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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바울처럼 (2021.04.02. 금요기도회 설교. 갈라디아서 4:12~20)

 

갈라디아서 4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신 금요일입니다. 교회 전통에선 주님이 죽으신 금요일 저녁부터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아침까지 깊이 침묵하며, 우리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 주님의 고난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무엇보다 고난에 담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껏 우리가 함께 나누었듯이 갈라디아서 말씀은 복음을 떠나 잘못된 가르침에 빠진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서 교회는 바울이 전도여행때 세운 바울의 자녀와 같은 교회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사랑과 헌신으로 교회를 세웠는지를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나고 뒤에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쳤던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찾아왔고, 안타깝게도 갈라디아 교회는 그들에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가르침, 올바른 복음을 떠났을 아니라 바울을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잃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오길 원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우선적으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자신과 관계를 회복하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 바울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목회자와의 관계는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양육하고 있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자연스럽게 말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장애물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귀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여전히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지만, 무너진 관계가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이나 거짓 교사들이 가장 먼저 목회자와 성도의 신뢰관계를 흔드는 것도 그것으로 사람의 신앙을 바로 흔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회자가 자기가 맡은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실수와 부족함이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목회자가 행여나 죄를 범하게 되면, 교회 공동체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이것을 알고, 끊임없이 사이를 이간질하고, 특별히 목회자를 무너뜨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굳건한 신뢰와 섬김이 교회 공동체를 굳게 세우고 자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거짓 교사들은 이것을 알았기에 단순히 바울의 가르침만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바울 자체를 공격하였습니다. 바울은 진정한 사도가 아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말씀을 무시한 가르침이다. 바울은 교회를 공격했던 사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다. 이들은 이처럼 계속해서 바울을 공격하고, 바울을 향한 갈라디아 교회의 신뢰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 그들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마음을 돌이기키 위해 바울이 처음 전도를 시작한 때를 떠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2~15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멀리 떨어져서 도와주고 챙겨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진짜 귀한 사랑은 같은 입장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힘든 길을 걸어가고, 같이 성장하는 ,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같이 함께하는 것만큼 귀한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감격적인 것은 주님께서 이처럼 우리와 같은 입장이 되어 주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4 15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삶의 어려움을 느끼셨기 때문에, 우리의 아픔을 누구보다 아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우리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셔서 낮추셔서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저 하늘에서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우리를 동감하시며 우리를 사랑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사랑은 이처럼 같은 입장이 되어 주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주었던 사랑이 바로 이러한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주었던 사랑이 바로 이러한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처럼 행세하며 여러분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의 모습으로 여러분께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 예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 그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을 기억하시고, 여러분도 저와 같이 예수님의 사랑에 집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제가 그렇게 다가갔을 기꺼이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처음 만났을 때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처음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때에 몸이 몹시 아파서 갈라디아 지역에 머무를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덕분에 여러분께 복음을 전할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진 병이 민망한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저를 업신여기지도 않고, 저를 무시하지도 않고, 저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음에 감격했기 때문이며, 여러분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여러분은 저에게 눈이라도 빼어서 기세였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저를 깊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이처럼 회상하였습니다. 이때가 바로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시절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사로잡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역하였습니다. 심지어 중에서 갈라디아 교회를 섬겼고,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들과 함께 하였으며, 전심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사로잡혀 바울은 마음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병에 걸린 사람들을 낮추어보고,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바울을 지극히 섬겨 주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사랑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 우리 예수님의 은혜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랑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 복음의 말씀에 깊이 잠겨 있을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랑했던 관계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에서 떠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이 복음을 떠났을 , 냉담함이 복음을 원래부터 몰랐던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느낍니다. 신천지나 기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교회를 적대하고, 목회자나 성도를 적대하는 마음이 원래부터 신앙이 없었던 사람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은혜로 채워졌던 마음 안에 냉담함이 가득 채워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이러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태도에 바울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16 말씀입니다.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바울은 탄식합니다. 이처럼 귀한 관계였던 우리가 어떻게 원수 사이가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옳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바울은 이토록 멀어져버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어지는 17 18절을 통해 이와 같은 상황 속에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이간질이 있음을 폭로하였습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바울을 선포합니다. 여러분, 거짓 교사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저와 여러분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나아가 자신들에게만 충성하고 따르도록 하게 입니다. 누군가가 좋은 일을 위하여 열심히 섬겨준다면 그것은 좋은 것일 것입니다. 만일 제가 아니라 누가 와서 그렇게 하여도 그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는 좋은 목적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그것을 분별하셔야만 합니다. 바울은 거짓 호의에 넘어간 갈라디아 교회에게 참된 지혜를 가질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신천지, 그렇게 잘해주기 때문에  빠져나오기 어려운 )

 

끝으로 바울은 자신의 수고가 거짓 교사들의 수고와 어떻게 다른지를 선포하였습니다. 19, 20 말씀입니다.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바울은 자신의 수고의 목적을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토록 수고하고 애쓴 것은 어떤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예수님 닮아갈 있도록, 예수님과 함께 있도록,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게 위함이라고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참된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섬김과 사랑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다고 선포합니다. 해산이란 목숨을 맞바꾸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습니다. 자기 뼈를 내주고, 관절을 내어주고, 피부를 내어주고, 젖을 내어주고, 삶의 시간들을 내어줍니다. 심지어 죽음을 각오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고자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그렇기에 자기가 언성을 높이며 깨닫고 돌아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목회가 무엇인지, 나아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마치 삯군이 돈을 위해 양을 치듯, 그렇게 갈라디아 교회를 섬긴 것입니다. 그것은 이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세상의 방식입니다. 결과 성도들은 복음에서 멀어지고, 참된 목자에게서 떠났으며, 참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냉담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도를 위해,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위해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같은 입장이 되었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심지어 해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것을 완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전한 것입니다. 결과 그들은 헤아릴 없는 은혜와 사랑을 경험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것입니다.

 

바울의 모습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에 헤아릴 없는 영광을 허락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참된 은혜와 사랑이 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여, 놀라운 은혜를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주님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처럼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나아갈 , 주님은 오직 주님을 믿는 자만이 누리게 되는 참된 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