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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의 초대 (2015.10.04. 대학부 집회 설교)


히브리서 11장 1-2절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예수님께서 처음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실 때 외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 말씀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을 부르시며 외치십니다.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삶을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기쁜 소식을 들으십시오. 외치신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대신하여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마침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날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가셔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이 온 우주가 시작되던 그 순간부터 여러분을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어떤 상처가 있든지, 어떤 힘듬이 있든지, 어떤 짐들을 지고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스펙이나 능력이나 외모나 부유함이나 마음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의 여러분을 깊이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연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에게 네가 믿는 하나님을 증명해 보아라 하고 물어본다면 저는 솔직히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중세의 수많은 교부철학자들이 신을 증명하고자 애썼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근대 이후에 많은 변증이 등장했지만 어느 변증하나 제대로 하나님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이 우주안에 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합리적 사고 안에서 적어도 오늘까지 인간은 신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께서 저에게 하나님을 믿습니까? 묻는 다면 저는 솔직하게 믿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날카로운 의심이 내안에 있고, 이성적 질문들이 내안에 있으며,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이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어떤 신비적 체험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혹은 심판 받을 것, 지옥 갈 것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그저 알 수 없는 놀라운 이끌림이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이것을 은혜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저는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구나, 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사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죽음이 나를 온전히 해방시켰으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기쁨이 내안에 충만해짐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이 아닙니다. 이성적 이해도 아닙니다. 나의 의지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또 그것을 뛰어넘는 놀라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현실로 나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없던 세상에서, 하나님이 계신 세상으로 저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 현실 속에서 저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집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곤 합니다. 집에 불이 났습니다. 집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뛰쳐 나와야 합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그 안에 있으면 타 죽기 때문입니다. 불에 사람이 들어가면 타 죽는게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불이 났을 때 집에서 뛰쳐 나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게 행동한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불이 난 집에 그냥 뛰어들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불이 있는 곳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무릎쓴 행동이기에 그것은 참으로 비합리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집안에 자기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죽을지 알면서도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집에 뛰어들어갔다면 그것은 합리를 뛰어넘는 초합리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 집안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것을 본다면 미쳤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사랑이 이성을 이겨낸 놀라운 사건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합리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교회를 다니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매주 일주일중 하루를, 많게는 삼사일을 교회 활동에 씁니다. 자기가 가진 돈의 십분의 일을 교회에 냅니다. 부딪히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을 씁니다.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도 못합니다. 참고 살아야 하고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가장 불쌍하고 비합리적인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더 좋은 성적,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명예와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은 믿음을 합리적 영역으로,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도통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모든 것 안에 사랑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이성을 덮는 것입니다. 저에게 역시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기쁜 일이 됩니다. 물론 때때로 힘든 순간도 있고, 지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인 일들이 오히려 삶에 힘이 되고, 의미가 되고, 나아가 감격스러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기꺼이 참여하게 되고, 즐겁게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놀랍게 설명합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힘듬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으로 맞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입을 것이 없어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다녔으며, 가난과 고난과 학대를 겪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거부당하여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기뻐하였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서도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세상에서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하나님을 만난 그들의 시점에서 볼 때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합리를 뛰어넘은 사랑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이 기쁨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말씀은 이를 하나님 나라의 잔치라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길입니다. 이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외롭고, 험난하고, 고통이 많으며, 힘든 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삶을 깊이 관조해본 이라면 깨달을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이러한 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낙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모두 한시적인 것임을 잘 알 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이러한 한시적인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세상 속에, 그리고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기쁨과 감격, 사랑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나의 모든 삶을 새로운 세계로 바꾸어 버립니다. 무감각해졌던 마음, 죄와 욕심에 가득찼던 마음, 무너졌던 마음, 잿빛 마음이 살아있고, 힘이 있고, 타인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사랑이 넘치고, 정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풀어내는 삶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어쩜 여전히 가난할지도, 힘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꺼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삶 그러한 혁명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백한 바울의 가르침으로 마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