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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숙명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생명, 자기 존재의 뿌리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붙잡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 하고, 꿈을 얻으려 하며, 기쁨을 얻으려 합니다. 우상을 향한 갈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우리가 경쟁하고 투쟁하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우상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갑니다. 우상으로 생각하는 그것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상은 갈증을 채우려는 사람에게 주어진 소금물과 같아서 그것을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를 더 갈증나게 합니다. 반대로 거꾸로 못 채우는 경우에도 못 채운다는 갈망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우상으로 자기를 만족하려는 사람은 그것만을 채워나가다 오히려 우상 때문에 삶이 망가지거나 허무해지기도 하고, 거꾸로 그것을 추구하다 얻지 못한 사람은 우상을 얻지 못하여 낙심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우상을 우상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나에게 안정감이나 불안감을 주고, 쾌락과 갈망을 주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주는 것이 바로 우상이었음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곧 우상을 섬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상은 육체적 욕망에서부터 고상한 정신세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합니다.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고상한 모양으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우리의 우상에 매여 있고, 그 우상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직면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상은 우리를 쳇바퀴처럼 같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벗어나서 우상을 내던져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러한 우상을 포기하는 자리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우상을 숭배하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나의 모든 욕망과, 의지와 꿈이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자리입니다. 내 자아를 하나님 앞에서 죽이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나서야 비로소 부활의 영생이 우리 안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우리는 조금도 선할 수 없는 존재,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비로소 진짜 우상이 무너지는 자리, 우리가 먹었던 선악과를 뱉어내는 자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