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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2021.04.24.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0:1~16)

 

마태복음 20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자들이 와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자들이 와서 받을 알았더니 그들도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사람들은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중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뜻이니라

15   것을 가지고 뜻대로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 되리라

 

간에 화제가 되었던 말이 있습니다.

 

고픈건 참아도 아픈건 못참는다.”

 

혹시 이러한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배고픈 참아도 아픈건 참는다. 배고프다는 것은 말그대로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고, 아프다는 것은 질투심이 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고통받는 것은 참을 있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만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 것은 참을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힘든 견뎌낼 있어도, 억울한 것은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말에 어느정도 동의가 되십니까?

 

오늘 말씀은 이러한 상황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비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이렇게 비유할 있습니다. 어떤 포도 농장 주인이 자기 포도 농장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 일찍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하루 품삯을 벌기 위해 일을 기다리는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포도 농장 주인은 그들과 하루 품삯을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 농장으로 들여보냈습니다. 포도 농장 주인은 아침 아홉시 즈음에 다시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름아침에 미처 일을 구하지 못한 일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아 있었습니다. 농장 주인은 그들을 보고 당신들도 포도 농장에 가서 일하십시오. 그러면 한만큼 적당한 품삯을 주겠습니다 하며  자기 농장으로 들여 보냈습니다. 농장 주인은 이후에 열두시에 가서 남아있는 일꾼들을 고용하였고, 오후 세시쯤에도 나가서 그때까지 일을 구한 일꾼들을 고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농장 주인은 오후 다섯시에도 다시 인력시장에도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농장 주인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하는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자 농장 주인은 일꾼들에게 지금이라도 농장에 가서 일을 시작하라 제안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이 끝나기 시간 전에 와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저녁 여섯시즈음이 되어 날이 저물었습니다. 포도 농장의 주인은 농장의 관리인들에게 이제 그만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나누어 주라 명령하였습니다. 가장 나중에 일을 시작한 사람부터 처음에 사람 순으로 품삯을 나누어 주라 명령하였습니다.

 

포도 관리인은 농장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다섯시부터 일한 사람에게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고작 1시간 일했는데, 하루 품삯 전체를 것입니다. 모습을 다른 일꾼들은 내심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넉넉한 사람이구나. 고작 1시간 일했는데도 하루 품삯을 주는 것을 보니, 우리는 많이 받겠구나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후 3시부터 일한 사람도 데나리온, 오후 12시부터 일한 사람도 데나리온, 아침 9시부터 일한 사람도 데나리온,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도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배고픈 참아도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주인과 데나리온으로 계약하긴 했지만, 고작 1시간 일한 사람도 똑같이 데나리온을 받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공산주의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매번 반복된다면 누구도 이른 아침부터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저녁 다섯시에 일을 시작하려고 것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했던 일꾼들은 농장 주인에게 따지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온종일 더위를 참아가며 고생하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막판에 와서 고작 한시간 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우리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매우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그들은 강하게 원망하였습니다. 그때 포도 농장 주인이 직접 그들 중에 사람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 품삯을 데나리온으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가지도 돌아가십시오.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주는 것과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은 마음입니다. 돈을 내가 주는 것인데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당신들 눈에 거슬린단 말입니까? 이것이 악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고, 이와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16 말씀입니다.

 

