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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1-13 (2017.01.25.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마태복음 2017. 1. 25. 15:02

오늘 말씀은 평소 말씀보다 깁니다. 그저 훑고 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간단한 삶의 교훈만을 얻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기를 소망합니다. 시간을 내어 함께 말씀 안으로 들어갑시다. 


<말씀>

마태복음 9장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나눔>

1. 오늘 말씀에는 똑같은 구조를 가진 두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중풍병자를 고친 사건과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신 사건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 핵심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2. 이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건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세부류의 사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중풍병자, 세리와 죄인)입니다. 둘째는 이들을 만나주신 예수님입니다. 셋째는 이러한 예수님의 행보를 비판한 사람들(서기관, 바리새인)들입니다.


3. 우리는 상황에 따라 이 세 부류의 자리에 언제든 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오늘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입장에서 말씀을 세 번 읽는다면 오늘 말씀은 훨씬 더 풍성하게 우리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4. 첫 번째 사건에는 중풍병자가 등장합니다. 중풍병자는 뇌출혈이나 뇌경색 등으로 몸에 마비가 온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서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보자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셨습니다. “안심하여라. 너의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것을 본 서기관들(율법학자들)이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죄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말한다면 지금 자기를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한거 아닌가?, 이것은 분명한 신성모독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속 마음을 알아채셨습니다.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실은 그냥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하면 분명히 너희들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내가 죄를 용서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보기에는  중풍병에 걸려서 몸을 움직이지 못한 환자나,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이심을 알아채지 못하는 서기관들이나 모두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이 둘 모두를 고려해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만 몸이 나아서 자기를 들고 왔던 침상을 들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5. 두 번째 사건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당시에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부정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로 적용하면 친일파, 동성애자와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당대에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의인’이 ‘죄인’과 함께 다니면, 의인이 부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죄인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세리와 죄인들과 동급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바리새인들(종교지도자들)은 당연히 이를 보고 비난했습니다. 조롱하는 투로 일갈했습니다. “너희 선생은 어찌해서 세리나 죄인 같은 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소. 거룩하지 못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대답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은 동물을 잡아 바치는 희생제물이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이라고 선포한 말씀의 뜻을 생각해봐라.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의인을 만나러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죄인들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인 자신이 이들을 만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6. 우리는 이 두 사건 속에서 먼저 첫 번째 부류, 하나님이 필요한 부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중풍병자와 세리와 죄인을 보며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몸을 못 움직여서 몸의 자유를 얻지 못하던 중풍병자처럼,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에 매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채우며 살던 세리와 죄인들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지 못해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이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예수님을 찾고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참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7.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아셨습니다. 그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습니다. 가장 낮고 연약한 곳,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곳을 깊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그곳에 나아갑니다. 고진 십자가의 죽음이 이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먼저는 이렇게 죄인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구나는 아는 깨달음이요, 다음은 우리 역시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은 이웃들을 사랑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과 만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걸어야할 길입니다. 


8. 셋째로 예수님을 거절하는 이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악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굳은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목숨과 같이 귀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온 삶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그들은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 조항에 매인 나머지, 마음에 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가 병에서 나은 것보다 예수님의 말에 더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참된 기쁨을 찾는 것보다 예수님의 태도에 더 집중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고난과 고통에 무감각해진 상태, 사랑이 없는 냉담한 마음, 이것이 이웃을 바라보는 것보다 자기 신앙 윤리와 교회 조직이 더 중요해진 것이 이들이 빠진 함정이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예수님을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9.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크게 세 가지를 바라봅니다. 첫째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둘째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셋째는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다시금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10. https://www.youtube.com/watch?v=bXYS_4lWv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