선택의 길에 놓여있습니다. 이 선택은 매우 중대한 선택이었습니다. 헴릿의 유명한 구절처럼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을 두고 고뇌하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난 사역의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일,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 사람들을 먹이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했습니다. 사람들과 하나님의 단절된 관계를 온전히 회복시키 위한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아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요,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또한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두려움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하나님과 연합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그때의 그 심정이 오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은 괴로워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은 두려워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수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그 모든 복잡한 마음과 고통속에서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순종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순종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용기를 내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을 조금 더 두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이들이 보는 위인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린시절 위인전 중 ‘광개토대왕’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오랫동안 내려저온 설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어린시절 광개토대왕 어린이가 숲에서 호랑이와 마주친 이야기였습니다. 활을 겨누고 눈싸움을 해서 호랑이를 쫓아낸다는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용기를 갖는 위인이 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에서 호랑이를 만나서 눈싸움을 한다면 우리는 쳐다보기도 전에 호랑이에게 뺨을 맞을 것입니다. 용기는 이렇게 비범한 사람들이 영웅적으로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내적갈등 속에서도 조금 더 힘을 내어 한걸음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조금 이겨내고, 내 안에 걱정을 조금 더 이겨내고, 내 안에 열등감을 조금 더 이겨내고, 내 안에 연약합을 조금 더 이겨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이 용기를 가지고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는 용기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따라간다고 해서 제자들만 갈릴리 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게 된 일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위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을 따라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야 두려워하지마 말씀하시자, 그때에서야 베드로는 예수님께 만약 진짜 예수님이라면 나도 물위를 걷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래 이리 걸어오라,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가게 됩니다. 걸어가던중 다시 바람이 불자 두려움에 빠져 물에 빠지게 되었고,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건저 주셨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베드로의 용기를 보았습니다. 폭풍이 부는 바다에서 그나마 그를 살려줄 수 있는 것은 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꺼이 배를 버리고 한걸음 예수님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비록 가는 길에 실패했지만 결국 그는 예수님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삶을 틀어 한걸음 내딪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고, 순종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용기와 순종을 보여주셨습니다. 두렵고 떨림이 여전히 있지만 그저 삶의 한걸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트셨습니다. 그리고 그 걸음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순종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인생을 헌신할 거야, 세상을 바꿀거야, 내 비전은 이런거야라고 거창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선택하는 그 순간에 조금 더 주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갖고 순종하여 한걸음 내딪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바른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은 귀찮아도 큐티 한 번 하는 것, 귀찮아도 배려한 번 하는 것, 힘들어도 집회에 나오려고 하는 것, 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과 같은 일들입니다. 그것을 통해 예수님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