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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47~56 (2017.04.04.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마태복음 2017. 4. 8. 17:49

<말씀>

마태복음 26장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해치려는 세력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장면입니다. 오늘 말씀은 폭력으로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는 이들과 기꺼이 그 폭력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 곧 사랑과 구원을 이루려는 예수님이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2. 예수님을 잡으려는 자들은 여러 세력이 함께 뭉쳐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이들을 따르는 군중들, 그리고 가룟 유다였습니다. 이들은 각각 추구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추정컨대, 대제사장은 종교 권력을 유지하려 하였고, 장로들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군중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실망하였고, 예수님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 하였습니다. 


3.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들은 칼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래,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우상을 위해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해왔습니다. 수많은 신념과 수많은 탐욕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이웃을 희생제물로 삼았습니다. 이들도 그들의 우상과 예수님이 충돌하자 거침없이 흉기를 들고, 살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4. 이들을 맞이한 예수님은 차분했습니다. 오히려 평온했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폭력을 아무런 대응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네가 준비한 폭력을 행사해라. 나는 그저 그 폭력을 받아들이겠다. 희생하겠다. 죽겠다. 수용하신 것입니다.


5. 이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폭력은 불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그러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곁에 있는 제자 (요한복음에 따르면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바로 칼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베었습니다. 할 수 있는 정당방위 대응을 한 것입니다.


6. 그 때에 예수님의 대응이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대응을 당장 멈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포하십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한다. 나는 이들을 막을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이 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그 사람의 귀를 고쳐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눅 22:51)


7. 예수님은 폭력으로 다가오는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분명했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폭력은 우상숭배의 결과입니다.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막을 수는 있지만, 폭력을 일으키는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폭력을 없애기 위해선 이웃을 해치려는 마음의 근원을 바꾸어야 합니다. 곧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온몸으로 폭력을 받아내시며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 주신 것 입니다.


8. 대제사장과 장로의 모습, 군중의 모습, 그리고 가룟 유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하는  우리들입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하고, 탐욕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이들의 희생과 고통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신념과 믿음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음을 깨닫는 것이 십자가의 깨달음입니다.


9.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절망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죄보다 예수님의 용서가 크고, 우리의 연약함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대제사장과 장로들, 군중들과 유다의 폭력을 묵묵히 감당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통까지 감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는 동시에 예수님께서 이미 주신 이 은혜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10.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곧, 이땅의 불의와 죄악, 부정과 폭력과 맞부딪히는 삶입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부딪히는 삶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로, 희생과 섬김으로, 사랑으로 부딪히는 삶입니다.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어, 그 자리에 예수님이 드러나는 삶 입니다. 우리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기꺼이 이러한 십자가의 삶을 살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면서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깊이 간구하는 밤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youtu.be/rJi0wNooA2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