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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 (2020.11.15.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3장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선포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중심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목표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삶의 의미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부터 이제 여러분의 마음을 돌리십시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십시오. 라고 말씁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의미로, 또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늘 하나님을 신뢰하며, 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주님, 진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날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제껏 하나님 없는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아는 삶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초대와 부르심은 당연히 그때 당시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앞으로 나아온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나에게 오라, 이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하심을 믿어보아라. 이제 주님을 바라보아라. 나는 너의 마음의 문 밖에 서서 네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네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이 부름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너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놀랍고도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에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저는 이미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더욱 깊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는 그 부르심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그 부르심을 알고는 있지만, 제 삶이 너무 힘들어서 그 부르심을 붙잡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르심을 들었고, 그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부르심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어서 그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각각 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온전히 응답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이미 알고 선포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네 종류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 3~8절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네 종류의 마음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농부의 이야기로 설명하셨습니다. 한 농부가 나와서 씨를 뿌렸습니다. 아주 작은 씨앗들이라서 하나하나 심는 것이 아니라 흩뿌렸습니다.그때 흩날린 씨앗들이 땅 곳곳에 떨어졌습니다. 한 씨앗은 길가에, 한 씨앗은 얕은 돌밭에, 한 씨앗은 가시나무 덤불 위에, 한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똑같은 농부가 똑같은 씨앗을 뿌렸지만, 이 씨앗들은 어느 땅에 떨어졌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졌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바로 새에게 먹혀 버렸습니다. 얕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잠시 싹이 텄나 싶더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뜨거운 햇볕에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가시나무 덤불 밑에 뿌려진 씨앗은 싹을 틔우고 뿌리도 내리고 어느정도 자랐지만 결국 가시나무 덤불에 막혀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만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직접 설명해주셨습니다.  18절부터 23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에서 씨 뿌리는 농부는 우리 예수님입니다. 씨앗은 주님의 천국 말씀입니다. 곧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하시는 그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밭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한사람, 한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넷으로 갈립니다. 

첫 번째는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길은 아주 단단합니다. 그곳은 씨앗을 전혀 받아들일수 없는 곳입니다. 냉담하고 차가운 마음, 무심한 마음, 단호한 거절의 마음이 바로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말씀이 그러한 마음위에 떨어졌을 때 그 말씀은 어떠한 일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새가 와서 씨앗을 먹어버리듯, 악한 마귀가 그 말씀을 바로 빼앗아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장에 갔을 때, 내가 무관심한 물건을 파는 상인의 말은 아무리 그 소리가 커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말씀은 마치 바람이 말의 귀를 스쳐지나가듯 사라지는 말씀이 됩니다.

씨에스 루이스라는 작가가 쓴 스크류 테이프의 편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우화인데, 사탄의 입장에서 후배 악마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가를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거꾸로, 우리가 무엇을 진짜 경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를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게 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인생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것, 평안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하나님 없어도 인생 살아가는데 아무런 어려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 무조건 바쁘게 만드는 것,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아예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 종교 문화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이러한 것들이 최고의 전략이라 말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길가와 같은 마음 상태, 매일 매일 뿌려지는 말씀의 씨앗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에 가장 치명적인 위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돌밭은 그 깊이가 깊지 않습니다. 돌밭은 싹을 틔울 수는 있지만, 뿌리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되 진지하게 듣지 않는 마음이 바로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에수님의 부르심을 그저 호기심으로, 또는 습관에 따라, 또는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는가 하는 마음으로 듣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바로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에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재미있어하고 때때로 감동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얕은 마음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드러나버립니다. 뜨거운 해가 떴을 때 뿌리가 깊지 않은 싹은 말라 죽어버리듯이, 이러한 사람은 고난과 환란을 당했을 때 그 신앙을 포기해 버립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와같이 선포합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가 진실로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말씀은 우리의 심령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없는 내 삶의 빈곤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모르는 내 삶의 죄악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내 삶을 애통하게 되고, 이제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겠다는 회개와 결단이 일어나게 됩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말씀을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 정도로 받아들이고,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진지하게 주님의 부르심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환란과 박해와 고난 속에서 말라버리고 맙니다. 정작 내 삶에 진짜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가 모진 훈련을 통해 기술을 몸에 배게 하면 순간적인 위기 때에 그 기술이 나옵니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라 그저 축구 경기를 매번 관람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 축구 기술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정작 운동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이 나를 바꾸면,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지만, 말씀을 그저 듣기만 한 사람에게는 말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그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는 가시 덤불과 같은 마음입니다. 가시 덤불 밑 땅에 떨어진 씨앗은 좋은 땅에서 싹을 잘 틔웁니다. 뿌리도 내리고, 줄기도 뻗어 나갑니다. 그런데 얼마간 잘 자란 나무가 가시덤불을 만나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가시덤불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많은 신앙인들의 마음이 가시덤불 아래의 땅과 같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믿고 따르기 시작합니다. 자기 삶을 되돌이켜 하나님을 주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신앙을 세워나가며,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신앙이 잘 자라다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거대하고도 강력한 가시덤불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가장 큰 신앙의 위기는 ‘생존’과 ‘욕망’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우리를 크게 흔드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말하면 돈은 하나님만큼 큰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돈은 때때로 우리의 하나님 역할을 합니다. 돈이 떨어지면 우리는 큰 염려로 온 마음을 빼앗깁니다. 거꾸로 돈을 벌수있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고 유혹에 빠져버립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는 돈 앞에서 염려와 욕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 삶의 모든 관심사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심지어 말씀이 우리 가운데 심겨져서, 우리 안에 말씀의 씨앗이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나가게 하여 어느 정도 자란다 할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아 열매 맺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기에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염려하지 말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위해서는 네가 가진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참새를 먹이시고, 땅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말씀하시며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먼저 그의 나라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려 하던 젊은 부자 청년에게 내가 구원을 얻으려거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말씀 모두,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결단을 할 때만이,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주님의 선포였습니다. 

주님은 끝으로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그 음성이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내 삶을 온전히 뒤집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에서 오직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내 모든 것을 내어드려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사람을 통해 결실을 거두겠다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말씀에 보면, 삭개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동네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내 인생을 바꾸어주실 분이시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기에 뽕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으로부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자신의 삶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는 이제껏 세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선언합니다. 이제 저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겠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돈을 탐하던 삶, 속이던 삶을 과감하게 떠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음을 인정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삭개오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말씀을 좋은 땅에 심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삶을 삽시다. 그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여는 것도, 그 말씀이 우리를 온전히 바꾸는 것도, 심지어 세상 염려와 유혹을 이기는 것도, 우리 주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이땅에 오셨고, 주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다같이 주님께 간구합시다. 주님 제 삶에 찾아와주셔서, 제 마음을 좋은 땅으로 빚어 주시옵소서. 단단한 마음을 갈아주시고, 돌들을 치워주시며, 가시덤불들을 제거해주시옵소서. 우리가 좋은 땅이 되어, 백배의 결실을 맺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와같이 주님을 찾을 때, 우리를 부르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찾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 밭도 새롭게 하셔서, 충만한 결실을 맺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