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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하라. (2015.10.18.대학부 집회 설교)


욥 38장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24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25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26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27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28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    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 

31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32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4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37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38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 

39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숲에 앉아 숨어 기다리느니라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본문이 참 길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무슨 이야기일까요? 배경을 이해하면 오늘 본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욥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탄이 하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욥이 정말 하나님을 잘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재물과 복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들을 없애도 하나님을 사랑할까요? 사탄은 하나님께 욥을 시험해도 될지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에 따라 욥의 재산과 가족, 나아가 건강까지도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욥은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욥은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습니다. 그의 세 친구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욥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그들의 생각과 지혜를 동원해 조언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욥아 네가 고통을 받는 것은 아주 잠깐일거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욥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고통을 이용하시는 거야. 욥아 이런 고통은 너의 무지와 나약으로 말미암은 죄 때문이야. 욥아 너의 고통은 어쩌면 니가 알지못하는 사이 아주 큰 죄를 저질러서 그런 거야라며 충고해주었습니다. 욥은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이러한 친구들의 조언에 반박했습니다. 나는 죄가 없고, 나는 문제가 없어. 나는 내가 왜 이런 고통 속에 있는 지 모르겠어. 라며 항변했습니다. 친구들은 그러나 이러한 욥에게 이런 교만한 사람, 니가 죄가 없다고? 넌 진짜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모르는 구나 하며 더 크게 정죄하였습니다. 결국 친구들의 위로와 충고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법칙, 자기 세계에 갖힌 모습만을 보였고, 이는 욥의 세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욥에게 하나님께서 대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을 보면 조금 이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응답으로 적절하려면 이러한 대답이어야 합니다. 욥아 너는 아무런 죄가 없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참았다. 라든지 욥아 너의 고통은 이런 이런 이유 때문이란다. 고통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라든지, 욥아 이러한 고통은 너에게 이러한 가르침 때문이란다. 이러한 대답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엉뚱한 것처럼 보이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욥아 네가 자연의 광대함을 아느냐? 자연의 놀라운 법칙들이 어떠한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아느냐? 하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물어보신 것입니다. 욥의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욥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하기에 앞서 오늘 말씀 제목처럼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하라.’ 요청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진지하게 욥에게 물어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들을 하신것일까요? 욥에게 이러한 질문들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욥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시지 않고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하신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 것은 당시의 욥에게 의미가 있을뿐더러 오늘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수많은 문제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차원의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 없는 예배, 기도, 찬양과 같은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생활, 취업, 결혼, 건강, 재정과 같은 수많은 당면한 문제들 앞에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이러한 엉뚱해 보이는 요청에 응답해 수많은 우리의 일상 속의 질문을 둔 채로 예배에 나와 예배를 하고, 울모임을 하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의 질문은 일상의 방식으로 응답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학점이 떨어진 사람이 해야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은 학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위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두고 그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엉뚱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해주신 응답은 이런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고통의 문제는 전혀 말씀하시지 않고 전혀 다른 자연의 놀라운 창조 섭리를 이야기 하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대답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이렇게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일까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왜 우리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돈 낭비를 하면서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일이 가장 근원적인 우리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너무 커서, 너무 깊어서, 너무 넓어서 우리의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고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욥 네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드러냄으로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설명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이 복잡 다단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패트릭 게데스 ‘띵크 글로벌리, 액트 로컬리’ 세계적인 관점으로 오늘 내 자리를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비로소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욥에게 해주신 하나님의 응답은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너의 고통의 원인이나 목적 같은 것은 당대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보다 훨씬 큰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고, 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때 그 길을 넉넉히 이겨나가는 힘이 생길 수 있다.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러분 삶에 수많은 숙제들이 있습니다. 그 숙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기도 참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우리는 우리의 숙제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삶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그 곳에서 나와 내 삶과 내 존재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그런 것입니다. 내 삶을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그 길에 한 발 더 내딛어 보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처럼 대답하라입니다. 이것이 목사님의 요청에 응답하라는 차원의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너의 전 삶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에 주체적으로 굳건하게 서서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삶의 의미를 찾는 길에 용기를 내어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봉사와 사역이 이 대답으로서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피동적으로 끌려가듯이 의무감이나 두려움 때문이 이 일들을 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주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내 요청에 내 삶을 걸고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욥도 가장 큰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직면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