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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1-9 (2017.02.17.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마태복음 2017. 2. 23. 15:22

<말씀>

마태복음 15장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나눔>

1. 율법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2. 그러나 예수님께서 살던 시기의 유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점을 망각하고 율법 그 자체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정작 중요한 ‘사랑’은 하지 않았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 보면,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으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다만 출애굽기 30장에 보면 성전에서 제사장이 일을 할 때에 손과 발을 씻으라는 구절이 있는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를 모든 생활에 적용하였습니다. 당시 시대에 밥먹기 전 손을 씻는 것은 오늘날 밥을 먹을 때 기도하는 것처럼 일종의 정결을 위한 중요한 종교의식이 되었습니다.


4.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지키지 않는 제자들의 신앙을 의심했고, 이 부분을 지적하며 질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하심으로 대화의 프레임을 바꾸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프레임에서 질문을 하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그 논의를 바꾼 것입니다.


5. 이러한 예수님의 방식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의 법칙과 규칙이 명확하게 정해졌을 때, 오히려 우리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규칙이 확고하다면 큰 생각과 고민 없이 그저 그것을 애써서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기에 많은 종교들이(예를 들면 근본주의 이슬람, 중세 카톨릭, 조선 시대 성리학 등) 자연스럽게 율법종교화, 교조화 되곤 합니다. 


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어떠한 것을 할 때에 우리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 왜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늘 질문하는 것이라 말씀해주십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살아있는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살아있는 나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존재와의 관계는 모든 순간이 새로운 순간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순간을 새롭게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순간마다 여전히 우리가 지키는 규칙이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재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7. 예를 들어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우리는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꽃을 선물합니다. 그러나 꽃을 선물하는 것 그 자체가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어느 날은 꽃 대신 위로가 필요할 수 있고, 꽃 대신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꽃을 주는 것이지, 꽃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정작 마음을 전하지 못하면서, 꽃만을 열심히 가져다주며 잘 사랑하고 있다고 안심하는 것은 오히려 사랑에 해가 됩니다. 늘 왜 꽃을 주어야 하는가(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길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법을 지키면서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랑하기 위해 법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8.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이것을 놓쳤습니다. 예수님께선 정확히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지점을 질문하셨습니다. “그렇게 법을 잘 지키는 너희들의 진짜 모습을 보아라. 많은 율법주의자들이 부모를 모시고 섬기기 위해 해드려야 할 것을 주지 않으려고 율법을 영악하게 이용하고 있지 않느냐? 그들은 ‘우리가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이미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말하면서 하나님 핑계를 대며 마땅히 부모님께 드려야 할 봉양은 하지 않고 있다. 율법에서는 오히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고, 부모를 비방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야기하는 데, 이들은 이러한 핵심 가르침을 외면한 것이 아니냐?” 예수님께서는 정작 사랑의 마음은 모조리 잃어버린 채 율법 형식만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정확히 지적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러한 상황을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9.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도전을 줍니다. 주일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것, 아침마다 큐티하는 것, 헌금을 드리는 것,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 고운 말 쓰는 것, 여타 우리가 생각하는 바른 신앙생활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이루어갈 때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왜 이러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누리며, 정작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은 도외시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 이기적이다 비판받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신앙생활, 신앙생활과 사랑의 분리,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진정으로 사랑 안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10. https://www.youtube.com/watch?v=LqJi_lugU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