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아들 디모데야 (2013.2.20 어머니기도회 설교)

category 주일 설교 2013. 2. 20. 14:10

아들 디모데야 (2013.2.20 어머니기도회 설교)


디모데전서 1장 18~19절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좀 더 미래를 생각하고,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현실은 좀 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이상주의자 입니까? 아니면 현실주의자 입니까? 한번 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울가요? 현실주의자에 가까운가요?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려보겠습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현실주의자에 가까워집니까? 이상주의자에 가까워집니까? 많은 사람들은 대답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점점 더 현실을 알아가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현실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점점 더 현실주의자가 되어간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능성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게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모험을 줄이게 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됩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불안한 삶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상주의가 필요할까요? 현실주의가 필요할까요? 우리아이들에게 현실주의를 강조하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자녀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안정된 길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주 확실한 길을 위해 원정출산을 가고, 영어 유치원을 어린나이부터 가르치며, 아이에게 변호사, 의사와 같이 확실한 길을 주입하고, 좋은 초등학교, 좋은 중고등학교를 철저히 보내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이러한 부모님들의 자녀는 많은 경우 현실적인 안정을 취해 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현실주의에 집중하면 현실주의의 최대 약점인 다양한 가능성을 포기하는 길이 됩니다. 스스로 모험하는 미래를 포기하는 삶을 사는 아이, 자기 삶은 개척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이상주의는 완벽한 길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는 이상주의를 무턱대고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자녀에게 가능성을 열어주고, 자녀에게 큰 이상을 심어주고자 했다가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좋은 길을 가주면 좋지만, 자녀에게 그 삶을 이상적으로 맡기기엔 너무나 큰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주의를 택하는 길은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 어머님들은 점점 현실주의자가 되어가실 것입니다. 어머님들이 이상만을 추구하시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불안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현실주의를 강요하는 것은 작은 분재를 만드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너무나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우리의 안정감을 위한 길일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우리는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어머니로서 넓은 생각과 자유로운 마음, 이상을 추구하는 시야를 주고 싶은 마음과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자녀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조금 더 현실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답은 무엇일까요? 복음입니다.


복음은 가장 혁명적인 삶의 태도이자, 동시에 가장 보수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가장 확실한 삶의 안정감이자, 가장 자유로운 꿈의 시작입니다. 가장 급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길이자, 가장 온건한 가치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가장 이상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입니다. 만약 어머니의 자녀가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 복음은 그 자녀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그 복음은 자녀를 최고의 삶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 복음은 자녀를 가장 행복하고 기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오늘 사도 바울은 그의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디모데가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니 근본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리 1장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로 모든 삶의 뿌리가 되는 그 교훈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고, 다시 말하면 나를 구하시려고 이 세상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 예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깨닫는 교훈이 바로 모든 권면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뿌리에 두고, 너를 지도한 예언에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도한 예언은 그의 사역을 부르신 소명으로 해석됩니다. 복음을 깊이 깨닫고, 그에게 맡겨진 소명을 따르되, 그것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오늘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기억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복음입니다. 바울은 그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이 복음으로 명한다 하였습니다. 이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힘이 있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 놀라운 힘이 얼마나 자녀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은 자녀들의 뿌리를 붙잡는 씨앗입니다. 


다같이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는 복음을 바탕으로 선한 싸움, 곧 사역을 하는데 있어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두 덕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덕목은 우리가 자녀교육에 있어,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복음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덕목입니다. 복음은 우리 안에 강력히 역사합니다. 그 역사는 대표적으로 믿음과 착한 양심을 바탕으로 나타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헛된 이상을 진정한 이상이 될 수 있도록, 현실이 진정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첫째 믿음은 우리의 이상이 뿌리 깊은 이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뿌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표가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완전한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어느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매여있음을 알려줍니다. 복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꿈을 내 꿈으로 끌어당기면서 놀라운 자유로움을 허락해 줍니다. 하나님 없는 이상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두려움입니다. 내가 실패한 인생이 되지는 않을까?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서리가 뿌옅게 낀 상태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걱정과 근심이 삶을 사로잡습니다. 뿌리가 없는 이상주의는 그 이상이 무너졌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쉽게 허무주의와 흔들림 속에 빠지게 됩니다.(공산주의)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모든 삶의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그 아이가 참으로 이상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지평이 확장되고, 자유로우며, 기쁨으로 삶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선량한 마음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착한 양심은 아이로 하여금 가치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착한 양심은 자기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삶속에서 참된 가치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역사속에서 존귀하고 위대한 일들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착한 양심에서 비롯됩니다. 착한  가치에서 비롯됩니다. 착한  가치는 진흙 속에 들어가 있는 진주와 같습니다.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착한 가치는 시간이 지나 진흙이 벗겨지면 반드시 영롱하게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착한  양심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안에 가장 귀한 가치를 품게 됩니다. 모든 위대한 학자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발명가들은 인간이 어떠한 삶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깊은 안목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음식점 주인들은 사람이 어떠한 것에 행복하는 가에 정확한 안목이 있습니다.(보리차) 착한  양심은 가장 현실적인 시선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 돈 천만원을 어느 펀드에 넣어야 불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녀가 아니라, 이 돈 천만원을 내 삶의 어느 부분에 채워야 내가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녀를 키워야 합니다. 복음은 이 착한  가치, 착한  양심의 뿌리를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눈앞에 현실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인 이상주의로 자녀를 풀어놓는 일이 너무나 허다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 갖혀 자신을 펼쳐보지도 못하거나, 혹은 방임에 빠져서 스스로를 망치는 지도 모르는 채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오가며,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복음은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입니다. 모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희망의 선포사건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린다면, 우리 아이들은 놀랍게 위대한 하나님의 일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들을 해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