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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그리스도인 (2015.08.09.대학부 집회 설교)


에베소서 4-5장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요즘 제가 도로주행을 하는 데 저와 함께 운전 시험을 보신 분이 6번째 시험을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관을 하는데 운전을 너무 위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습니다. 그런데 자꾸 오른쪽으로 차를 치우치게 몰아서 옆에 지나는 버스와 부딪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시험관이 부딪치지 않게 운전대를 잡고 움직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운전하시는 분이 긴장해서인지 핸들을 꼭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위험했습니다. 시험관께서 힘빼세요! 하고 소리를 질러버리셨습니다. 저도 손잡이를 꽉 잡고 숨을 푹 쉬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핸들을 우리가 꼭 잡을 때 우리의 삶은 사고가 나고 맙니다. 핸들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핸들을 맡기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 핸들을 맡기는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 21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렇게 살아라. 너희의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옛 습관을 따르지 말고, 오직 너희의 심령을 새롭게 해서 새 사람이 되어라. 새사람이란 하나님을 따라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핸들을 맡기는 사람은 새사람이요, 새 사람이란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구원을 알고, 예수님과 관계 맺는 사람이 바로 새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자기 삶의 핸들을 욕망에 맡기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첫째로 정직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할까요? 우리는 불안하거나 비난받을 위험에 처했을 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욕심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속이고 빼앗기 위해 거짓말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거짓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의 근원적인 평안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삶의 핸들을 욕망에 맡겼다는 증거입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온전히 충족시켜줄 그 무엇인가를 찾을 때 가능합니다. 신뢰할 만한 것, 그것이 바로 정직의 근원입니다.


둘째는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왜 분을 품게 되나요? 우리의 상처와 우리의 아픔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우리의 교만함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열등감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무조건 내지 않는 것이 건강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를 지속적으로, 종종, 그리고 풀리지 않고 내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깊은 생채기가 있다는 증거이며, 덧나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분, 역시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시는 주님과 함께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가난한 자를 위해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난한 자에게 마음을 두십니다. 성경은 세상의 악과 고난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누군가는 더 많은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내가 아픈 것과 다른 이의 아픔을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아가 다른 이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애쓰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까지 기다리시고 계시며, 그 기다림 속에서 여전히 아파하는 자들의 고난을 들으시고, 그 고난을 우리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바른 말을 하여야 합니다. 듣는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열매입니다. 말은 그 사람을 표현합니다. 전도사님도 사실 어렸을때는 말을 거칠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친 말들이 내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꾸로 내 마음의 상태가 내 입술의 말로 쉽게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트켄슈타인은 네 언어의 한계는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말하는 것이 곧 생각이요, 생각이 곧 언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운말을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는 깊은 생각이 우러나오는 말을 하라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은혜의 말, 하나님을 고백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고백할 때, 우리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이 경험되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고, 구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믿음의 그 깊은 의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배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의미를 온전히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은 이러한 삶을 요약하고, 그것의 핵심근거를 고백합니다.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이 모든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예수님께서는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를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대학부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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