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제자의 길과 고난 (2020.09.13.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0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가 캐나다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참 프로모션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도 그렇지만, 캐나다가 한국보다 오히려 더 많은 프로모션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가입이나 핸드폰 가입 같은 경우에도 경쟁이 치열하고 조금 더 싸게 가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은행 개설과 같은 경우도 여러 은행이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더 많은 혜택을 얻으며 개설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보였습니다. 고객에게 계속해서 여러 유인책으로 자기 고객이 되도록 애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 서서히 지내다보며 아 이런걸 잘 활용해야하는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일 때 이처럼 그 사람에게 여러 가지 혜택과 유인책을 주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이러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당신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 입니다. 당연히 그러한 것이 있어야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믿고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보통 사람의 방법과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이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박해와 재판과 심지어 순교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일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주간에 걸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리에서 제자로 부르신다는 것을 여러차례 강조하여 들었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에 끌려 그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는 지 생각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유익을 구하는 사람들이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예수님이 특별히 부르신 사람입니다. 그 부르심 안에서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된 사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 예수님을 대신하여 일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를 손수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마을 마을에 직접 파송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이러한 제자들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셨고, 오늘 우리도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말씀 후에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듣게 되는 것은 당연히 이러한 제자가 누리게 될 영광입니다. 당신이 무리에서 제자가 되었으니 이렇게 놀라운 보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뒤따라와야 상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말씀은 그러한 방향과는 전혀 반대의 말씀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실제 제자들의 남은 인생의 방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씀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17, 18절 말씀입니다.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많이 너희가 내 제자가 되어 나를 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너희를 재판에 넘길 것이다. 심지어 회당에서 너희를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를 전한다는 이유로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훗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고, 유대인의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하게 되는 일들을 예언하셨습니다. 또한 사회를 혼란시키고 잘못된 믿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총독들이나 왕들에게 끌려가서 재판을 받고, 그들 앞에서 신앙을 증언하게 될 미래에 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훗날 제자들은 세상 곳곳에서 복음을 증언하다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계속해서 21, 22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나아가 이러한 제자의 삶의 끝에 순교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제자들의 운명이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고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 될 수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제자들은 박해를 받아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 복음을 믿던 초대 그리스도인들 역시 모진 박해를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실제로 로마에서 313년 기독교가 공인받을 때까지 예수를 믿고 전하는 것은 모진 차별과 박해, 나아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는 길의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의 길의 험난한 여정을 미리 알려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예수님 믿는 삶을 어렵게 인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한 번에 일들을 이루실 수 있으실텐데 왜 이렇게 고난과 박해를 허락하셨을까요?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이 복음을 세상이 무작정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세상의 방법, 세상의 길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자랑은 십자가의 길을 기뻐하지 않음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23절 말씀에서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리스도의 길은 자기 희생을 통한 용서의 길입니다. 낮아짐과 겸손을 통한 사랑의 길입니다. 자기의 것을 내어주어 다른 이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자연스럽게 자기 홀로 높아지려는 삶, 권력과 탐욕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실로 복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 때 세상은 그 복음을 불편해하고 미워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양반과 백정)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처음 전파될 때에 그 시작이 고난과 박해였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복음 전파자의 숙명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에는 주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 곧 하나님 나라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설명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44절 말씀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어떤 사람이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의 일부를 떼어 땅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같은 소작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밭을 갈다가 쟁기에 뭐가 탁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밭을 헤집어 살펴 보았더니 보물 상자 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쿠 이게 뭐야 하고 딱 열어봤더니 아주 옛날 고대 사람들이 묻어놓았던 금화가 가득 담겨있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농사꾼은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땅은 내 것이 아니니 보물을 땅 주인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내가 이 땅을 사버린다면, 자연스럽게 이 보물도 내 것이 될 수 있다. 이 땅은 내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살만한 가치가 있는 땅이다. 이 사람은 집에 돌아가서 집에 있는 숟가락 젓가락까지 다 팔아서 돈을 모아 그 집주인의 땅을 비싼 값을 주고 사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저 땅에서 이제 먹고자고 하려나보다, 어리석은 짓이다 비난했지만 그 농부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농부의 눈에는 이땅이 그럴 가치가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수많은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보기에 복음 또한 그저 많은 종교의 가르침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마치 농부들이 각자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얻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믿는 믿음을 선택해서 자기의 삶에 유익을 얻는 정도로 종교를 활용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복음은 놀랍게도 그 밭에서 보물상자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야기, 그 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야기, 그분이 부활하신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뒤바꿀만한 아주 값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이제 자기의 온 인생을 팔아서 그 보물을 가진 밭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것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 보물은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가치를 정확히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120, 21절 말씀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이 가진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다 어떤 일을 당해도 그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길 원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믿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살든지 죽든지 전혀 개의치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전과 같이 지금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존귀함을 얻게 되는 것,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된다면 자기 자신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실로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이 바울의 고백, 그리고 또 앞서 전하신 예수님의 비유에 오늘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놀라운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가 되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 선포하신 것은, 그 고난을 통해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또한 동시에,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발견했기에 이러한 고난의 길을 기꺼이 갈 수 있게 되는 것을 보여주시고 하심이었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의무이기 전에 특권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저 무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통해 약간의 부스러기를 얻는 무리의 삶에 그쳤을 것입니다. 마치 소작농이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것처럼, 일정부분 세금을 내고 먹고 살 정도의 곡식을 수확하는 것처럼 그렇게 종교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헌금을 내고, 봉사를 하고, 일정부분 위로를 얻고, 인간 관계를 얻고, 이러한 무리의 삶에서 멈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물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생명을 다해 우리를 사랑해주셨고,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고,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님의 뜻을 위해 부르셨고,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에 그저 삶에 부수적인 유익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근원적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통해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제자의 삶의 가치를 진실로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이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고난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으면 그 가치대로 살기위해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맞이할 고난을 선포하셨지만, 사실 그 속에는 그들이 갖게 될 놀라운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러나 동시에 고난을 당하게 될 제자들에게 함께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16절 말씀에서 이와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너희에겐 비둘기같은 순결함과 동시에 뱀같은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복음 전하는 사람으로서의 순전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뱀과 같은 지혜가 함께 필요함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드러내는 길은 이와 같은 지혜가 필요한 길임을 우리는 삶을 살아갈때마다 느끼실 것입니다. 주님은 19, 20절 말씀을 통해 이와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님께서 모든 순간,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지혜를 주시고, 우리 가운데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주님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귀한 성도님들 한분 한분 삶을 살아갈 때, 사람을 만날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모든 만남을 이끌어가시고, 우리 삶이 주님의 통로가 됨을 느끼실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는 일이 사실은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가 깊이 성장하는 길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살아갈 때 우리는 구원의 길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22, 23절 말씀입니다.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우리는 그 길을 통해 구원의 길로 나아갈 것이요, 그 길 끝에서 다시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동행할 때, 세상이 끝나는 날 주님을 맞이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세상이 복음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낮아짐과 겸손의 길, 희생의 길을 두려워하고 박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뚫고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둘째로 주님께서 이러한 세상의 박해를 잠시 허용하시는 것은 그 박해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신비가 더욱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참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고난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복음의 깊이와 능력을 드러냅니다. 오히려 고난이 복음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잠시 고난를 허용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그것을 경험할때마다 우리는 더욱 성장하고 더욱 깊은 신앙의 길로 걸어갑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