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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2:1~10 (2017.06.22.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사무엘상 2017. 7. 25. 17:24

오늘의 말씀 요약 

사랑은 같은 입장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입장이 되어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가난하고 헐벗고 애통하고 억울해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 사랑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사도행전 22장

1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아둘람 굴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자 형들과 온 집안이 그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다. 

2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3    다윗은 거기에서 모압의 미스바로 가서 모압 왕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실 때까지, 나의 부모가 이 곳으로 들어와 임금님과 함께 머물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였다. 다윗이 산성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다윗의 부모는 모압 왕과 함께 살았다. 

5    그 때에 갓이라는 예언자가 다윗에게, 그 산성에 머물러 있지 말고 어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그 곳을 떠나서, 헤렛 숲으로 들어갔다.

6    하루는 사울이 기브아 산등성이의 에셀 나무 아래에서 창을 들고 앉아 있었다. 그의 신하들은 모두 그의 곁에 둘러 서 있었다. 거기에서 사울은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7    사울이 둘러 서 있는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 베냐민 사람들아, 똑똑히 들어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 모두에게 밭과 포도원을 나누어 주고, 너희를 모두 천부장이나 백부장으로 삼을 줄 아느냐? 

8    그래서 너희가 모두 나를 뒤엎으려고 음모를 꾸몄더냐?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을 때에도, 그것을 나에게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 또 내 아들이 오늘 나의 신하 하나를 부추겨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시켰는데도, 너희들 가운데는 나를 염려하여 그것을 나에게 미리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

9    바로 그 때에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 끼여 있던 에돔 사람 도엑이 나서서 보고하였다. "제가 이새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놉으로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과 만날 때였습니다. 

10    그 때에 아히멜렉이, 다윗이 해야 할 일을 주님께 여쭈어 보고 나서, 그에게 먹을 것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 


<나눔>

1. 오늘 말씀 또한 다윗과 사울의 모습이 뚜렷이 비교되는 말씀입니다.  


2.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그는 거할 처소도 마땅치 않았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늘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가족조차도 위험에 빠져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다가는 가족들이 언제 사울 왕에게 해코지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방 나라 모압에 가서 그 왕에게 가족을 거두어 줄 것을 간청해야만 했습니다.


3. 이러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다윗의 상황을 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윗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정치적 압제를 받아 환란을 겪는 사람들, 가난하여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들에게 친구이자 의지처가 되어 주었고 이들의 왕이 되어 주었습니다.


4.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故 신영복 선생의 말입니다. 다윗은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 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5. 반면 다윗을 쫓는 사울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울은 이미 국가의 왕으로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으로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실제 그는 자신과 같은 지파인 베냐민 사람들로 고위직을 채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신하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을 죽이지 못한 분노로 신하들을 의심하고 다그쳤습니다.


6. 사울은 신하들에게 호통쳤습니다.  "이 베냐민 녀석들아, 내 말을 들어봐라. 네놈들이 이새의 아들한테 밭이나 포도원이라도 받을 성싶으냐, 아니면 그가 너희들을 천인대장이나 백인대장이라도 시켜줄 듯싶으냐? 모두들 한 통속이 되어 나를 뒤엎기라도 할 작정이냐? 너희 중엔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놈과 결탁한 것을 알고도 나를 위해서 귀띔해 주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아들놈이 내 신하를 충동하여 지금 반기를 들고 잠복하고 있는데도 귀띔해 주는 놈이 하나도 없다."(공동번역) 


7. 사울의 이 다그침에는 그의 분노와 열등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음 하나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나 다른 이들의 입장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들조차도 품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감정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우리의 가장 큰 죄이며 사랑과 가장 멀리 있는 것입니다.


8. 다윗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과는 반대로 사울에게는 사람들도 떠나고 하나님도 떠났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울이 사람들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약한 자, 소외된 자, 아픈 자들이 회복되고 생명을 얻게 되었다면, 사울을 통해서는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고 생명을 잃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았고,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였던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9.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치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상황과 처지, 우리의 능력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가에 개의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윗은 더 낮은 자리, 비참한 자리,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드러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높아진 자리에서 낮은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들과 함께 낮아져서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사울과 같이 죄의 길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10.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의 모범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길로 가셔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놀라운 비밀을 알아 예수님 따라가는 그리스도인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2-Uv2Ayu2bM (흠없는 경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