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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이끄시는 (2021.04.23. 금요기도회 설교. 갈라디아서 5:13~26)

 

갈라디아서 5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노릇 하라

14   율법은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벌써 갈라디아서 말씀이 서서히 마무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갈라디아서 말씀은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바울이 첫번째 전도 여행때에 복음을 전한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사랑과 헌신을 담아 이곳에 복음을 전하였고, 마음을 다해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성도들도 바울의 이러한 헌신과 사랑에 크게 감동하였고, 이들은 바울과 더불어 헌신적으로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지역으로 전도를 떠난 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거짓 가르침을 전파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말씀을 왜곡한 잘못된 복음일 아니라, 바울 또한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선동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할례를 받고 규례와 율법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길이 구약 성경 말씀에 합당한 것이라 선포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따르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 바울과의 관계도 끊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거스르는 길을 따라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복음을 다시 가르쳐서 그들을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돌이키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담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스스로 구원을 얻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율법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까지만 유효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율법을 지켜낼 있습니까? 지켜낼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뿐입니다. 이러한 연약한 우리를 위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구원을 허락하여 주신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모욕하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주신 용서와 사랑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은혜가 부족하니 너희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 주님께서 보혈로 주신 용서의 능력이 부족하니 너희는 정결례를 지켜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보혈의 은혜의 완전성을 의심하고, 사람의 능력과 의지를 하나님의 은혜보다 신뢰하는 거짓 가르침을 선포한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해야 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길을 노예의 길이라 선포하며, 은혜의 자유의 길로 돌아오라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자칫 오해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많이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쓸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신앙생활을 공덕을 쌓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우리 마음 속에 드는 뿌듯함을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오해를 이용해서 그저 봉사하게 하고 그저 수고하게 정작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돌보지 못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그런 경우 우리가 교회에서 수많은 봉사와 섬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함과 곤고함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중심에는 언제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바라보는 믿음을 붙드는 ,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핵심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함께하심, 하나님의 책임지심, 하나님의 소망을 굳게 붙드는 , 깊은 은혜를 믿음으로 붙드는 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잘보이기 위해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고자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말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은 이러한 사랑과 복과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을 받지 못할 사람처럼 근심하거나 걱정하며, 불안해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주셨음을 감사하며, 때에 따라 주실 것을 신뢰하며, 하나님 안에서 평안함과 기쁨을 누리며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마음껏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어차피 구원도 받고 복도 받고 사랑도 받고 있으니, 하나님을 신경 쓰지 않고 맘대로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 사는 삶은 아니지만, 사랑을 받은 사람의 사람을 살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율법에 매인 삶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이라 선포하였습니다. 16절에서 18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선포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니라. 거짓 교사들은 율법과 규례와 절기를 지키는 것을 통해 구원을 받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삶을 얽매일 ,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마치 바리새인처럼 겉모습은 거룩한 종교인처럼 보이나 마음 깊은 곳엔 죄악과 헛된 욕망이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부활의 영광안에서 구원을 받을 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용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마음을 근본적으로 돌이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욕망과 죄악과 우상숭배로 가득한 사람이며, 심지어 종교적인 활동마저도 자기 욕망을 위해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진실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은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 선포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분도, 그리고 예수님 가운데 선포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하시는 분도,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을 따라 살도록 이끄시는 분도 바로 성령님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따라 주님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삶이 아니라, 성령님에 따라 우리의 모든 마음을 내어 드리며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율법 앞에서 노예처럼 강제적으로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은혜 앞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기꺼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시게 되면, 우리는 먼저 주님의 은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전까지는 그저 교리적으로 들리던 말씀이 살아있는 주님의 음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 주님의 보혈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진실로 깨닫게 됩니다. 나아가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게 되고, 주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모든 일이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자기 중심적 태도,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내려놓게 됩니다. 마틴 루터가 죄란 자기 안으로 굽은 마음이라 표현하였는데, 이렇게 굽어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펴지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움켜쥐려고만 했는 ,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전에는 내것이었는데, 이제는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욕망과 성령님이 서로 반대편에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성령님께 의지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충만한 삶과 자기 욕망을 따르는 삶을 비교하며, 먼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삶이 무엇인지를 선포하였습니다. 19절부터 21 말씀입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바울은 이러한 일을 육체의 일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육체의 욕망만을 생각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와 같습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음행은 적절하지 못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성적 관계 안에서의 부도덕한 처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호색은 방탕한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모두 성적인 관계 안에서 자기 욕망만을 추구하는 행위, 상대방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으로 굽은 마음인 것입니다. 또한 육체의 일은 우상숭배와 주술을 포함합니다. 우상 숭배는 헛된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술은 요술이나 마술로 번역할 있는데 점보는 , 미신, 접신 등과 같은 죄악된 종교 행위를 가리킵니다. 또한 원수 맺는 , 분쟁, 시기, 화내는 , 편을 지어 다투는 , 분열하는 , 자기 분파를 만드는 , 질투하는 것들도 모두 육체의 일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멸시하고, 그들과 다투는 , 편을 짓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두 육체의 욕망을 따른 , 자기 중심적인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술취함과 방탕함 또한 육체의 욕망을 따는 삶이라 선포하였습니다. 흥청망청 사는 , 게으르고 나태한 , 놀고 먹는 것만을 즐기는 삶도 자기 욕망을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자기 중심적인 삶을 내려놓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아는 , 주님의 사랑을 따르는 삶입니다. 22~24 말씀입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박았느니라

 

22, 23 말씀은 매우 유명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 은혜 충만한 ,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삶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한번 외어봅시다.)

이것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차게 되면 나타나는 일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차면, 우리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면 우리의 마음 속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 속에 평안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는 곳곳에서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삽니다. 이러한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것을 참아내는 힘이 있습니다. 이러하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게 대합니다. 착한일을 기꺼이 합니다. 주님 앞에서 신실한 모습,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적인 욕심에서 나오는 욕망을 절제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와 예수님을 연합하게 하셔서, 우리의 옛사람을 버리고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말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매순간 깨닫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님 안에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고, 날마다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령님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내면이 뒤바뀌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내안에 사랑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고, 평안이 생기고, 인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을 친절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선하게 대하고, 정직하고 신실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욕망 자랑을 추구하는 삶에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절제하고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저 복을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종교생활이 아니라,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기꺼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놀라운 복음의 세계를 맛보아 알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