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떠나는 항해 (2020.07.19.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8장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잠시 지난 주 말씀을 복습해보겠습니다. 지난주에 두 사람이 각각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서기관, 한 사람은 제자였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 따라 가겠다 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하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한 제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에게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가장 긴급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는 다릅니다. 무리는 예수님이 필요해서 따라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제자는 이처럼 예수님의 뜻을 이루고자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 말씀과 이어진 말씀입니다. 오늘의 항해는 무리를 피하여 제자들과 함께 떠나신 항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항해는 이제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의 여정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말씀은 한절씩 살펴 보겠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 배에 먼저 오르셨습니다. 이 여정은 무리를 떠나 제자들을 세우시기 위한 여정이요, 갈릴리 호수를 건너 이방 지역으로 떠나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함께 나가게 되면, 이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운명 공동체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를 의지하여 함께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벤허 영화의 고증 오류) 그리스, 로마 시대에 노를 젓는 사람들은 노예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공동체의식이 있어야만 바다에서 한 마음이 될 수 있고, 그래야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모두 헤치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게 됩니다. 폭풍우를 만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바람이 불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갈증을 버텨내야 하기도 하고, 추운 날씨 속에서 추위를 견뎌내야 하기도 합니다. 항해가 잘 될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이기기 위해 모두가 애쓰고 수고해야 합니다. 이처럼 함께 배를 탄다는 것은 한 마음, 한 공동체가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무리가 아니라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예수님과 함께 항해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걸어간다는 것은 모든 어려움을 함께 견뎌내며 끝까지 함께 항해를 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는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모든 제자들이 한 마음, 한 공동체, 나아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음으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땅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항해의 첫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 – 이와 같이 주님과 항해하는 것, 삶의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함께 걸어가는 것,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것)
계속해서 2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항해가 얼마 시작되지 않아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바다는 사실 호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 호수는 분지에 위치하여 때때로 큰 바람이 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어부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시기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항해하고 있던 밤시간에는 보통 이와 같은 바람이 불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안심하고 항해를 출발했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바람은 어부출신들이었던 제자들도 감당할 수 없는 큰 바람이었습니다. 말씀은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열대엿명 타고가는 배가 물에 잠겨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 항해가 우리의 한 사람의 운명, 우리 공동체의 운명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진짜 큰 위기는 우리가 잘 아는 분야에서,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잘못될 리 없어, 분명해, 안전해 이렇게 생각했던 것에서부터 우리의 인생이 가라앉을 위기가 시작될 수 있음을 말씀은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것입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 내가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진 않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배워가면서 서서히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주 잘 아는 분야, 내가 굳게 믿고 있었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만큼 오히려 절망도 빠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자들도 이러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 길이 주님께서 먼저가실 길이요, 주님을 따라온 길인데, 가장 큰 위기의 순간 주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평소에 바람이 불지 않던 밤바다에서 큰 놀이 일어난 것만큼. 주님이 주무시는 것에도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선생님이시라면 가장 먼저 깨어서 제자들을 독려하고, 함께 힘을 합쳐서 물을 퍼내고, 힘을 내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이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왜 주무시고 계시는 것일까? 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마음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 우리의 인생길에도 이러한 마음이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위기가 닥쳤는데도 하나님께서 도무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 따라서 이 길을 선택하고, 예수님 믿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데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점점 더 쌓여갑니까? 내 힘과 내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이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절망뿐인데 왜 주님께서는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쏟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많은 시간들이 바로 24절 말씀 안에 들어있는 시간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왜 주무시고 계실까요? 쉽게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우리 주님은 피곤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느라 온 기력을 다 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깊은 잠에 빠져 계셨습니다. 주님은 선택과 집중을 분명히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주님께서 일하실 때가 되면 분명히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둘째로 주님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평안함을 누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폭풍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폭풍 속에서도 담대할 것을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 폭풍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폭풍 속에서도 평안함을 유지하고, 폭풍 속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것은 너희가 타고 있는 그 배에 나, 곧 예수님께서 함께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평안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제 25절, 26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은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말씀하였습니다.
‘주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제자들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폭풍우를 헤쳐나가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물이 배위에 넘쳐나게 되고, 배가 뒤집어질 위기에 처하자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부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주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 고백은 예수님의 기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신적 권위에 의지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항해하며, 붙잡을 수 있는 최후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음을 이 순간에 말씀은 보여줍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해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 예수님 뿐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꾸짖은 것은 ‘무서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신뢰하지 못함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큰 병을 만나도, 신뢰할 만한 의사의 신뢰할 만한 말을 들으면 두려움과 불안이 용기로 바뀝니다.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신뢰할만한 장치가 있으면 두려움과 불안이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을 받고 있어도 그 고난이 귀한 열매로 맺어진다는 것을 확인받으면 두려움과 불안이 열정으로 바뀝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은 폭풍우가 거칠고 배가 뒤집어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길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상황과 형편에 관한 문제를 믿음의 문제로 바꾸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때때로 폭풍우를 만나는 길이 될 수 있고, 심지어 배가 뒤집어져서 모두가 함께 망하는 길이 될 수도 있어도 너희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이다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는 결코 생명을 잃지 않고, 결코 망하지 않고, 결코 실패하지 않음을 말씀은 선포합니다. 오히려 주님과 함께 한다면 그 길은 가장 큰 영광의 길이요, 영원한 생명의 길이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길임을 말씀은 선포합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붙들고 계시며,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뢰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바울은 로마서 14장 7~9절에서 보여줍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는 것, 그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과 함께한다면 평안한 바다와 폭풍치는 바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삶과 죽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서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기를 주님께서는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에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시편 106편 9절을 보면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을 표현할 때 바다를 꾸짖으신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길을 막아선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주님의 권세와 능력의 무한함에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천지를 지으시고 온세상을 구원하시며 만물을 온전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 말씀 27절에서 이와같은 놀라운 일들을 본 제자들의 고백을 보여줍니다.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제자들은 놀랍게 여기며 고백하였습니다. ‘이 분께서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이제야 제자들은 새삼스럽게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다시 궁금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결국 폭풍에서부터 주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일임을 주님께서는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 속에서 우리는 결국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닫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아는 것이요, 주님이 우리 항해의 목적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폭풍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시선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삶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대한 두려움, 주님을 따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러한 믿음의 여정은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대로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신뢰로 바뀌어 갑니다. 최종적으로는 우리 주님을 아는 것으로 열매맺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다면, 세상은 우리를 보면서 똑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경험했던 것처럼 모두 폭풍 속에서 험난한 항해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으며,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알 수 없는 평강을 보여줍니다. 폭풍을 꾸짖으며 세상을 사랑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주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참된 소망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굳게 신뢰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이들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세상 가운데에서 들으며 주님 드러내는 삶을 사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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