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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1-16 (2016.12.28. 아침묵상)

category 묵상/시편 2016. 12. 28. 22:42

<말씀>

시편 73편

1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2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6    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오늘 시편은 새번역으로 올렸습니다. 개역개정판을 원하시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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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오늘 말씀의 부제는 아삽의 노래, '하나님은 선하시다.'입니다. 이 부제 속에는 '하나님은 선하신데, 세상은 왜 이렇습니까?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2.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질문은 늘 하나님을 알고, 믿는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어도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 이후에는 이러한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우리의 진지하게 질문하게 됩니다. 믿음에 비례해서 질문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은 사실 가장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3. 오히려 하나님께 질문을 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는다면, 그것이 되려 하나님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하나님을 자기 방식대로 믿고 있거나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신앙일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 절친한 친구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질문은 사랑 가운데 있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반드시 나타납니다.


4.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무신론자들이 갖는 신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과 오늘 말씀에서 나누고자 하는 하나님을 향한 질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하는 질문은 그 질문이 해결된다고 해서 그 질문자가 하나님을 곧바로 믿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질문은 자기의 불신앙을 합리화 하는데에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믿음과 믿지 않음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으며, 정직하게 보면 이 간극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변호하고 전하기 위해서 많은 질문들에 정성껏 답해야 하겠지만, 믿음은 결국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5. 오늘 시편 기자의 질문은 하나님은 선하신데, 왜 세상은 악한자들이 잘 되고 선한자들은 잘 되지 않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논리적으로는 부딪히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부재와 무능력을 선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전제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이 악하다는 현실을 붙잡고 씨름할 수 밖에 없었고, 그 탄원이 담긴 질문을 하나님께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6. 비록 기자는 깊은 고민과 고통을 담아 질문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선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시편기자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붙잠음이요, 반드시 정의를 이루시리라는 하나님에 대한 붙잡음이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믿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이 이 하나님을 향한 질문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의 질문에는 이러한 놀라운 신앙이 담겨져 있습니다.


7.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제 가치관은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면 우리가 실패할 것이라 가르치는 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온전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정말 적절한 길일까요? 적당히 타협하고 내 보험을 드는 것이 지혜로운 것은 아닐까요? 정말 곁에 있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나요? 사랑하다 배신당하고 뒷통수 맞는 것보다 눈치껏 지혜롭게 살아여 하는 것은 아닐까요?' 


8. 모든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자로서 진지하게 하나님께 질문하는 태도, 그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신앙처럼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늘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주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신뢰하는 부모님, 선생님, 벗에게 대하듯 기꺼이 솔직히 질문하고 고민하고 토로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놀라운 믿음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말씀을 곰곰히 묵상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