16   이와 같이 나중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성도 여러분, 오늘 비유를 들으시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충분히 동의가 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일터에서 이처럼 일하였는 , 고용주가 이와 같이 대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충성하고 헌신하고 주님을 열심히 섬겼던 반면, 어떤 사람은 교회를 나오지도 않고 섬김과 봉사도 하지 않았는 만일 사람 모두 똑같은 직분을 받고 사람들에게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면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말로는 괜찮다 하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20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마음이나 지금의 마음이나 사람의 마음은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어쩌면 우리의 본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참기 힘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실, 우리에게 이러한 불편한 마음을 주시기 위해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천국 비유를 선포하셨을까요? 주님은 비유를 통해 천국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을 뒤집는 것이라 선포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은 모든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수고한 , 내가 애쓴 , 내가 주고 있는 , 내가 마음쓰고 있는 , 나로부터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에게 이만큼 해줬는데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해줄 수가 있지?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만큼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사람은 나를 어떻게 이렇게 대할 있지? 이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일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헌신하였는데, 이렇게 수고하였는데, 이렇게 드렸는데, 이러면서 우리는 나를 기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를 기준으로 판단할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 많이 드리고, 많이 헌신하고, 많이 수고한다고 느낄 때엔 교만해집니다. 내가 사람보다는 많이 헌신하고 있고, 내가 사람보다는 수고하고 있으니, 내가 하나님과 가까울 거야, 신앙이 좋고, 내가 복을 많이 받을 거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내가 하나님께 소홀해지고, 헌신이 부족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느낄 때엔 거꾸로 신앙적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으실거야. 이제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거두어 가실 거야. 나는 이제 하나님께 벌을 받을 거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의 모든 시선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를 일꾼의 시선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12시간 일했어, 나는 9시간 일했어, 나는 6시간 일했어, 나는 3시간 일했어, 나는 1시간 일했어. 그날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능력에 따라 바뀌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 포도 농장 주인의 시선으로보면 이렇습니다. 그가 어떠한 상황과 형편이든, 그가 얼마나 일하였든, 그가 오늘 하루의 먹고 마실 것을 해결할 있도록, 그가 살아갈 있도록 1데나리온을 주겠다. 농장 주인에게 있어 1 데나리오는 보상이 아니라 사랑의 선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실 경제 논리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천국이란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를 깨닫는 것이라는 , 그것에 우리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기준으로 하나님과의 우리 사이의 관계를 판단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준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며 일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도저히 주님을 위한 힘이 나지 않아 고작 하루 한시간 주님을 기억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여 모든 삶이 복으로 가득차 있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모든 것이 막힌 같고, 모든 것이 내몰린 같은 , 세상의 모든 모욕과 수치가 나를 덮어버린 같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가득차 있어 힘으로 가득찬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슬픔과 우울함과 분노로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린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은혜는 매일 매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데나리온을 움켜 쥐어 주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먹을 빵과 음식을 사라. 오늘 입을 옷을 입어라. 오늘 하루도 내가 책임져 주겠다. 오늘도 은혜로 너를 덮어주겠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로 바뀌면, 우리는 스스로 교만할 것도 없고, 절망할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엄격한 율법과 규례를 지키고, 그들의 종교적 질서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종교생활을 통해 자기들을 다른 이들과 구분하였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거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였고, 판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은 받아주시고, 자기들과 같이 살지 않는 이들은 받아주지시 않을 것이라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이들의 이러한 위선과 외식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부정한 자들과 이방인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이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실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때는 어느 순간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를 너무나도 아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변함없이 동일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5시에 일하러 와서 1시간만 일하고 1데나리온을 받아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이, 구원이 바로 주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부족하고, 자격을 갖추기 못했고, 연약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우리를 불러주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먼저 주시는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자격 조건을 갖추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우리의 삶에, 생명에 필요하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부터 일했던 일꾼들에게 원했던 마음도 사실은 이러한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받아서 아침부터 일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하루종일 일을 구하지 못하고 애타하며 일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하루 먹을 양식을 얻을 없고,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오늘 그들에게 닥친 불행이 내일 여러분에게 닥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습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품어주는 마음, 먼저 사랑해주는 마음,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그가 조건을 갖추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기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또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에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그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기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먼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사람,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복이 되는 사람이요, 사람이 어둠 가운데 빛이 되는 사람이며, 사람이 바로 작은 예수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가장 먼저, 자기안에 주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깨닫게 것이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듯,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듯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나아가 신실한 주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그렇게 대합시다. 그렇게 대할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이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깨닫게 것이요, 그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속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하나님 나라가 것이요, 우리는 복의 근원이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의 삶을 사는 우리 모든 성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