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은혜를 바라보는 믿음 (2021.03.12. 금요기도회 설교. 갈라디아서 3:1~14)

 

갈라디아서 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말씀은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마음을 다해 복음으로 세운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떠나고 난 뒤에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거짓 선교사들들이 찾아와서 바울이 가르친 복음과는 다른 잘못된 가르침을 전한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율법과 규례와 절기를 따르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구약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하였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할례를 받게 되면 유대인들의 비난과 정죄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로부터 이상한 종교라는 눈초리를 받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종교문화를 존중해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게 되면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인들의 종교로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의 박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보호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적극적으로 할례를 받을 것을 가르치고 다닌 것입니다. 이들은 할례가 필요없다고 주장한 바울의 가르침은 말씀을 거스르고 현실에 타협한 가르침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저 이방인들이 쉽게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율법과 규례를 무시한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짓 선교사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비방했을 뿐 아니라,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가르친 복음을 송두리째 뽑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들의 가르침에 이미 넘어가 버린 갈라디아 교회를 보며 큰 비탄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돌이키게 하려고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 곧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복음의 가르침이 왜 옳은지를 격정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주변에는 이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은 거의 없지만, 바울의 반박과 가르침은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역사 가운데 이어져 내려와 복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선포되는 말씀도 이처럼 우리에게 다시한번 복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복음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설득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사도됨과 자신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인증하였습니다. 바울은 12장 말씀을 통해 자신이 그저 사람의 생각이나 부르심으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리고 이러한 부르심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로부터 직접 인증을 받은 부르심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은 자기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확증을 받은 가르침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의심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정통성을 확실하게 보여준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히려 갈라디아 교회가 새롭게 받아들인 복음이야말로 거짓 복음이며,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3~4장 말씀을 통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복음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설명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1~5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눈으로 따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바울은 애통한 마음으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외쳤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 여러분 왜 이렇게 어리석습니까? 왜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얻고서, 헛된 가르침에 마음을 빼앗기셨습니까? 왜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넘어갔습니까?

 

바울은 이어서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를 상기시켰습니다.

 

여러분 처음 여러분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율법의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아니면 성령님이 주시는 믿음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교회에 열심히 다녀서 그리스도인이 된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믿음 생겨서 그리스도인이 된것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우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용서의 은혜를 깨닫게 하셨고, 그 믿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이 믿음을 붙들지 아니하고, 다시 율법과 규례를 바라봅니까? 왜 이렇게 어리석습니까? 여러분은 성령의 힘, 성령의 은혜로 시작한 이 믿음의 여정을 지금 와서 인간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려고 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십시오. 그 수많은 체험과 경험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제껏 우리에게 베푸신 성령님의 그 수많은 역사를 다 허사로 돌리실 것입니까? 여러분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절기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을 때에도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님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여러분 본질을 붙드십시오.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신앙 생활은 인간이 만든 규례와 형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선포는 우리의 믿음의 핵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를 열심히 나온다고 해서, 헌금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또 봉사를 열심히 하고, 직분을 얻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감동케 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회개케 하시며,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믿음은 우리가 갖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겸손하에 그 믿음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그 믿음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마저도 자랑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우리의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성령님의 은혜 외에 우리가 해야 할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성령님을 모욕하는 것이요, 우리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시선을 사람의 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얻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선포하였습니다. 6~9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말씀은 아브라힘에 하나님을 믿었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 그 은혜와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저 이스라엘 민족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온 열방의 사람들에 임하였습니다. 누군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사람,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할례보다 크고, 하나님의 사랑이 율법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그 은혜와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할례와 율법과 규례와 절기가 필요한 조건이 되지 않음을 바울은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선물로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과 구원과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그저 선물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 삼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 복음을 분명히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10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신명기 2726절 말씀은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거짓 교사들은 율법에 나와있는 할례를 받지 않고, 규례를 지키기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을 거꾸로 이용하였습니다. 누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사랑과 용서만이 우리를 저주로부터 구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고,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값없이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령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믿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소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자로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가장 비참한 죽음과 저주를 감당하심으로 우리에게 가장 값진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조건도 없이, 어떤 의무도 없이, 우리를 그저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그것을 진실로 믿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요, 구원이라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믿게 된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날 문득, 주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꼭 기억하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도, 우리가 가진 모든 것도, 우리의 구원마저도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의 값을 치를 필요도 없고, 나아가 치를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값진 것이기에 주님이 그저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 선물은 사실 우리 주님의 핏값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 뚜렷이 보이는 저 십자가가 그 선물의 값어치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알면 알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주님과 함께 더불어 주님 닮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삶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삶이요, 용서 받았으니 용서하는 삶이요, 사랑 받았으니 사랑 받는 삶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더욱 주님을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일은 우리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더욱 성령님을 구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온전히 복음 충만, 은혜 충만, 믿음 충만의 삶을 살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