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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믿음 사이 (2020.12.27.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4:1~12)

 

마태복음 14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2020, 참 다사다난 했던 한해가 마침내 저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시기를 지금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우리 주님께서 모든 순간, 모든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 모든 삶을 책임져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놀랍게도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사건을 미화하거나, 현실을 동화처럼 꾸미지 많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별히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현실, 그 가운데에서 고통 받는 연약한 자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지, 때때로 그 말씀을 보며 우리의 마음이 불편해지기까지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3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감추인 보물의 비유, 진주의 비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비유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 그 풍성함,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것들과 여전히 존재하는 악의 현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맞아들이는데 들여야 할 희생과 헌신에 관하여서도 주님은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선포는 현실 속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가장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은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입견과 경험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의 선포에 자세히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마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돌밭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거절당하고 있는 지를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결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인물이 없다고 선포하실 정도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를 선포하였고,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으며,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요한이 오늘 말씀에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1112절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공격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악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승리한 것과 같은 일이 오늘 말씀에서 그대로 펼쳐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갈릴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헤롯왕을 비판하였습니다. 헤롯왕이 자기의 원래 아내를 버리고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왕은 요한은 헤롯에게 이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직접 선포하였습니다. 헤롯은 자기에게 모욕감을 느끼고 요한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섣불리 죽일 수 없었습니다. 마가복음은 헤롯이 다른 한편의 마음으로 요한을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어서 그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헤롯은 요한을 당장은 섣불리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었는데, 그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헤로디아의 딸이 나와서 손님들 한 가운데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에게 맹세하며 내가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 약속하였습니다. 그때에 헤로디아가 딸에게 은밀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곧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달라는 소원을 말하라 시킨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의 소원을 들은 헤롯왕은 당황하며 근심하였으나 이미 왕으로서 꺼낸 말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허세와 헤로디아의 교활함이 합쳐져 세례 요한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왕은 사람들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었고,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헤로디아의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 머리는 결국 헤로디아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가서 그의 시체를 받아서 장사를 드렸고,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도 이 소식을 전해 드렸습니다.

 

이 사건을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명백하게 불의가 정의를 이긴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일은 참으로 현실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이러한 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의를 따라가고, 자기의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고, 교활한 생각과 악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승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보는 현실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충격적이지만, 현실적이고, 놀랍지만, 평범한 일이 오늘 말씀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나라가 불의한 악의 권세에 무너져 버린것과 같은 일이 오늘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선포합니다. 모든 것은 진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잠시 잠깐 악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악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말씀이 선포하는 진리요,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놀랍게도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그저 세례 요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우리 예수님의 역사하심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14~15절 말씀입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세례 요한이 헤롯 왕에게 사로잡혀 갔을 때,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불의가 등장하는 그 순간, 죽음이 하나님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그 순간, 동시에 우리 예수님께서도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헤롯왕은 요한을 잡으면 모든 일이 끝날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요한을 죽이면 모든 일이 잠잠해질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그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악한 권세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을 살았던 요한을 해치우면 하나님 나라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잡혔을 때, 우리 예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대신하여 세례 요한의 일들을 완성하시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갖혀 있게 되자 세례 요한 또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가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는 어찌 되는 것인가, 정말 악이 승리하고, 불의가 결국 옳았다고 자기를 증명하며, 하나님의 뜻은 이대로 실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근심에 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2~5절 말씀입니다.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요한에게 분명히 전하였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곳곳에서 선포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요, 요한의 죽음이 정의의 죽음이 아님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빠르게 확장되고 있고, 하나님의 정의는 온전히 회복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4절의 말씀처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세례 요한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귀한 밀알이 되었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반드시 풍성한 열매로 맺으시리라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모든 악한 권세와 싸우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운명을 맞이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도 모든 불의하고 죄악된 권세에 희생당하셨습니다.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사람들, 정치 권력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허락했던 사람들, 자기의 욕심과 바람을 추구하며 살다가 그것과 맞지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을 버리는 것을 쉽게 생각했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자기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던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연약함과 죄악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놀랍게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인 동시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 모든 사람의 부활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비참한 죽음인 것처럼 보였으나,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부활하게 될 영광에 참여한 일이 된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고, 나아가 그의 죽음은 영생의 길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불의와 부조리가 존재하며, 그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좌절하고 심지어 손해를 보고 죽는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이러한 현실을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말씀은 동시에 우리에게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일하기 시작할 때, 우리 주님께서 더불어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다가 옥에 잡히고, 핍박을 당하고, 낙심하고 쓰러질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심지어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일을 대신하여 완성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일한다면, 그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시오, 온 세상의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잠시잠깐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너지는 것처럼 모이고, 망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주님의 것이기에 우리는 주님의 승리를 보증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묵묵히 오늘도 주님의 뜻을 구하며 하루하루를 용기있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잠시 역사를 살펴보면, 헤롯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버렸던 아내의 아버지의 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습니다. 헤로데아는 계속해서 그 교활한 계획으로 자기의 오빠를 공격하려다가 발각되어 헤롯과 함께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 악의 길로 가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2000년이 지나도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헤롯과 헤로데아는 심판대 앞에 설것이요, 세례 요한은 주님과 더불어 부활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영광안에 거할 것입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봅시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는 늘 질문을 받았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다 자기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닌가? 못된 사람들, 악한 사람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이어지는가? 말씀은 우리에게 응답합니다. 우리의 상황과 현실만을 바라볼 때에는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 예수님께 주목하고, 우리 예수님을 신뢰하고, 우리 예수님과 더불어 승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